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우리는 적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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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우리는 적을 만들고 있다
  • 충청리뷰
  • 승인 2018.08.10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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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칼리 글, 세르주 블로크 그림 『적』

심진규
진천 옥동초 교사·동화작가

영화 ‘고지전’을 보면 유리한 고지를 뺏고 뺏기는 전투가 치열하게 펼쳐진다.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편지나 먹을 것을 전한다. 그렇게 공방을 하던 중 휴전협정을 맺었다는 소식에 기뻐하는 남과 북의 군인들 모습이 그려진다. 서로 마주치지만 “잘 가라!”라며 인사를 주고 받는다. 그러나 이런 평화도 잠시, 휴전협정이 효과를 발휘하는 시간까지 다시 전투를 벌여 땅을 조금이라도 더 우리 쪽으로 찾아오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이 영화를 보며 가장 화가 났던 부분이다.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도 않고 펜으로 휴전협정문에 서명만 한 자들이 수많은 젊은 목숨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적다비드 칼리 지음 안수연 옮김 문학동네

그림책 『적』을 만났다. 화려한 훈장을 주렁주렁 자랑스럽게 단 군인이 경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어색하게도 왼손이다. 표지에 있는 군인은 영화 ‘고지전’에서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았던 그런 군인이리라.

책을 몇 장 넘기면 두 개의 참호가 보인다. 하얀 종이를 찢어서 구멍을 낸 것 같은 그림이다. 우스꽝스러운 그림이 더 슬프게 다가온다. 참호 안에는 병사가 숨어있다. 이 둘은 적이다. 치열한 전투는 없다. 매일 아침 인사를 하듯 상대방을 향해 총을 한 방 쏜다. 그리고는 더는 머리를 내밀거나 전투를 하지 않는다. 그저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는지에만 관심이 있다. 밥을 하는 사이에 쳐들어올지 몰라 상대방 참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면 그 때 밥을 한다. 때로는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이쪽에서 먼저 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이 공격해오는 법은 없다.

적과 나는 서로 배가 고프다는 공통점을 빼면 엄청나게 다르다. 적은 흉악하고 동정심도 없는 야수다. 전투 지침서에 그렇게 나와 있다. 여자와 어린아이를 가릴 것 없이 잔인하게 죽인다고. 그러니, 적은 사람이 아니다. 그냥 죽여야 할 대상인 것이다.

전쟁은 내가 누군가의 자식이고 누군가의 어버이이듯 적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그저 죽여야 할 대상이다. 개인적인 원한은 없다. 다만 적이기 때문에 죽여야만 한다. 너무 슬프지 않은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를 ‘적’이라는 이유 하나로 죽여야 하고, 죽이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 끔찍하다.

밤이면 참호 위에 별이 가득하다. 별을 보면 사람은 감상에 젖기 마련이다. 가족이 보고 싶고, 전쟁을 끝내고 싶다. 적도 지금 저 별을 보고 있을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전쟁을 끝내고 싶다. 하지만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단 하나다. 내가 적을 죽이는 것이다. 병사는 덤불숲으로 위장을 하고 적의 참호를 향해 조심히 나아간다. 그런데, 가다가 사자를 만나고 만다. 사자는 엉금엉금 기어서 병사의 참호 쪽으로 간다. 상대방의 참호에 도착한 병사는 깜짝 놀란다. 참호에 있어야 할 병사가 없다. 약간의 식량과 가족사진이 있다. 이런, 적에게도 가족이 있었다니. 가족이 있으면서 어떻게 그런 끔찍한 행동들을 할 수 있을까?

적도 전투지침서를 가지고 있다. 적이 가지고 있는 지침서에 그려져 있는 적은 다름 아닌 바로 ‘나’. 나는 야수가 아니야. 나는 괴물이 아니야, 라고 외쳐보지만 소용없어요. 적은 상대편 참호에 있으니까.

우리는 살아가며 참 많은 적을 만든다.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상대방을 깎아 내리기도 하고, 남보다 앞서기 위해 편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상대방이 그렇게 하니까, 상대방이 나를 먼저 공격할지 모르니까 나는 그런 방법을 쓸 수밖에 없어, 라며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한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아이들끼리 다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왜 싸우게 되었는지 물어보면 단번에 나오는 답은 “얘가 먼저!”이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둘 다 “얘가 먼저”라고 답한다는 것이다. 정말 ‘먼저’한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하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누가 먼저 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화해할지다. 이 과정에서 정말 힘든 것은 누구도 먼저 사과하려 들지 않을 때이다. 아주 작은 일에서 시작해서 서로 얼굴을 노려보며 씩씩거리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림책 마지막에는 적에게 보내는 평화의 메시지를 적어 유리병을 상대편 참호로 던진다. 물론, 양쪽 참호 모두 말이다.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먼저 평화의 악수를 건네지 않는다. 이기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조금 지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모두가 이기려고만 하니 서로 으르렁 거리는 것이 아닐까? 위장하고 상대방 참호로 가는 적을 보고 사자로 오인할 정도로 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전쟁이 하루 빨리 평화적으로 중단되길 바라며, 전쟁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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