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이 초등학교 선생이 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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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이 초등학교 선생이 되던 날
  • 충청리뷰
  • 승인 2018.10.1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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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오제세의원이 언론에 호되게 당했다. 언론은 ‘비겁하다’ ‘머리를 숙인채 꿀먹은 벙어리’라는 표현까지 동원해 이들의 처신을 질타했다. 도대체 지난 8일 열린 충북도예산정책협의회에서 이해찬 발언이 어땠길래 저럴까 싶을 정도로 도내 언론들이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예전엔 볼 수 없었던 날을 세운 것이다.

그날 행사 자리를 끝까지 목격한 한 지인이 당시의 상황을 SNS를 통해 이렇게 알려왔다. “선생님이 초등학생들 야단치는 분위기, 언론에 나온 발언은 아무 것도 아님, 충북인사들 찍소리 못하고, 충북에 누구하나 맞설 대가 있는 사람 없음....”. 시쳇말로 안 봐도 비디오처럼 현장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표현도 잘못됐다. 요즘 초등학생들이라고 해서 함부로 혼냈다가는 되레 큰 코 다친다. 선생님이 하는 말에 논리나 합리가 떨어지면 콕 찝어서 이의를 제기하고 바로 잡을 것을 당당하게 요구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날 이해찬의 훈계에 꿀먹은 벙어리마냥 앉아있거나 혹은 귀와 코를 후비며 멋쩍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는 ‘충북을 대표한다’는 어르신들은 초등학생들보다도 못했다. 이해찬이 “충북만이 세종역을 반대한다”며 버럭했다는데 이 자체가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대전 공주 등지에선 세종역 반대 목소리가 더 큰 울림으로 터져 나왔다.

도지사로선 집권당 대표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 좋을 게 없고 국회의원들은 같은 당 대표의 코털을 건드려봤자 다음 총선은 물론 당장은 당내 처신에서조차 눈치가 보일거란 것은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충북의 현안에 대해 다른 곳도 아닌 안방에서 이해찬의 기에 눌려 자기주장을 펴지 못했다면 이는 노예근성, 아니 식민근성의 발로라고 볼 수밖에 없다.

설령 예전과 상황이 달라져 세종역 설치의 당위성이 인정되더라도 이런 식으로 대응하면 안 된다. 어떠한 명분을 들이대도 세종역 불가는 그동안 충북이 범도민운동 차원으로 외쳐온 것이고 또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 등 국가기관에서조차 흔들리지 않게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상황이다.

이를 무시하고 세종역을 신설하겠다면 당시 연구용역을 수행했던 인사들부터 감옥으로 보내야 정상이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현재 모습은 바로 이처럼 권력에 휘둘리고 아부하는 국가적 기제 때문에 비롯됐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세종역이 갑자기 괴물처럼 힘을 얻어 설치게 되기까지는 이해찬이라는 정치권력의 ‘보스’에 알아서 기는 기생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막상 세종역 후보지가 세종정부청사에서 7km 떨어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지금의 논란이 얼마나 정치적인지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세종역은 정부청사와의 접근성을 고려한 역이 아니라 고속철도를 누더기로 쪼개 완행철도를 만들려는 원흉밖에 안 된다.

충북에서 특유의 버럭!발언으로 재미를 본 이해찬이 이후로는 졸지에 이시종지사의 수호천사를 자처하고 있다. 이 지사의 화두인 강호축을 옹호하는가 하면 충북선의 철도고속화에 대해서도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할 것을 관계요로에 부탁했다고 한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 정치인들의 전형적인 전술인 치고 빠지기가 연상된다. 하지만 여기에 혹하다 보면 충북 오송은 반드시 세종시에 먹히게 된다. 세종시 건설 때는 충북이 변두리 땅을 내줬다면 이제는 세종시에게 충북의 본토마저 빼앗기게 되는 꼴이다.

이를 걱정하게 되면서 자꾸만 ‘노회한 정치인’ 이해찬이 눈에 아른거리는 이유는 왜일까. 그가 초등학생 나무라듯 했다는 지난 8일의 악몽? 이게 아니면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권력에의 순치(馴致)를 걱정하는 것은 아닐까. 이래저래 답답한 한 주가 지나가고 있다.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했다. 충북에게 이해찬의 세종역 발언은 떡잎부터 싹수가 없다. 그래서 초장에 밟아놔야 후환이 없을 것이다. 적어도 세종역과 관련해서 앞으로의 추이는 충북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이 참에 우리는 충북의 정치력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중앙무대에서 충북의 존재감은 작아져도 너무 작아진 느낌이다, 이를 물리적 수치로 나타낼 수는 없다. 우선 느낌부터 그렇다는 것이다. 지역을 대변할 지역출신 인재들은 좀처럼 보이지 않고 지역구 국회의원들 또한 극히 특정인(?)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언론에도 중량감 있게 대접받지를 못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자잘한 예산확보 기사나 국감장에서의 이른바 ‘의무성 발언’만이 보도될 뿐이다. 중앙무대에서 충북출신 정치인들이 사람들을 몰고 다니며 세(勢)를 만든다는 뉴스는 못 본지가 너무 오래됐다. 오히려 진보정권에선 의사(擬似) 진보정치인들은 절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는 얘기만 요즘엔 부쩍 많아졌다.

그들에게 주문한다. 정치는 한 번 명분을 잃게 되면 회복이 어렵다. 그래서 정석으로만 치대라고 해서 정치라고 했다잖은가. 정치인에게 민심은 논리가 아니다. 감성이 우선이다. 지금 그들에 대한 도민 감성이 나로선 최악으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답은 나오지 않았는가. 더 이상 좌고우면하지 말라는 것이다. 투쟁이 없는 정치는 생명력이 짧다. 도민들은 이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고싶은 것이다. 행동하는 양심 말이다.

10월 8일, 그 자리의 분위기를 전해듣고 주변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되뇌었다. “이런 염병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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