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상태바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 충청리뷰
  • 승인 2018.07.12 10: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

김대선
청주독서모임 ‘질문하는 책들’ 운영자

7월의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을 책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골랐다. 죽음을 진지하게 파고드는 명저라고 들었다. 책이 결정되자 문득 예전에 읽었던 죽음에 관한 다른 책이 머릿속에 떠올라서 바로 책장에서 꺼냈다. 신경외과 레지던트였던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이다. 표지가 푸르게 맑아서, 마치 드넓은 하늘을 바라보는 듯하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이 죽음을 앞두고 쓴 책이다. 직접 죽음을 겪는 자의 진정성과 간절함이 크게 느껴졌다.

맨 앞에 담긴 추천의 글이 모두 주옥같다. 이해인 수녀, 이국종 의사,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저자 아툴 가완디, 소설가 앤 패체트의 세심한 표현 하나하나가 가슴을 울린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표현은 북클럽 오리진 운영자 전병근 씨의 글이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맘 속에서 한줄기 바람이 인다. 짧지만 뜨겁게 살다 간 진실한 영혼의 숨결이다.” 정말 그랬다. 나도 책을 다 읽고 난 순간 형언할 수 없이 벅찬 감정을 느꼈다.

저자 폴 칼라니티는 미래가 유망한 청년이었다. 그는 신경외과 레지던트의 마지막 해인 6년째를 보내는 중이었다. 고된 레지던트 생활은 끝이 보였고, 안정적인 직장을 제안해오는 곳이 많았다. 서른여섯의 나이에 이미 삶의 정상에 올랐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찾아온 복통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필 그 고통의 순간에 아내와의 관계도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폐암 4기 판정을 받았다. 무수한 종양이 폐를 덮고 있었다. 이제 그의 삶은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

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흐름출판 펴냄

죽는 순간까지 존엄 잃지 않아
폴 칼라니티는 삶의 막바지에서 두 가지의 소원을 품었다. 하나는 자신의 책을 쓰는 것, 다른 하나는 아이를 얻는 것. 다행히 그는 두 가지의 꿈을 모두 이뤘다. 케이디, 그의 예쁘고도 소중한 딸아이는 아빠의 곁을 밝게 비추는 최고의 빛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딸이 자기를 알아볼 때까지 삶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그는 딸이 자랐을 때를 상상하며 편지를 남긴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마지막에 문체가 급변하면서 감정의 격동이 폭풍처럼 몰아치고 비로소 책이 완결된다. 저자가 원했던 방식의 결말은 아니겠지만, 그래서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뛰어난 책으로 거듭난 듯하다. 지극히 담담한 어조로 자기 일들을 서술하던 저자가 실제로는 어땠는지를 뒤늦게 아는 과정에서 내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다.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폴 칼라니티는 참 멋진 죽음을 맞이했다. 죽는 순간까지도 존엄을 잃지 않았으며, 자기 몸과 마음에 대한 통제권을 놓치지 않았고, 사랑하는 가족의 품 안에서 고요하게 숨을 거둘 수 있었다. 단지 너무나도 일찍 세상을 떠났을 뿐이다. 그 하나가 참으로 슬프고도 아쉽다.

오랜만에 다시 살펴본 책이 전하는 몇 가지 질문과 교훈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 삶은 언제나 죽음보다 나은가? 언젠가 꼭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어떻게 살고 싶은가? 삶과 죽음은 함께 읽고 이야기하기 좋은 주제다. “시간을 아껴 좋은 작품만 골라 읽는 사려 깊은 분에게 나는 이 책을 조용히, 그러나 정성스럽게 추천한다.” 마종기 시인의 추천사가 내 마음과 꼭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