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OK' 나중에 ’불허‘
앞 뒤 안 맞는 청주시 행정
상태바
처음에는 ‘OK' 나중에 ’불허‘
앞 뒤 안 맞는 청주시 행정
  • 권영석 기자
  • 승인 2018.10.10 18: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딸기 육성단지 있는데 레미콘공장 승인, 처음부터 잘못
“개별입지 공장 인허가 시 주민입장 수용해야” 여론

지난 1일 청주시 영상회의실에서는 ‘청주시 민원조정위원회 심의회’가 열렸다. 민원조정위원회는 개별공무원이 처리하기 힘든 민원 사안을 심의 조정하기 위해 설치되는 협의기구. 심의 건은 상당구 가덕면 삼항리 490-2번지 일원의 레미콘 공장 승인 신청과 관련한 사항이었다. 주무부서 공무원, 레미콘공장 관계자 그리고 주민 등이 모여 문제에 대해 토의했다.

주민들은 8월 27일 청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공장설립 반대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회의에서 청주시 관계자는 “허가여부를 몇 개월째 검토했다. 여러 가지 요인을 검토했을 때 최종적으로 레미콘 공장 승인신청에 대해 불허한다”고 밝혔다. 지난 5일 투자유치과의 최종결정에 따라 가덕레미콘공장 허가승인은 무산됐다.

이번 불허 건에는 기업유치에 사활을 걸던 청주시 행정의 허술함이 드러난다. 이에 대해 기업유치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행정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 사이 피해는 업체와 주민들이 봤다. 업체는 시간과 돈을 낭비했고 주민들은 가을 농사를 뒤로 하고 머리띠를 둘러맸다. 주민 대표들은 반대의지를 다지고자 삭발식했다.

불허판정은 나왔지만 문제는 아직 진행 중이다. 레미콘공장 설립을 추진한 (주)가덕산업 측은 반대하고 나섰다. 사업지연에 따른 손해가 막심하기 때문에 행정심판을 청구할 것이라는 말들도 나온다. 진행과정에 법적하자는 없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주)가덕산업은 지난 1월 청주시에 레미콘공장 설립 가능여부를 타진했다. 당시 청주시는 건립이 가능하다고 업체 측에 통보했다. 지난 5월 도시계획위원회에서는 진출입로 확보 등을 보완하는 조건으로 설립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후 7월 관련 서류가 청주시에 접수됐다. 주민들은 7월 31일 이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사이 청주시의 유권해석과 도시계획위원회의 가결이 있었다. 토지도 계획관리지역으로 공장설립이 가능했다. 계획관리지역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도시지역으로 편입이 예상되는 지역이나 자연환경을 고려해 제한적인 이용과 개발을 허용하는 곳이다. 법에서는 승인절차를 밟으면 계획관리지역에 레미콘공장을 설립할 수 있게 한다.

법의 취지는 도시개발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난개발을 막는 것이다. 일부 지역의 개발제한을 풀어 도시를 보다 균형적으로 개발하자는 목적이 있다. (주)가덕산업 측은 레미콘 공장을 설립해 낭성·가덕면 일대에 원활한 레미콘 수급을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인근에는 청원생명딸기 전체 생산량의 절반이 넘는 딸기육성단지가 포진해 있었다.

 

추세는 공장설립절차 엄격히

이선민 가덕면 주민자치위원장은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주민들은 몰랐다. 주민센터에 조그맣게 공고문이 붙고서야 내용을 인지했다. 시작단계가 아니라 허가단계에서 주민들이 알게 되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주시 관계자는 “공장 설립승인은 법적으로 주민동의가 필요 없는 사항이기 때문에 절차상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관련 법은 공장의 설립을 장려하기 위해 설립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돼 왔다. 2013년 한창 유행했던 규제완화정책인 ‘손톱 및 가시뽑기’에서 당시 산업통상자원부는 “공장 설립 승인시 시·군·구 담당공무원이 신청인에게 인근지역 이해관계자의 동의를 받아오도록 했다. 법적 근거는 없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공장설립과 가동이 지연되는 불편사례가 많았다”며 이해관계자의 동의 절차 없이도 공장설립이 가능하게 했다.

