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으나 마나한 의료중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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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나 마나한 의료중재원
  • 윤호노 기자
  • 승인 2018.09.0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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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대병원, 국가기관인 의료중재원 결정 무시

의료사고가 나면 환자들은 약자가 된다. 의사들이 전문적 의료지식으로 무장해 환자들을 대하기 비일비재해서다. 때문에 의료사고에서 피해자인 환자들을 구제함과 동시에 신속하게 의료사고 분쟁을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의료분쟁조정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료중재원) 및 충북대병원, 사망자 유족 등에 따르면 2016년 11월 충주시 수안보면에 살고 있던 박모(사망 당시 75세) 씨는 충북대병원에서 사지동맥과 죽상경화증, 관상동맥폐쇄질환으로 수술을 받았고, 이후 회복과정에서 급성폐렴으로 사망했다.

유족 측은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었고 수술 후에도 특별한 이상 징후가 없었다며 의료과실을 주장했지만 충북대병원은 인정하지 않아 의료중재원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에 의료중재원은 충북대병원의 일부 의료과실을 인정, ‘유족 측의 미납진료비를 모두 면제하라’는 조정안을 지난해 9월 냈다.

유족이 공개한 결정문을 보면 의료중재원은 진료상 과실, 경과 관찰상의 과실 등을 판단한 감정결과를 판단근거로 삼았다. 박씨가 수술하기 전인 2016년 10월, X-RAY 촬영에서 진폐증 소견이 있었는데도 폐기능 검사를 시행하지 않은 충북대병원 진료의 ‘부적절성’을 지적했다.

또 “그해 11월 19일 박씨 사망일에 흡인성폐렴이 발생했는데, 검사처치 등 충북대병원의 조치가 전반적으로 부적절했다. 이런 과정이 박씨가 사망하는데 기여했을 것으로 사료된다”고 결정서에 명시했다.

박씨는 당일 구토 등의 증상을 보였고 산소포화도 저하, 혈압 저하, 의식상태 악화, 불규칙적인 심전도 등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할만한 상황인데도 동맥혈가스검사, 인공호흡기 적용 등을 시행하지 않았던 걸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다만 의료중재원은 “의료진이 이런 조치들을 시행했다 하더라도 여러 사정을 고려할 때 환자의 사망을 막을 수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면서 “박씨가 적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상실케 한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를 배상하라”고 충북대병원의 일부 책임이 있음을 인정했다.

병원 “법적 소송 통해 이의제기”
하지만 충북대병원은 의료중재원의 조정 결정을 무시하고 최근 박씨 유족에게 치료비 1000여만 원을 납부하라고 독촉하고 있다. 충북대병원 측은 병원 내 의료분쟁조정위원회에서 논의한 결과 치료과정에서 병원 측 과실이 없었다고 판단돼 치료비를 청구했다는 입장을 보였다.

충북대병원 관계자는 “의료중재원의 조정 결정은 강제적 사안이 아니다. 병원 내 결정이 우선”이라며 의료중재원의 조정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그러면서 유족들이 억울한 부분이 있다면 법적인 소송을 통해 이의를 제기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의료중재원의 조정결정을 받아들인 유족 측은 충북대병원이 국가기관의 결정을 무시한다며 울분을 나타내고 있다.

박씨의 아들은 “아버지를 어이없게 잃은 것도 땅을 치며 통곡할 일인데 국립대병원이 법률적 효력이 없다는 이유로 국가기관인 의료중재원의 조정결정마저 무시하고 있다”며 “치료비 문제를 떠나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충북대병원의 뻔뻔함에 치가 떨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의료행위 자체가 고도의 전문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며, 수술 등의 의료행위가 공개되지 않는 곳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환자 본인 스스로도 그 과정의 일부만을 알고 있을 뿐 증거되는 자료들은 전부 의료인과 병원에 편중돼 있다.

제도적 보완마련 필요
또 의료인의 재장이 인정돼 치료행위의 전 과정에서 수술 및 처치상의 과실이 입증되기 어렵다. 결국 입증 문제로 지지부진 시간만 가고 승소할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이 의료사고로 인해 소송이 발생했다면 환자 및 가족 입장에서는 힘든 싸움이 시작된 것. 때문에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인 의료중재원은 의료분쟁으로 고통 받는 환자와 유족, 의료인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구제하기 위해 2012년 설립됐다.

의료중재원은 조정 및 중재업무를 할 수 있다. 조정은 의료분쟁의 일방 당사자가 의료중재원에 조정신청을 하면 의료중재원은 당사자들의 주장과 사실 여부의 확인, 의료과실의 유무, 인과관계의 유무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적절한 합의안을 도출하고 양측에 권고한다.

이때 당사자들이 동의해야만 원만한 해결을 이룰 수 있다. 중재는 당사자들 간에 의료중재원의 결정에 따르기로 서면으로 합의한 후 중재신청을 해 의료중재원의 결정에 따르는 분쟁해결 절차다.

주요 쟁점은 법적효력 유무다. 조정은 조정결정서의 정본이 당사자에게 송달돼 양 당사자 모두가 조정결정에 동의하거나 동의한 것으로 간주될 때에는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

조정절차 중 당사자 간에 합의가 이뤄져 조정조서가 작성된 경우에도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 중재에 대한 판정은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하지만 문제는 신청인과 피신청인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환자 측이나 가족들이 의료사고를 주장하더라도 병원 측에서 거부하면 어쩔 수 없이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의료중재원은 손해배상금 대불제도 및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손해배상금 대불제도는 의료사고 피해자가 조정 중재 결정에도 배상금을 지급받지 못했을 경우 의료중재원이 먼저 지급하고 추후 손해배상 의무자에게 대불금을 구상하는 제도다.

그러나 이 제도도 맹점이 있다. 의료중재원이 정부기관이지만 대불재원을 정부가 단 한 푼도 지원하지 않는 점이다.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은 산부인과 때문에 생긴 제도인데 정부와 의사협회 사이 보상 범위 및 재원을 두고 마찰을 빚고 있다.

결국 의료중재원은 환자와 유족, 의료인 사이 의료분쟁을 실질적으로 조정·중재할만한 권한을 갖고 있지 않아 실효성 있는 구제를 위해선 제도적 보완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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