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특례제도가 폐지돼야 하는 이유
상태바
병역특례제도가 폐지돼야 하는 이유
  • 충청리뷰
  • 승인 2018.09.06 09: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덕현 발행인

병역특례제도를 놓고 갑론을박이 뜨겁다.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촉발된 이 문제는 현재 전면 폐지냐, 아니면 개선이냐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점차 양비론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그렇더라도 이번에는 다를 것같다. 이미 그동안 몇 차례 공방을 빚다가 슬그머니 묻혀진 사안이지만 지금은 제도의 정당성 자체가 도마위에 올려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병역특례제도는 당장 폐지돼야 한다. 대표적인 국가 적폐이기 때문이다. 그 근거는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이 제도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국민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번 논란에서 특히 경계할 것은 만약 반발을 의식해 제도의 개선과 보완을 명분으로 폐지를 결단하지 못할 경우 또 다른 기형적 특례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오로지 상식과 사회적 정의로서만 답을 낼 필요가 있다.

운동선수에 대한 병역특례는 1973년 박정희 정권에서 처음 도입됐다. 당시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특기자선정위원회가 ‘해외에서 크게 국위를 선양하는 자’로 규정해 이들에게 혜택을 준 것이다. 당시 정부가 이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분명하다. 유신을 등에 업은 개발독재 시대에 국민의 관심을 촉발시켜 여론을 응집시킬 수 있는 것은 스포츠가 최고였다.

실제로 이 때 이른바 3S로 상징되는 정책이 본격적으로 발아하기 시작해 80년 대 전두환 시절 전성기를 이룬다. 운동선수가 해외에서 크게 선전이라도 하면 대통령이 직접 전화해 격려하고 이 것이 언론에 대문짝만하게 보도되는 관행도 이 때 본격화됐다. 여기엔 두가지 목적이 있다. 정치에 대한 국민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국민우민화라는 저의와 함께 당시 외국에 한국을 알릴만한 특별한 것이 없는 상태에서 운동선수들의 해외선전은 나라홍보에 큰 도움이 되었기에 그들을 향한 당근의 의도가 컸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병역특례제도는 1981년 수혜의 폭을 대폭 넓혀 운동선수들의 최고 로망이 된다. 올림픽은 물론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 유니버시아드대회, 아시아선수권대회 등의 3위 이상 수상자로 확대했는가 하면 심지어 한국체대 졸업자중 성적이 상위 10%에 해당하는 자에게까지도 혜택이 주어졌다.

이후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 ’02년 한일월드컵, ’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을 거치면서 수혜폭에 대한 부침을 거듭하다가 지금은 올림픽 3위이상 입상자, 아시안게임 1위 입상자, 국제예술경연대회 2위이상 입상자, 국내예술경연대회 1위 입상자로 한정했다. 아시안게임보다도 더 큰 대회가 세계선수권대회인데도 여기선 우승을 해도 병역혜택이  없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과거 70~80년대와 현재의 대한민국은 비교가 안 된다. 70~ 80년대엔 국위를 선양하고 나라를 외국에 알리는 최고 계기가 스포츠였다면 지금은 문화예술, 과학기술, 학술, 자연환경 등 분야가 수도 없이 많고 더 전문적이다. 국위선양이라면 언론의 지적대로 방탄소년이나 남북정상회담보다 더 뛰어난 게 없다.

병역특례는 국민형평성에서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과거 가난하던 시절의 운동선수는 별다른 보상도 없이 그야말로 나라를 위해 온 몸으로 사력을 다했다. 이들에게 병역특례를 주는 건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국가적 보상책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본인이 실력만 좋으면 얼마든지 그에 걸맞는 명예나 금전적 혜택을 누린다. 더군다나 프로스포츠가 극도로 활성화된 요즘은 운동선수들이 누리는 사회적 혜택은 엄청나다. 이들에게 또 병역특례를 준다면 이거야말로 특혜가 된다. 그들도 스스로의 영달과 먹고 살기 위해 직업활동을 할 뿐이다.

이번 아시안게임의 축구와 야구종목에 프로선수를 출전시킨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물론 병역특례 때문이다. 와일드카드로 프로선수 3명이 가담한 축구는 그렇다 하더라도 프로팀에서도 최고 정예선수들만 차출한 야구에선 고작 사회인 야구팀인 일본을 누르고 무려 9명이나 병역특례를 받는다.

이들에 대해 해외 언론들은 avoid(피하다) escape(면하다) 등의 단어를 사용하며 일부는 냉소섞인 보도까지 했다. 국가의 명예를 높이는 업적(?)에 뭘 피하고 뭘 면한다라는 단어가 붙는 것 자체가 결국 떳떳하지 못함을 시사한다.

정녕 나라를 위한 것이라면 축구의 손흥민과 야구의 오지환, 박해민보다도 지금도 최전방에서 부상당하고 사고사하는 평범한 군인들의 희생이 더 장엄하다. 나라에 헌신하는 일이라면 국민세금으로 온갖 보살핌을 받으며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선수들 못지않게 그 시간 사상 초유의 폭염에도 골목을 누비며 냄새나는 쓰레기를 애써 수거한 청주시 환경미화원의 역할도 그만큼 소중하다.

인기종목인 축구 농구 야구 선수들은 기름진 음식을 실컷 배불리 먹으면서 훈련을 하지만 체중을 줄여야하는 비인기 종목의 선수들은 빵 한조각과 계란부침 하나로 하루를 버티는 고통을 이겨내면서도 국제경기에서 상위성적을 내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이들이 쏟는 땀과 열정은 겨우 몇분 출전하고 벤치에 앉았는데도 병역특례를 받는 그들과는 비교가 안 된다.
한국처럼 국가징병제를 운용하는 세계 15개 국가 중에서도 잘 나가는 운동선수라고 해서 우리와같은 병역특례를 주는 나라는 없다. 일단 모두 입대시켜 부분적으로 밖에서의 생업을 수행할 수 있게 한다거나 보수를 현실화하는 것 정도다.

스포츠의 본질은 기회평등과 페어플레이다. 신분의 차이를 떠나 이젠 누구라도 운동만 잘 하면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다. 스포츠의 최고 덕목은 온갖 협잡과 편법, 이기심이 판치는 일반 사회와는 달리 공평한 무대에서 공평하게 기량을 겨룬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병역특례제도는 이 두가지 기본을 원천적으로 훼손한다. 줄만 잘 서고, 운만 따르면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단 한번의 출전만으로도 혜택을 누리게 된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개선안의 대안으로 마일리지와 특례적용의 다양화를 언급했지만 이 역시 현실성이 없다. 각종 대회의 성적을 누적점수로 환산해 병역특례를 준다는 것인데 대상이 되는 대회를 선정하는 것도 난제인데다 여기에 각각의 점수를 매기는 것 또한 엄청난 논란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손가락 하나로 세계와 소통하는 디지털 시대에 특례적용의 다양화를 꾀한다는 발상 역시 현실과 거리가 멀다. 이런 식이라면 지금보다도 수혜폭이 더 넓어지면 넓어졌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답은 하나밖에 없다. 더 늦기 전에 폐지하는 것이다. 시대착오적이고 국민불평등을 조장하는 원흉이 된 상황에서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