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처럼 족자그림도 그리고, 차도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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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처럼 족자그림도 그리고, 차도 마시고…
  • 박소영 기자
  • 승인 2018.10.16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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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암행복한지역아동센터 50명 아이들의 특별한 예술체험
라뽐므현대미술관 학교‧복지기관 대상으로 프로그램 열어

오늘의 렉처콘서트의 주제는 ‘조선의 선비’였다. 명암행복한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은 라뽐므현대미술관에서 ‘예술체험’을 했다.

이날 아이들은 천원 지폐를 두고 퇴계 이황에 대해 배우고, 이황이 율곡 이이와 만났던 이야기를 들었다. 또 김홍도의 <자리짜기>그림을 보고 부모님을 떠올려 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버지는 양반이었지만 살림이 옹색해져 자리를 짜고 어머니는 물레질을 하고 있다. 그 사이 아이는 공부를 하는 모습이다. 김보결 큐레이터와 김하나 큐레이터는 설명과 함께 아이들에게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성악을 전공한 이력 때문인지, 노래실력이 출중했다. 아이들은 노래에 빠져 선비이야기를 듣는 데 집중했다.

 

‘미술관이 좋아요’

 

사진 지난 12일 명암행복한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은 라뽐므현대미술관에서 ‘예술체험’을 했다. /사진=육성준 기자

김유림(용담초 5학년) 학생은 “미술관에 몇 번 와봤는데, 여기 오면 그림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좋다. 풍경화나 새 그림을 볼 수도 있고 다양한 미술체험도 할 수 있다. 집에 차가 없어서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미술관 가기가 힘들다. 나중에 화가가 되는 게 꿈이다. 미술관에 오는 건 항상 즐거운 일이다. 학교에서 따로 미술관 가는 프로그램을 한 적은 없었다. 지역아동센터를 통해서는 몇 번 미술관에 와봤다”라고 말했다.

예술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미술관과 아이들의 거리는 가까워졌다. 청주시와 청주시교육청은 행복교육지구 사업의 일환으로 라뽐므현대미술관이 주최하는 지역아동센터 및 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예술체험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이날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50여명의 초등학생들이 참여했다. 이번이 라뽐므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하는 8번째 프로그램이었다. 앞으로 원평초, 산성초, 동주초, 석교초 학생들이 10월과 11월에 체험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신항서원 타임머신 타고 마을 속 여행’이다. 인근 이정골에는 라뽐므현대미술관이 있고, 1570년에 생긴 청주 최초의 서원이 있다. 그래서 이날 아이들은 신항서원을 매개로 조선 선비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고, 족자에 그림그리기와 다도체험 등을 했다. 다도쟁반 또한 아이들이 직접 디자인했다. 작품이 설치된 현장에서 작품을 보고 따라 그려도 되고, 자신만의 풍경을 그리도록 했다.

김선미 라뽐므현대미술관장은 “미술관에서 꼭 그림만 그리라는 법은 없다. 작품을 보면서 쿠키나 차 한잔을 마시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 새로운 경험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어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라고 말했다.

김명희 명암행복한지역아동센터장은 “미술관에 온다고 하니 아이들이 전원 출석했다. 마음의 상처가 있는 아이들이라서 위로가 필요한 데 미술관의 작품들을 보면서 치유가 되는 것 같다. 일단 아이들이 여기 오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과거 선비들처럼 족자에 그림을 멋지게 그렸다. 작품의 주제는 요즘에 뜨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아이들은 게임하는 모습을 그리거나, 좋아하는 연예인과 음식 등을 그렸다. 이서연(10‧용담초 3)학생은 “공부하는 건 싫은 데 미술관 오는 건 좋다. 노래를 듣는 것도 정말 좋다. 연필을 들고 하는 게 아니니까 이건 공부가 아니다. 프로그램이 재미있다. 족자에 누룽지를 그릴 것이다. 평소에 과자를 먹으면 두드러기가 나서 누룽지를 자주 먹는다. 오늘 아침에도 누룽지를 먹고 왔다”고 해맑게 웃었다.

김 관장은 “학교에서 미술관 오기가 쉽지 않다. 차도 대절해야 하고, 일정 잡기도 어렵다. 중학생은 자유학기제를 통해 오는 데 초등학생들은 그간 올 기회가 없었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많아져서 아이들이 미술을 향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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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미술관에 일부러 오겠어요”

김선미 라뽐므현대미술관장이 ‘찾아가는 예술활동’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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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관장

“미술관에 자발적으로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연이 있거나 특별한 이유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들이 안 오니까 가는 방법을 택했다. 버스로 오기도 힘들고, 장애가 있는 분들은 이동자체가 힘들기도 하다. 20년 간 지역에서 예술교육을 해온 이력 때문에 여기저기 불려 다니게 됐고,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예술기부도 하고 있다. 지금은 미술관의 방향이 어떻게 되려는지 살짝 고민도 된다.”(웃음)

2014년 라뽐므현대미술관은 이정골에 문을 열었다. 2014년 세월호 사건을 모티브로 작업한 304개의 종이배가 미술관에 고정설치돼 있다. 남편이자 미디어아트 작가인 티안 씨의 작품이다. 부부는 청주가 ‘교육의 도시’라는 말을 믿고 20년 전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남편은 작업을, 아내는 예술교육을 진행했다.

김선미 라뽐므현대미술관장은 “매일매일 일정이 있다. 렉처콘서트를 일반관람객을 위해 고정적으로 하는 데 오는 사람들에 따라 주제가 조금씩 바뀐다. 단체로 미술관에 올 수도 있지만, 개인이 와도 된다. 미술관은 언제든지 열려있는데 사람들이 여전히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 관장은 바쁘다. 그는 축제 현장에서 체험 프로그램을 연다거나 성심학교, 꽃동네 등 복지기관을 찾아가는 활동도 하고 있다.

라뽐므현대미술관은 전문법인단체로 등록돼 있다. “예술복지에 중점을 두는 미술관이 됐다. 처음 아이들이 미술관에 왔는데 큐레이터에게 ‘시급이 얼마예요’라고 묻는 경우도 있었다. 여전히 미술관 벽이 높다. 문화예술교육이 전반적으로 확대돼야 한다. 카페는 일부러도 가는데 미술관은 일부러 찾아오지 않는다. 그런 점이 아쉽다.”

미술관에서는 지난해 ‘3초 관심기부’프로그램을 열었다. 33명의 사람들로 시작해 한 작품을 일정기간 자신의 집이나 학교 등에서 전시하고 이를 지인들에게 전달하게 했다. 결과적으로 258명이 작품을 보게 된 프로젝트였다. 예술작품에 대한 관심을 기부하는 작업이었다. “복지라는 게 입을 것과 먹을 것을 채워주는 활동도 있지만 미술관 차원에선 예술작품으로 생각을 기부하고 싶었다.” 라뽐므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술, 음식, 인생’전시는 12월 말까지 계속된다. (문의 043-287-9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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