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밤을 줍는다 오장환 시인 생가 근처에서
상태바
알밤을 줍는다 오장환 시인 생가 근처에서
  • 충청리뷰
  • 승인 2018.10.23 09: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직단 정비하면서 밤나무 없앤다는 소문 안타까워
우래제 전 교사

10월 18~19일 보은 오장환문학관과 뱃들공원 일원에서는 ‘오장환문학제’가 열린다. 특히 올해는 오장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주최측은 보은 대추축제 기간 동안 축제를 열고 전국에서 오는 손님들과 시인을 추모할 예정이다. 이번 행사는 ‘가도 가도 붉은 산이다. 가도 가도 고향뿐이다’라는 구호 아래 판소리 마당극, 시 노래 공연, 시 낭송, 시상식 등이 펼쳐진다. 오장환 시인과 동향인 우래제 前 교사는 오장환문학제에 맞춰 쓴 글을 보내왔다.

깔큼이밋헤빤드리/ 반드리밋헤털털이/ 털털이밋헤달콤이/ 다람쥐먹지말나고/ 깔큼이를씨웠다네// 버레가드리울제는/ 밋그러지라고서요/ 빤드리를씨웠다네/ 벌어지가털털이를/ 먹으면털털하다네// 사람들이먹으라고/ 달큼이를씨웠다네/ 까기는서렵지만은/ 그래도맛은좃타네/ 살문밤은노인차지// 시어미몰내군밤을/ 이불속에서먹으며/ 남보기먹고싶게도/ 흥달다흥흥달고나/ 군밤은메누리차지(밤/5학년 오장환)

이 시는 내 고장 회인 출신 오장환이 5학년 때 쓴 시이다. 보통 과일은 가장 바깥쪽에 병충해를 막는 1차방어선으로 외과피(겉껍질), 우리가 먹는 중과피, 가장 안쪽에서 씨를 보호하는 내과피(속껍질)로 싸여 있다. 밤은 특이하게 겉껍질이 가시로 변해있다. 밤이 여물며 네 갈래로 벌어지는데 시인은 이 가시를 깔큼이라고 표현하면서 다람쥐가 먹지 못하게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복원된 오장환 시인의 생가

그리고 중과피에 해당하는 빤질빤질한 껍질을 빤들이라고 하면서 벌레(버레)가 미끄러지라고 싸여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 밤 껍질 안쪽 속껍질은 떫은맛을 내는데 이를 털털이라고 하면서 벌레(벌어지)가 먹으면 털털하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털털이(속겁질) 안쪽 달콤한 노란 밤은 사람들이 먹으라고 있는 달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1918년생인 오장환이 1928년에 지은 시이니 그의 나이 10세. 어린나이에 이를 시로 표현해냈으니 그 뛰어난 관찰력, 상상력, 표현력이 얼마나 뛰어난 지 상상하기 어렵다. 게다가 나이 많은 노인들은 이가 없어 삶은 밤을 좋아하고, 궁핍한 살림에 삶은 밤 한 톨 맘 놓고 먹을 수 없는 부엌데기 며느리가 시어머니 몰래 군밤을 구워 이불 속에서 먹는 모습까지 놓치지 않고 ‘흥 달다 흥흥 달고나’ 라고 표현하고 있으니 천재적인 시인이 아닌가?

오장환이 10세에 지은 시
시인이 밤을 한 두 번 보고 위와 같은 시가 지어진 것은 아닐 터. 시인은 어려서부터 밤을 따고 벌어지지 않은 밤송이도 까보고 채 벗기지 못한 속껍질의 떫은맛도 수 없이 맛 보았을 것이다. 오장환의 생가 터에는 오장환문학관이 있다. 아주 가까운 곳에 사직단이 있고 사직단에 오래된 밤나무가 있었다. 아마도 시인은 초등학교를 오가며 이 밤나무 밑을 밤 소쿠리에 생쥐 드나들 듯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사직단 개·보수 작업을 하면서 몇 그루의 밤나무는 베어져 있고 일부는 남아있다. 그리고 사직단 인근에 외지인 소유의 밤 밭이 있다. 한 때는 주인이 열심히 가꾸던 밤나무이지만 지금은 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고 방치되어 있다. 그러나 최근 사직단을 정비하면서 주변의 밤나무를 없애고 땅을 정비하여 다른 수종을 심는다는 소문이 있다. 이에 대해 한 마디 하고 싶다.

봉평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단편소설 하나로 많은 문화적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있다. 비록 오장환의 ‘밤’이라는 시가 ‘메밀꽃 필 무렵’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시를 알리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할 몫이다. 10월에 열리는 오장환 문학제를 조금 앞당겨 ‘밤 줍기 행사’와 같은 여러 가지 행사를 계획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드의 생가를 찾은 적이 있다. 동네 입구에 시인과 관련된 여러 가지 책을 판매하는 작은 집이 유일하게 이곳이 시인의 고향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골목을 돌고 돌아 찾아간 생가 앞에는 시인의 생가임을 알려주는 조그만 표지판 하나만 달랑 서 있었다. 물론 생가 내부는 거의 완벽하게 그대로 남아 있었다.

2017년 오장환문학제 중 공연 모습

나무, 골목, 돌담 살렸어야
우리의 문학관과는 천양지차이다. 지금 오장환 생가는 너무나 천편일률적인 복원이다. 어쩌면 정지용 시인의 생가와 그렇게도 비슷할까? 물론 불가피한 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생가를 복원하기 전에 아주 허름하고 우리가 어려서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생가가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운동회가 열리면 많은 선배들과 고향 주민들이 학생 수 보다 더 많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었다. 때문에 점심시간에 점심 먹을 자리가 없어 초등학교에서 가까운 시인의 생가 마당에 모여앉아 점심을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허름하지만 멀쩡한 생가가 있었는데 어느 날 오장환 생가 복원을 했다기에 찾아보았더니 대궐집으로 변해 있었다.

이러한 복원은 아니함만 못한 문화유산의 파괴나 다름없다. 적어도 복원이라면 쓰러지는 것을 바로 잡고 썩은 것을 바꾸는 선에서 마무리해야 했다. 주변의 나무 하나, 시인이 살던 옆집, 앞집, 뒷집, 시인이 다니던 골목 길, 삐뚤빼뚤 쌓인 돌 담, 그것들을 시인은 보고 자랐을 것이고 시인의 손길이 남아있기에 더 그렇다. 하지만 지나간 일. 또 다시 비슷한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으려면 진정한 복원이 무엇인지 꼭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까?

비가 오락가락할 때 늦은 알밤을 주우며 깊은 상념에 잠겨본다. 한참 만에 가방이 묵직하다. 이 정도면 한 두 번 삶아먹고 군밤거리도 되겠지 싶어 한참 공사 중인 사직단을 돌아 내려온다. 시인이 주워 먹었을 그 밤나무가 아니더라도 그 후손되는 밤나무가 시인의 생가 근처에 예전에 있던 그 자리에 살아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계단을 내려오는데 아직도 큰 밤나무가 살아 남아있다. 반갑다. 살아남아서. 저 밤나무는 시인이 밤을 줍고 노는 모습을 보지 않았을까? 바람에 알밤하나 툭 떨어지며 머리를 때린다. 이제 그만. 손에 박힌 밤 가시를 빼낼 걱정이나 하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