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예술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결핍을 채우는 그 무엇릴리아의 『파랑 오리』

심진규
진천 옥동초 교사·동화작가

예전에 한 행사장에서 만난 평론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남 이야기 하듯이 “나 엊그제 응급실 다녀왔어요”라고 이야기한다. 말투만 들으면 “나 어제 옷 가게 다녀왔어” 정도로 들린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작가는 “그렇죠 뭐. 글 쓰는 사람들이. 아파서 쓰는 건지, 써서 아픈 건지”라며 웃는다.


자칫 심각한 상황일 수 있었던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 하며 주고받는 대화가 낯설었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고장’이 났다라고 표현하기보다는 ‘결핍’이 생겼다고 표현하고 싶다. 고장이 났다고 하면 우리 몸뚱이가 너무 기계 같다. 하지만, 결핍은 있던 것이 사라진 것이니 조금 억울하면서도 결핍을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파랑 오리』 는 우연히 만났다. 그동안 그림책을 많이 샀고, 봤다.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매일 읽어주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림책을 많이 접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아이들에게 읽어주기 위해 그림책을 고르다 보니 새로운 그림책에 눈을 돌리지 못한다. 올해 출간된 책인데 크기가 크지도 않아서 들고 다니며 읽어주기에 딱 좋다.

파랑 오리 릴리아 글 그림 킨더랜드 펴냄


커다란 오리가 물에 둥둥 떠 있고, 오리의 배 위에는 악어 한 마리가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표지만 보고 ‘아! 이런 이야기겠구나.’하고 생각했다. 종이 다른 자식에 대한 그림책이 많이 있어서 그런 줄로 알았다. 『뻐꾸기 엄마』 나 『삐약이 엄마』 와 비슷한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편한 마음으로 책장을 열었다.


책장을 펼치면 표지와는 상황이 바뀐 그림이 있다. 악어가 오리를 안고 있고 오리는 슬픈 눈을 하고 있다. “엄마, 이곳 기억해요? 엄마랑 나랑 처음 만났던 바로 그 파란 연못…….” 처음엔 그냥 무심코 지나쳤던 이 문장이 나중에 사람의 마음을 쿵! 하고 때릴 줄은 미처 몰랐다.


혼자 남겨진 아기 악어를 발견한 오리는 악어를 품에 안아서 재운다. 아기 악어가 잠이 들자 어미 악어가 데리러 오리라 믿고 자리를 뜨려고 한다. 하지만, 아기 악어는 깨어나서 오리의 다리를 잡고 “엄마!”라고 부른다, 지금도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는 수 없이 많은 ‘엄마’라는 말이 있겠지만 이 순간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는 거절하고 부정할 수 없는 소리였을 것이다. 파랑 오리는 아기 악어의 결핍을 채워주며 엄마가 된다. 씻기고, 수영하는 법을 가르치고 아기 악어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엄마야.’라고 생각한다.


결핍을 채우는 건 사랑
자식을 위해 무언가 해 줄 때 부모의 마음은 비슷할 것이다. 내 도움을 필요로 해서 너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는 것. 참 기쁜 일이다. 자녀가 자라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가고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된다. 자녀와 부모의 거리가 멀어지는 만큼 부모의 기억들이 서서히 도망가기 시작한다. 파랑오리의 기억도 점점 도망가서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게 된다.


파랑 오리는 악어에게 매일 똑같은 질문을 한다. “왜 씻어야 돼?”, “왜 먹어야 돼?”, “왜 자야 돼?” 반복되는 질문에 악어는 항상 친절하게 답을 해준다. 게다가 파랑 오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둘이 처음 만났던 곳에 데리고 간다. 이 부분을 읽다가 예전에 인터넷 영상에서 봤던 광고가 하나 떠올랐다.


늙은 아버지가 젊은 아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계속 하자 아들은 짜증을 내며 그것도 모르냐고, 소리를 지른다. 영상은 아들의 어린 시절로 간다. 어린 아들이 아빠에게 같은 질문을 수없이 반복하지만 아빠는 짜증을 내기는커녕 처음 들은 질문인 것처럼 대답을 해준다. 오랜 세월을 살며 자신도 모르게 빠져나간 기억들, 그것을 계속해서 채워주지 못하고 타박하는 자식의 모습을 보며 반성하게 되었다.


그림책 『파랑 오리』 는 반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결핍을 채우는 그 무엇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건 바로 ‘사랑’이 아닐까? 그림책의 마지막 부분에 악어는 파랑오리를 꼭 안고 있다. 파랑 오리도 너무나 편안해 보인다. 그런 풍경 안에서 악어는 말한다. “나는 엄마의 아기였지만, 이제 엄마가 나의 아기예요. 내가 지켜줄게요.” 우리는 누구나 결핍 속에서 살아간다. 그 결핍을 타박하고 상처를 내지 말고 다른 그 무엇으로 채워주며 살아가는 모습이길 바란다.

충청리뷰   webmaster@ccreview.co.kr

<저작권자 © 충청리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충청리뷰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