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축구연맹 회장 출마를 선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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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축구연맹 회장 출마를 선언하며
  • 충청리뷰
  • 승인 2018.07.16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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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효진 소설가

아무리 꿈은 이루어진다지만 나는 지금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고 있다. 내가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되는 일이다. 내가 세계축구를 주름잡는 황제가 돼서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내 생각엔, 지금 회장이나 앞으로 회장 물망에 오르는 축구계 인사들은 내가 꿈꾸는 일을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아니면 이런 엄청나고 혁신적인 일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이 일을 꼭 해내서 세상을 이롭게 만들고 싶다. 그렇게만 되면 축구 팬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지금 러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월드컵 게임을 보면서, 나는 내내 짜증이 났다. 미안한 일이지만 우리나라가 독일을 이기던 날도 그랬다. 20명도 넘는 세계적 선수들이 두 시간 가까이 비지땀을 흘리면서 뛰었는데도 세상에, 한 골도 안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점수를 내기가 이렇게 어려운 경기는 축구 말고는 지구상에 없을 것 같다. 아무리 응원을 해도 들어갈 듯 말 듯 아슬아슬 하기만 했지 볼은 들어가지 않았다. 애간장이 타다 지쳐서 나중엔 건숭건숭 보다가 막판엔 아예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짜증이 애국심을 밀어냈던 것이다.

한참 딴청을 피우다가 그래도 궁금해서 텔레비전을 켰더니, 아하, 막판에 우리가 두 골이나 넣었다고 난리가 났지 않은가. 그제야 뒤늦게 대한민국 만세를 불렀지만 내 입에선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축구는 이래서 안 된다니까!”

이런 적폐를 없애기 위해 나는 국제축구연맹 회장이 되고 싶다.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축구경기 규칙을 바꿔서 골키퍼를 아예 없애버린다. 그리고 선수의 수를 15명 정도로 늘린다. 나머지 규정도 조금 손봐서 한 게임에서 볼이 20개에서 50개 정도 들어가게 한다.

이렇게 되면 세상이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우선 축구경기를 보다가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일상사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축구경기장으로 몰리는 인파가 구름 같을 것이다.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이 없어지니 나라가 편안해질 것이고, 직장에서 일어나는 노동쟁의도 없어지니 생산성도 향상되고, 부부금슬도 좋아져서 출산장려정책을 안 써도 인구감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 대한민국에 다시 희망이 솟아오른다.

그렇게 된다고 문제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지금 유럽의 정상 프로팀에서 눈독을 들이고 있는 조현우 선수의 장래가 걱정된다. 골키퍼가 없어지면 조현우 선수에 대한 우리 국민의 희망도 없어진다. 조현우 선수만 그런 게 아니다. 세상의 모든 골키퍼들이 하루아침에 실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세계 모든 나라들의 중요한 정책인 고용증대에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선수를 15명 정도로 늘리는 공약을 미리 발표해 뒀다. 그러면 고용도 증대되고 그 가운데서 조현우 선수 같은 스타플레이어가 나올 것이다. 이러면 대한민국과 세계가 다시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또 있다. 스트레스라는 말이 사라지다시피 하면 의사들이 파리를 날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의사의 수가 자연조절 되면 의료서비스의 질도 높아질 게 아닌가.

축구건 뭐건 세상의 모든 정책이나 규정은 패권을 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 민주주의라는 오래되고, 권위 있고, 허울 좋은 이름 아래 생산되는 법과 규정은 패자(覇者)의 머리에서 나온다. 그 뜻을 실현하도록 하기 위해 법을 만드는 충성꾼들이 동원된다. 그 충성꾼들은 패자에 붙어 부와 지위를 누린다. 민주주의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패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꾸며낸 술수에 불과하다. 로마의 황제를 뽑을 때나 지금 대통령이나 수상을 뽑을 때나 그 근본은 비슷하다. 말처럼 백성이 주인인 때는 예나 지금이나 없다.

내가 축구연맹의 패자가 돼서 뜻을 이루고 나면 또 할 일이 있다. 농구와 야구도 손 좀 봐야 한다. 나는 꿈꾸기에 바쁘다. 나는 지금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지만 내 남가일몽(南柯一夢)의 공약을 실천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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