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만 너무나 특별한 맛, 대파 삼겹살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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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만 너무나 특별한 맛, 대파 삼겹살찜
  • 충청리뷰
  • 승인 2018.08.13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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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행사를 위해 요리를 준비하다 보면 가급적 뭔가 화려하고 이국적인 요리를 하게 된다. 이게 일부러 뽐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뭔가 어떤 순간을 오래도록 특별한 시간으로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엔 가장 일상적이고 익숙한 어떤 것들에서 새로움을 찾기 바라는 마음도 있다. 이번에 지역잡지 만들기 강연회에서 준비한 요리가 그렇다.

공룡에서는 올해 야심차게 잡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마을 혹은 지역에 방점을 찍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이야기하는 잡지랄까? 공룡에서 잡지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주변의 지인들은 걱정을 했었다. 한국에서, 아니 지역에서 잡지가 되겠느냐 하는 걱정들이다. 하지만 정작 나에게 중요한 것은 정식으로 등록된 언론으로서의 잡지가 아니었다.

무언가 우리에게 제공되는 수많은 정보와 사건들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하고 이것이 내가 사는 지역과 마을과는 어떤 관계들을 맺어 가는가하는 문제들에 좀 더 관심이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속보나 특별한 뉴스를 전달하는 언론을 필요로 한다거나 내 주변의 소소한 일상들을 전달하는 매체로서의 잡지를 원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느리지만 맥락을 짚어내는 것, 아니면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어떤 사건과 사실들에 숨은 맥락들을 잡아나가는 것에 관심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잡지를 좋아한다.

황민호 기자의 요리 강연회.

나는 몇 년 동안 번역 그러니까 트랜스레이션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가 흔히 번역이라고 하면 어떤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을 말하지만 트랜스레이션은 좀 더 많은 고민을 담는다. 그러니까 단순히 번역을 뜻하는 것도 있지만 일종의 전이(轉移)를 지칭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떤 단어와 문장들을 나의 언어로 바꾼다는 건 단순히 이해하는 정도에서 더 나아가 나와 주변의 변화를 추동한다는 의미에서 철학적인 트랜스레이션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우리는 ‘마을 만들기’, 혹은 ‘마을공동체’라는 단어처럼 실제 그것이 의미하는 바와 전개 과정이 다르고, 또 그것의 지역적 전개 상황들이 전혀 다른 의미들을 함축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마을 만들기는 어느덧 도시재개발로 나아가더니 이제는 도시재창조라는 단어로 발전해 가지만 현실은 그저 부동산 경제의 광풍과 젠트리피케이션의 범람으로 번역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이젠 그런 열풍에 합류해 나가는 것만이 이 자본주의 시대에 살아남는 유일무이한 방법이 되었고, 그런 행동들이 부도덕이라는 윤리적 문제로 해석되지도 않는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우리가 마을 만들기에 익숙해지면 질수록 좀 더 자본 축적의 경제에 편입되는 속도가 빨라지고 누군가의 삶의 공간이 파괴되는 속도를 증가시키는 것임에도 우리는 그저 마을 만들기라는 단어가 주는 따듯한 정감만을 취사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접하는 말들 중에 맥락을 짚어내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해석해야 하는 다양한 메시지들은 범람하지만 이를 누구와 어떻게 공유하고 그것이 삶의 변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너무나 쉽게 무력감에 빠지곤 한다. 뭐랄까? 마땅한 매체가 없다는 것,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공유하는 과정에서 되돌아오는 이야기들을 묶어 세워 줄 마땅한 것이 없다는 것 때문에 더더욱 나는 잡지에 천착하는지도 모르겠다.

대파 얹은 삼겹살찜
목살찜

그래서 올해부터 느리지만 천천히 잡지를 준비 중이다.
오래도록 친하게 지내고 있으면서 [월간 옥이네] 창간 일을 했고 지금은 지역신문인 옥천신문에서 일하시는 황민호 선생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들에 한 발 내딛는 날이기에 내가 준비한 건 대파 삼겹살찜이다.

우리가 아는 식재료들 중에 가장 흔하지만 가장 맛있게 할 수 있는 요리, 그러면서도 어디에나 어울리는 요리랄까? 대파 삼겹살찜은 대파가 주인공인 요리이다. 대파를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넣어야 제맛이 난다. 돼지고기는 중요하지 않다는 거다. 대파 반단 정도를 다듬어서 새끼손가락만큼으로 썰어 솥에 깔아 놓은 후 준비한 돼지고기를 넣어주고 여기에 마늘 생강도 다져 넣은 다음 매운맛을 조금 주기 위해서 건고추까지 더한 후에 간장 1컵에 물 2컵 정도를 부어 오래도록 졸여주면 된다.

단맛을 주기 위해서 과하지 않게 설탕을 넣기도 한다. 이 요리는 실제 대파가 가장 중요해서 고기는 통삼겹살을 넣어도 되고 목살을 넣어도 되고, 아니면 수육용 돼지고기를 넣어도 된다. 육수가 자작자작해서 거의 없어질 때까지 졸인 후에 건져 돼지고기를 먹기 좋게 썰어주고, 맛이 밴 대파를 함께 얹어내면 된다. 간혹 양상추같은 샐러드용 야채들을 먹기 좋게 썰어 담은 후에 이 대파 삼겹살찜과 함께 담아 내놓으면 더할 나위 없는 요리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어찌 보면 누구나 알 것만 같은 맛이지만 막상 만들어서 먹으면 잊지 못하는 맛처럼 우리는 우리 주변의 익숙하다고 생각되어지는 많은 것들을 때로는 더 깊게 고민하고 재해석하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혹은 잘 안다고 생각해 왔던 것들이 파생시키는 불협화음 같은 삶의 이면들을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이러한 고민들을 모아서 함께 읽고 공유할 수 있는 매체로서, 그리고 우리들 삶의 이야기를 함께 써내려갈 수 있는 것으로써 잡지가 우리에게 대파만큼이나 맛있는 것으로 다가오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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