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르게 더 새롭게 읽는 성(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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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르게 더 새롭게 읽는 성(性)
  • 충청리뷰
  • 승인 2018.07.2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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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갈리아의 딸들』과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오정란
해피마인드 심리상담소장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왜 여자만 한을 품어야 하지’하고 이상했다. 어린 시절, 여름밤 더위를 식혀준 ‘전설의 고향’의 귀신들은 왜 항상 여자인지 그게 늘 궁금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페미니즘 열풍이다. 그 어느 해 보다 여성주의가 뜨거운 쟁점이다. 서점가에서도 페미니즘 관련 도서들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며 기록 경신하고 있다. 몇 년 사이에 급격하게 변화된 현상에 많은 사람이 당황스러워한다. 이러한 사회현상을 반영이라도 하듯 남성의 역차별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현실은 그럴까? 통계를 내밀지 않아도 정치, 경제, 사회의 주요 요직에는 남성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 세상은 오래도록 남성의 질서로 유지되어 왔으며 현재에도 유효하다. 다만 그동안 가만히 있었던 참아낸 여성들이 이제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일 뿐, 현실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화장실도 안전하게 볼 수 없는 세상에서 여성들은 살아가고 있다. 불법촬영, 몰래카메라로 여성들의 몸이 인터넷 사이트에 떠다니고 가정폭력의 피해자는 여전히 여성이다. #미투를 선언한 여성들은 무고죄와 명예훼손죄 등 2차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이갈리아 딸들』은 성적 억압이 계급의 억압보다 더 극심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갈리아라는 가상의 국가를 통해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를 보여준다. 소설을 읽는 순간 통쾌하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뒤집어서 움(여성)이 맨움(남성)을 지배하는 세상을 극명하게 뒤집어 그려낸다.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 생물학적으로 여성의 몸과 남성의 몸이 다르다고 여겼던 것까지도 작가는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며 사회문화적 구성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나혜석 지음 장영은 엮음 민음사 펴냄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은 소설 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 살다간 나혜석의 이야기다. 자기 삶을 스스로 이야기하는 여성의 탄생이 이 책의 주제다. 그녀가 쓴 소설과 그녀가 잡지나 신문에 기고한 글들을 모았다. 이 책은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화가로, 그리고 무연고자로 서울시립 병동에서 생을 마감한 그녀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일소한다. 나혜석은 우리 근대사에 존재했다기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무엇에 의해 갈가리 찢겨 상품화되어 그녀가 온몸으로 관통한 삶이 소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뉴월 서리를 뛰어넘는 것
나혜석에게 글쓰기는 은밀하고 개인적인 취미가 아니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이 그랬듯이 그녀 역시 글쓰기를 통해 자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다른 타인들과 소통하며 억압적인 사회에 저항하는 수단으로써의 글쓰기였다.

주디스 케간 가디너(Judith Kegan Gardiner:1941~)는 “근대 여성소설에서 가장 못된 악역은 이기적이고 억압적인 남성이 아니라 나쁜 엄마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혜석 역시 모성 신화의 오래된 금기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녀는 ‘자식은 모체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다’라고 말했다. 모성은 본능이 아니라 경험이라고 말한다. 나혜석은 자신의 말이 무책임하고 유치한 말이고 많은 조선의 남성들에게 거슬리는 말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한 말 중에서 가장 정직한 말이며, 제일 용감한 말이었다고 고백했다. 여성이 직접 말하고 생각하고 글을 쓰고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것 자체가 그녀가 살았던 당시에는 더 그러했고, 지금도 여전히 불편한 진실이다. 이러한 불평등한 세상을 한방에 엎어버리는 소설이 『이갈리아의 딸들』이다.

『이갈리아의 딸들』을 쓴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Gerd Brantenberg)는 1970년 초반부터 여성운동에 참여했으며, ‘오슬로 여성의 집’과 ‘매맞는 아내들을 위한 쉼터’에서 일했다. 그녀는 노르웨이 여성운동의 산증인이며 실천 현장 중심에 있다.

이렇게 다른 눈으로 현상을 해석하는 작가는 탁월한 재치로 독자들에게 유쾌함을 준다. 이 불볕더위에 많은 여성들이 대한민국 심장부에 모였고 또 모일 것이다. 광화문, 혜화역 시위가 그것이다. 그들의 구호처럼 촛불은 혁명이고 시위는 원한이냐는 외침은 오뉴월 서리로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여성이기 전에 인간으로 안전한 사회, 평등한 사회로의 이행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여성의 눈, 소수자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읽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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