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예술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삶을 저금하는 일이옥남 할머니의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심진규
진천 옥동초 교사·동화작가

아흔일곱에 첫 책을 낸 작가가 있다. 아마도 최고령 작가가 아닐까 싶다. 산골 마을에서 밭을 일구며 사시는 이옥남 할머니가 바로 그 분이다.


“내가 글씨 좀 늘어 볼까 하고 적어 보잖어.” 이렇게 시작한 글이 30년이 되었다. 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어깨너머로 배우고 글씨 연습할 공책이 없어 아궁이에서 재를 꺼내 부지깽이로 기역, 니은을 쓰며 글을 익혔다. 예순이 넘은 나이부터 매일 쓴 일기가 아흔일곱이 된 올해 책이 되어 나왔다.


일기는 삶을 저금하는 일이라는 말이 있는데 할머니의 일기는 정말로 오랜 시간 차곡차곡 모아둔 삶이다. 손가락에 힘을 주어 꽉꽉 눌러 쓴 글자에서 할머니의 정성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 전에 공수전 갑북이 할멈 살았을 땐 개구리를 구워서 다리를 들고 몸에 좋다고 이거 먹어보라 해서 내가 그기 입이냐고 개구리를 먹는 기 입이너 하고 내밀어 쐈는데, 그 할멈재이도 오래 못살고 죽었다.”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옥남 지음 양철북 펴냄


개구리 다리를 구워서 몸에 좋으니 먹어보라고 내미는 동무에게 개구리를 먹는 게 사람 입이냐며 나무랐는데 몸에 좋은 것 찾던 동무가 오래 못살고 죽었다는 이야기다. 개구리 다리 들고 실랑이 했을 두 할머니 모습이 그려지며 웃음이 나오다가도 ‘오래 못살고 죽었다.’라는 대목에서는 뭔지 모르게 마음이 찡하다.


백 살이 넘은 한 할머니께 미운 사람이 있느냐 물었더니 없다고 했단다. 왜 없느냐고 물으니 “다 죽었다”라고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하지만, 백 살을 앞둔 할머니는 미운 사람이 있다. ‘세빠또’와 ‘오봉달’이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인 모양인데 할머니가 미워하는 것이 글에서 보인다.

마을 노인정에 가서 다른 할머니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읽어주고 있는데 세빠또가 와서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그 모습이 싫어서 얼른 집에 오신다. 큰길 지나가는데 포장한 값 내놓으라는 오봉달의 말에 분해서 어찌 할 줄 모르신다. 그러다가 글에 시원스레 욕을 한 바가지 쏟아내기도 한다. 이 대목에서는 웃음도 나고, 저절로 손뼉을 치며 할머니를 응원하게 된다.


할머니는 평생 농사일을 하셨다. 감자, 콩, 팥과 같은 것이 대부분이다.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농사지은 것을 양양 장, 속초 장에 내다 파신다. 농사지은 것 판 돈과 그날 쓴 돈을 기록해 놓으며 왜 이리 씀씀이가 헤픈지 모르겠다며 걱정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식을 보고 싶은 마음, 자식 걱정을 고스란히 적어둔다.


“날씨가 맑고 따뜻했다. 속초 장에 갔다. 건추와 모든 것 수입은 만오천 원, 점심값 천이백 원, 가고 오고 차비 제하니 만삼천 원 수입 된다. 겨우 의료보험과 전화요금은 되겠다. 그래도 비료와 밭갈이는 아직도 어디서 어떻게 매련할지 모르겠다.


아침에는 경기도 작은며느리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래도 돈 이야기는 못했다. 어트게서라도 내 힘으로 살아보려고 노력이 드는대로 있는 힘을 다 써서 하는데까지 해 봐야지. 저녁에는 텔레비와 시간 보내고 낮에는 호미 들고 밭에 가는 기 취미생활이다.”


지난 7월 할머니 사시는 양양 송천마을에서 작은 책 잔치가 열렸다. 오신 분은 할머니 친척분과 마을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다. 불쑥 찾아가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았는데 멀리서 온 손님이라며 할머니 책 일부를 읽어달라고 해서 위에 있는 부분을 읽었다. 눈물이 나는 걸 간신히 참았다.


하루 벌이를 보며 비료 살 걱정을 하시는 할머니. 그날 일기를 쓰시며 얼마나 마음이 답답했을까? 게다가 며느리에게 돈 이야기를 못하고 혼자서 어떻게든 해결해 보시려는 부모의 마음에 가슴이 먹먹했다.


할머니의 글에는 기교가 없다. 그 어떤 미사여구도 없다. 그저 할머니의 생각과 그날 한 일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래서 더 마음에 와닿는다. 할머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앞으로 10년, 20년 계속 되기를 바란다.


충청리뷰   webmaster@ccreview.co.kr

<저작권자 © 충청리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충청리뷰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