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따끈따끈한 쭈꾸미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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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는 따끈따끈한 쭈꾸미탕
  • 충청리뷰
  • 승인 2018.10.1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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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꾸미탕은 전체 재료 먼저 끓인 후 쭈꾸미를 맨 나중에

주요 이슈에 대한 활동을 한다는 건 실제로 삶에서 많은 것들을 놓치게 한다. 몇 년째 같은 사안의 투쟁에 연대를 하다보면 그 사안이 발생하였던 시점에 저당잡히는 삶을 살고 있다.

가령 공룡들이 연대하고 있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시간은 투쟁한지가 9년이 넘었는데도 이 투쟁의 시작이었던 5월의 폭력사태, 그러니까 단체협약의 일방적 파기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을 사측이 직장패쇄와 용역깡패를 동원해 진압했던 그 날의 아픔에 머물러 있다. 또는 그 기나긴 투쟁과정에서 사망한 한광호 열사의 어느 날에 맞추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그렇게 당시의 아픔들을 알게 모르게 간직하고 살아가거나 여전히 치료를 받는 불안정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멈춰버린 계절처럼.

공룡에서 지난 2년동안 만들었던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사수>의 첫 상영회가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있었다. 공룡이 직접 제작한 첫 장편다큐멘터리를 상영한다는 것 때문에 떨리기도 했지만, 여전히 자본의 노조파괴에 맞서 싸우고 있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보여질까가 더 걱정스러웠다.

한국사회에서 다큐라는 것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떤 의미를 던져줄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2년이 넘는 제작기간 동안 연출을 맡은 활동가들에겐 수많은 날들이 컴퓨터 모니터에 갇힌 시간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같은 장면을 수백 번 돌려보며 이 기나긴 투쟁의 아픔들을 되뇌이는 작업이 결국 일상의 많은 부분들을 경직되게 만든 게 아닌가 싶다.

다시 돌아온 쭈꾸미 철
지난 주말 동생이 쭈꾸미 철이라고 자신이 직접 잡은 작은 쭈꾸미들을 가져다 주었다. 쭈꾸미를 받아든 순간 “아! 벌써 가을이구나.” 하는 잊었던 계절감이 확 살아났다. 생각해보면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계절이 변하는 것에 민감한 편이었다.

내가 계절을 느끼기 전에 이미 그 계절에 산달까? 매년 쭈꾸미와 대하, 꽃게철을 거르지 않거나 계절별 과일을 유독 챙겨먹거나 가족들에게 선물하곤 한다. 이번에도 쭈꾸미를 주면서 “아무리 바빠도 제철 쭈꾸미는 챙겨먹으며 살아. 그래야 나중에 나이 먹는 거 후회 안한다.” 라고 말해서 순간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다큐 상영회를 마치고 동생 덕분에 오랜만에 느긋하게 일상생활을 하는 공룡 맴버들과 점심 한 끼를 했다. 어느 덧 성큼 다가온 가을의 맛을 쭈꾸미로 만들어 본 것이다.

쭈꾸미로 탕을 끓였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날에는 왠지 뜨끈하면서도 시원한 탕이 제격일 것 같아서 요리했다. 원래 제철 쭈꾸미는 샤브샤브를 해먹는 게 좋지만 같은 레시피로 탕을 끓여서 먹는 것도 색다르고 좋다. 솔직히 샤브샤브를 해먹는 게 번거로울 땐 이렇게 탕으로 즐기는 게 훨씬 간편하다.

쭈꾸미탕.

머리부분은 충분히 익혀야
샤브샤브처럼 끓이는 쭈꾸미탕은 전체 재료들을 먼저 끓인 후, 먹기 직전에 손질한 쭈꾸미를 넣어야 한다. 그래야 제철에만 만날 수 있는 쭈꾸미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이때 조심할 것은 머리 부분인데 가위로 다리 부분만 먼저 탕으로 즐기고 머리 부분은 좀 더 끓여서 먹거나 아예 처음부터 머리 부분을 절단해서 요리해야 한다. 쭈꾸미 다리부분은 살짝 데치듯 먹어야 맛있지만 머리 부분은 충분히 익혀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패삼결살쭈꾸미 볶음은 보통 오삼불고기나 쭈삼불고기와 똑같이 요리하면 된다. 다만 매콤하면서도 아삭한 맛을 주려면 콩나물을 별도로 끓는 물에 데쳐서 준비한 후에, 다른 모든 재료를 다 볶고 나서 접시에 담기 직전에 함께 볶아서 내거나 아니면 아예 별도로 접시에 담아내어 먹을 때 섞어 먹도록 하면 좋다.

대패삼겹살쭈꾸미볶음.

활동을 하면서 항상 일상생활에 대해서 강조하는 편이다. 우리가 활동가의 삶을 살더라도 우리가 어깨 부딪히며 살아가는 현실은 결국 일상의 흐름을 고스란히 겪어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을 잊는다는 건 그만큼 현실과 괴리된다는 것이기에 특히나 더 신경쓰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계절 안으로 내 삶을 밀어넣을 수 있는 힘과 여유가 생기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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