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삶 응원하는 시와 낭독의 힘
상태바
고단한 삶 응원하는 시와 낭독의 힘
  • 충청리뷰
  • 승인 2018.07.16 09: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방골목 유명한 보수동에서 3년째 ‘시인의 식탁’ 차린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문학을 사고 파는 우리네 일상이 언제 가난하지 않고 고단하지 않은 적이 있었을까. 그러나 ‘먹고 죽으려도 없다’던 돈이 울상을 하고 졸라대면 꼬깃한 지폐로 토해져 나오던 어머니 쌈지처럼, 출판과 서점은 만날 죽을 소리 속에서도 세월을 견뎌내 우리 곁에 남았다. 지폐 한 장 토해낼 때마다 점점 굵어지던 어머니의 주름진 손처럼 문학은, 시는 그렇게 거친 모습으로 쭈그러들면서도 아직은 우리 삶을 희미한 불빛으로 비추어주고 있다.

책방주인은 이민아 시인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안에 있는 <낭독서점 詩집> 역시 아직 우리 곁에 남아있는 작은 불빛 한 줌이다. ‘아직’이라고 함은 그 마지막 불빛이 추억 속으로 사라질 그날을 상상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해 모든 동네 책방들의 운명이 그러하듯이. 동시에 그래도 ‘아직까지는’ 그 작은 불빛이 어둠의 틈새를 타고 흘러나와 그곳에 누군가 살아남아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까닭이다.

책방지기 이민아 시인을 부산에서 처음 만났을 때, 아마도 그는 보수동에 막 첫발을 내디딘 초보 서점인이었는데 희망보다는 절망을, 설렘보다는 아픔을 가득 품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전쟁과 피난살이라는 최악의 고난 속에서 책을 통해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지금까지 60년 이상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곳이 보수동이다.

그런 보수동에서 책방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는 게 안타까워 이민아 시인은 일부러 그곳을 찾아 서점을 냈다. 사람들과 밤늦도록 골목에서 시를 읽고 와인을 마시며 시대를, 삶과 문학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시인의 바람은 그러나 첫 걸음부터 무참하게 깨져 나갔다. 장소를 임대하고 리모델링까지 다 마친 이 공간이 책 이외에 음료 같은 것은 팔 수 없는 무허가 증축 건물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이민아 시인의 얼굴을 차마 마주보기 민망했던 기억. 그래서 어쩌면 그는 곧 속수무책으로 그 거리를 떠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다가올 9월이면 벌써 3년째, 아직 <낭독서점 詩집>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17평 작은 책방에는 어릴 때부터 그가 모아왔던 시집이 가득하고 어떤 헌책방에서도 구할 수 없는 옛 시인의 초판본들이 가지런하다. 이곳에선 때마다 ‘시인의 식탁’이 차려지고, 그 앞에 초대된 시인과 독자들이 돌아가며 시를 먹고 마시는 아름다운 낭독의 밤이 열린다. 시를 읽지 않는 시대, 가슴으로 시를 느낄 수 없었던 사람들이 책방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날의 하늘, 그날의 바람과 닮아있는 시 한 편을 골라 권해주곤 하는 시인의 책방.

말로는 이렇게 멋지고 그럴듯하지만, 실상 오며가며 들르는 모든 이들이 시집 한 권씩을 품에 안고 책방 문을 나서는 것은 아니어서 잘해야 한 권에 만 원 남짓한 시집을 하루에 몇 권 팔아보지도 못한 채 영업을 마감해야 하는 날은 또 얼마나 많았겠나. 그러니 다른 책방 주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자신의 책방 영업은 뒤로 하고 강연 보부상이 되어 이곳저곳 떠돌아야 하는 고달픈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동네책방 13곳 마켓 연다
그럴진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골방에 들어앉아 자기 시를 쓰지 않고, 작가로서 위세 부리지 않고 책방 주인으로 앉아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차마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으되 한 언론과 인터뷰 기사에서 이렇게 말한 것을 읽었다. “바람이 불수록 촛불이 커지듯 삶을 응원하는 시의 불도 들불처럼 번져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시인은 이런 마음으로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시를 쓰고, 발달장애 어린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거나 그림책을 읽어주며 보수동 책방골목이 우리 주변의 낮고 여리고 아픈 이들과 따뜻한 공감을 나누는 우정과 연대의 거리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산의 독서문화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하여 공공도서관과 작은도서관, 동네책방이 유기적으로 연대하고 협업하는 자리들 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부산 동네책방 13곳이 한자리에 모여 공공도서관과 연계해 공동의 홍보물을 만들고 동네책방 마켓도 열자며 힘을 모았다. “겉으로만 골목을 지키는 사람을 경계하고 저 스스로 드러나지 않게 골목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고 있어요.”

책방은 힘들고 어렵고, 삶은 분노와 상처로 찢겨있지만 이민아 시인은 책방골목을 향한 애정을 거두지 않았고 여기서 조금만 더 나아가보자고 스스로를 달랜다. 내일 일이 어찌될지 동네 책방의 앞날은 여전히 안갯속이지만 그 깊은 어둠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아직은 작고 희미한 빛줄기 하나, 새어나온다. 아직은 우리, 살아 있노라는 그 작은 몸짓. 지난 겨울, 다치고 아픈 마음을 달래고자 그림책 100권을 사서 읽었다는 이민아 시인의 골목 안 책방이 그 거리에서 오래 안녕하길 빌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