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을 책 BOOK 으로 연다
상태바
인생 2막을 책 BOOK 으로 연다
  • 충청리뷰
  • 승인 2018.09.07 10: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용인시에 3층짜리 집 구입해 출판사·책방·북스테이 운영하는 친구

살면서 같은 시기 같은 현장에서 일을 했던 동료들과는 한 시대를 공유했다는 공감대 같은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아직 컴퓨터가 나오기도 전 원고지에 기사를 써서 데스크에 넘기고 빨간펜 죽죽 그어진 수정 원고를 되돌려받던 일이라든가, 대지(인쇄 직전의 완성 편집본) 교정을 보다 오자가 나오면 칼로 한 글자 한 글자 오려서 수정하던 일 같은 것. 오랜만에 만나선 요즘으로 치면 거의 태곳적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을 소환하는 즐거움이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나와 비슷한 삶의 현장을 누비며 일을 해왔던 동료가 있다. 동시대를 살며 잡지에서 출판으로, 어린이문화로, 각자 있는 곳은 달라도 늘 비슷한 현장을 배회하고 있었기에 인연이 끊기지 않았던 우리가 생의 전환점에서 또다시 비슷한 일로 만나게 되었다.

북스테이형 책방 만든 임후남
회사에서 독립해 ‘생각을 담는 집’이라는 출판사를 혼자 운영하며 짬짬이 시를 쓰던 친구는 남편의 은퇴와 때를 맞추어 경기도 용인에 아주 아주 커다란 집을 구입했다고 했다. 가보고서 깜짝 놀랐다. 나지막한 전원주택들이 모여있는 용인시 원삼면 구석진 시골길, 막다른 길에 불쑥 3층짜리 나홀로 빌딩같은 집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책방 ‘생각을 담는 집’ 내부 모습.

이런 시골에 웬 연립주택인가 싶었지만 이 집이 한 채의 집이라고 했다. 1층은 창고였고 2층과 3층은 각기 살림이 가능한 독채형 구조, 문을 열고 나간 옥상에선 거칠 것 없이 저 멀리 구름같은 산과 푸른 하늘이 한 눈에 들어왔다. 가족 삼대가 함께 살기로 작정하지 않는 한 도저히 유지가 어려운 이 큰 집을 친구는 과감히 샀다. 그리고 1층을 완전 수리해 차와 브런치를 판매하는 작은책방을 열었다. 2층과 3층은 부부가 살 공간을 빼고는 북스테이 민박으로 꾸몄다.

출판사이자, 책방이자, 북스테이를 겸하게 된 <생각을 담는 집>은 이렇게 해서 북스테이형 책방 대열에 새로 이름을 올렸다. 그곳에서 만난 책방지기이자 출판사 대표이자 시인인 임후남은 직장생활을 통해 내가 알던 잡지 기자, 혹은 편집자 임후남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서 생경했다.

평생 직업 여성으로 출퇴근을 하며 살아왔던 그의 소망이 사실은 이렇게 숲속의 집에 자신이 모아두었던 그릇들을 펼쳐놓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며, 시를 읽는 것,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책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아, 사람이란 자기 안에 얼마나 다른 자기를 넣고 살아가는 존재인가. 남들에게 이미지로 소비되는 사회적 자아와, 혼자만의 방에서 꺼내놓는 내면의 자아란 또 얼마나 다를 수 있는 것인가. 이제 인생 후반기를 맞아 오래 묻어둔 자신의 꿈을 찾아 새로운 모험에 나선 친구를 축하했다.

생각을 담는집’ 임후남 대표.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다
우리 숲속작은책방에는 50대 이후를 설계하는 이들이 많이 찾아온다. 모두들 우리 부부처럼, 또 이 친구 부부처럼, 생의 전선에서 의무 복무하다 긴 노역의 기간을 마치고 놓여난 이들이다. 생계와 일상이라는 노역에서는 벗어났으되, 생은 잔인해서 아직도 우리 앞엔 긴 시간들이 놓여있다. 여전히 누군가에겐 아직 부모님이 계시고, 미처 내보내지 못한 자식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너무 돌보지 않아 사방이 삐걱거리는 고통스런 육체가 남아있을 것이다. 운명이란 알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런 우리들 앞에는 아직도 살아야 할 많은 날들이 있는 것이다.

그 남아있는 나날들을 추억과 회한에 잠겨 머물러 있기보다는 여태껏 내가 살아왔던 한 세계를 뒤로 하고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보려 하는 이들. 그들 가운데 대기업의 하부 구조로서 치킨이나 빵을 팔기 보다는 책을 팔고 이야기를 나누고, 진정한 만남을 경험하고 싶은 이들이 오늘도 시골을 향해 떠난다.

<생각을 담는 집>도 그 출발선에 섰다. 손님이라야 아직 안부를 물어오는 지인들과, 지인들에 이끌려온 이웃들이 전부지만 그들을 위해 정성껏 차려낸 음식을 앞에 놓고 한 달에 한 번 문화가 있는 저녁,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 시간이 소중하다. 대형 서점에서는 중심에 놓아주지 않는 본인의 땀과 노력이 깃든 책들을 가장 좋은 자리에 배치하고 손님들께 편집 후기를 들려주는 시간이 고맙다.

집이 크고 공간이 좋아 열 명 내외의 소모임이나 독서동아리 워크숍을 꾸리기에 아주 적당한 곳, 책방지기로부터 출판의 과정과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는 이곳이 많은 이들의 <생각을 담는 집>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울러 머리에 은빛 너울 뒤집어쓰고 인생 2막을 열어가는 우리 중장년들에게 많은 이들의 응원과 격려가 있기를 빌어본다. 황혼과 노년, 우리 모두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