이로 인해 주민들은 공장설립 목전까지 내용을 알 수 없게 됐다. 내 집 앞에 갑작스럽게 공장이 생긴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누구라도 반대할 것이다. 가덕뿐 아니라 전국에 이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이에 대해 이관후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박사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승인받은 공장들이 주민반대로 철회되는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는 사전에 유권해석을 더 엄격하게 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김포시는 지난달 공장난개발을 차단하기 위해 공장설립 승인을 제한했다. 그동안 공장난립으로 인해 주민건강 피해문제가 계속 대두됐다. 김포시 관계자는 “개별입지 공장설립을 제한하고 계획입지인 산업단지로 공장 설립을 유도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주시는 아직까지 남의 이야기다.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개별입지로 추진하다가 주민이 반대하면 조정하는 형태이다 보니 올해만 해도 청주시 인근에서 초정 쇄석공장과 가덕 레미콘공장이 추진을 중단했다. 일각에서는 주민 반대를 탓한다. 그런데 당초 그곳에 허가를 내준 이유에 대해서는 어떤 문제제기도 없다.

 

지난달 6일 청주시청 정문 앞에서 열린 공장설립 반대집회 /뉴시스 제공

 

이해 당사자 모두와 대화해야

이정훈 삼항리 이장은 “산업단지가 아닌 개별입지에 공장을 짓는 데 공무원과 사업주만 당사자로 취급한다. 사전에 주민들의 의견을 묻는 강제조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주)가덕산업 측은 의견을 묻기 위해 주민설명회를 시도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이 이장은 “가덕산업 측에서 접촉은 있었다. 허가단계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의미가 없었다. 또한 마을을 대표하는 이장들에게 공장설립에 동의해 달라고 회유하는 시도도 있었다”며 “어떤 일이 득실이 더 큰지 따져볼 필요도 없었다. 공장이 들어서면 주민들의 삶의 기반은 붕괴된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기반을 포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대로 주민설명회는 결국 명분 쌓기의 일환일 수밖에 없는 것이 그간의 교훈이다. 청주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이에 대한 이슈가 많았다. 청주테크노폴리스 개발지구가 대표적이다. 주민 민원이 발생하면 업체 측도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이 이장은 “불허 통보 이후 (주)가덕산업 측에서 레미콘공장 부지에 모텔 등 다른 시설을 건설할 수 있게 주민들이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이 부탁을 한 배경에는 사업을 추진하며 토지매입과 행정절차를 진행하며 투자한 돈을 회수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불허조치가 취해졌지만 아직 상황은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다. 이번 레미콘 공장 불허통보 이후에 (주)가덕산업 측이 청주시를 상대로 행정심판를 진행한다는 소식과 담당 공무원들에 대한 징계 요구도 요청한다는 소식이 돌고 있다.

반복되는 공장추진과 주민반대 그리고 취소의 사이클을 타파하기 위해 의회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 이성우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개별입지에 공장이 들어설 때 주요 이해관계자인 주민을 빼놓고 절차를 진행하다보니 탈이 생긴다. 법적으로 업태를 제한하고 있지만 예외조항이 많다”며 “이로 인해 주민들이 우려하는 혐오시설이 마을에 들어서는 일이 발생한다.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완희 청주시의회 의원(더민주·남이,현도,산남,분평동)은 “최근 청주의 여러 지역에서 소각장이나 레미콘공장 등의 개별입지 설립·증축 허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민원을 제기하는 주민들도 많다. 그래서 의회차원에서 문제들의 해결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일 청주시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민원조정위원회. 위원들은 레미콘공장 설립승인을 불허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