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이렇게 살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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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이렇게 살 수 없을까?
  • 충청리뷰
  • 승인 2018.10.0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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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윤 정 충북청주경실련 사무처장

“벌써 6시야? 큰일이다. 마실 물도 없는데 어떡하지?”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여행할 때 일이다. 오후 6시가 되면 모든 슈퍼마켓이 문을 닫았다. 처음엔 그곳만 그러려니 했는데 아니었다. 관광객이 넘쳐나는 거리의 상가들도 마찬가지였다. 6시가 막 지난 시각. 유명하다는 초콜릿 가게 앞에서 점원에게 손짓했지만 고개만 가로저을 뿐이었다. 그야말로 ‘칼’이었다. “내일 와. 미안!” “헉! 나는 내일 떠나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한 달간 안식월 휴가를 보내고 왔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20여 일간 동유럽을 돌았다. 막연히 자유여행을 꿈꿨을 뿐 사전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길을 나섰다. ‘그래도 며칠 묵을 숙소는 예약했으니 어떻게 되겠지.’ 사실은 구체적인 여행 계획보다 내 건강이 더 걱정됐다. 운동부족에 식욕부진. 머릿속이 복잡할수록 불면의 밤이 이어졌다. 이 체력으로 제대로 돌아다닐 수 있을까? 그러나 기우였다. 생각을 비우고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하니 나도 몰랐던 에너지가 생겼다. 매일 1만2천보 이상씩 걸었더니 자연스레 식욕도 돌아왔다. 체력이 문제였던 게 아니었다. 미술관을 간 지가 언제더라. 박물관은…. ‘정말 바보같이 살았구나!’

이국땅 길 위에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많이 만났다. 눈에 띄게 여성들이 많았다. 나홀로 배낭족도 많았다. 갓 스물을 넘긴 듯한 두 친구는 잘츠부르크 버스터미널에서 처음 만났다. 말이 터미널이지 택시 외에는 도심이랑 연결될 것 같지 않은 외곽이었다. 고속도로 옆 오솔길을 지나 작은 기차역까지 가는 길을 그들과 함께 걸었다. ‘우리 애도 저렇게 다녔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며칠 뒤 할슈타트 마을에서 또 만났다. 그제서야 여행 일정을 물었다. 체코 프라하에서 출발했고,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를 거쳐 이탈리아 로마로 간다고 했다. 여행이 그렇듯, 저들의 경험은 수많은 다짐과 새로운 출발을 약속하겠지. 기차역에선가 서로 기댄 채 조용조용 얘기 나누는 모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중세 도시를 걷듯, 역사가 살아 있는 동유럽 도시들은 부러움 그 자체였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3층 숙소까지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올라가도,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그렇게 친절하지 않아도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대중교통이었다. 옛 도시계획 그대로인 듯한 좁은 길 사이로 트램과 버스가 오갔다. 한 장애우가 트램에 오르자 주변 사람들이 공간을 확보해 줬고, 내릴 땐 트램 운전기사가 직접 내려 가는 길을 안내했다. 대중교통은 이방인이 이용하기에도 편하게 설계되어 있었고, 요금도 저렴했다.

전통시장은 전통시장대로, 백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며 도시와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멋스러웠다. 노천시장인 비엔나 나슈마르크트엔 여유있게 아침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었고, 고풍스러운 건물의 부다페스트 중앙시장은 관광객들의 인기 코스였다. tvN에서 방영된 <꽃보다 누나>의 영향 때문인지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시장 상인들은 한국말로 호객행위를 했다. 대형마트와 복합쇼핑몰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가는 우리와 달리, 활기 넘치는 전통시장 풍경이 반가웠다.

유난히 길었던 여름의 끝자락에 떠나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추석 명절 연휴 땐가, TV 뉴스 리포트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손님이 없어도 24시간 영업을 할 수밖에 없는 골목길 편의점 사장의 이야기였다. 프랜차이즈 본사는 점주 재량껏 심야영업을 안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본사로부터 받는 전기요금 지원금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영업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발한보도였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싸고 부정적인 시각들이 많지만, 편의점의 사업성 악화는 프랜차이즈 본사들의 과열 경쟁에서 비롯된 구조적인 문제이다. 편의점 왕국인 일본이 인구 2336명당 1개 꼴인데, 우리나라 편의점 수는 무려 1268명당 1개일 만큼 포화상태이다.

비단 편의점만의 문제일까? 『자신에게 고용된 사람들 - 한국의 자영업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영업 인구는 약 669만 명(무급 가족종사자 포함)으로 추산된다. 경제활동인구의 26%에 달하는 수치다. OECD 회원국 중 4위지만, 농업 인구 비중을 제외하면 사실상 가장 높은 수준이다. 문제는 어쩔 수 없이 자영업에 내몰린 사람들, 제대로 된 창업준비 없이 뛰어들어 5년 이내 폐업하는 비중이 70%에 달하는 현실이다.

언제까지 자영업자들이 고사될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저녁이 있는 삶’은커녕 가족들과 얼굴 마주할 시간조차 없이 일하는 이들을 방치할 것인가? 더디더라도 자영업자에게도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히 마련해 가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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