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는 짧을수록 박수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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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는 짧을수록 박수 받는다
  • 홍강희 기자
  • 승인 2018.10.25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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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개회 의전이 절반, 시민들 지루하고 내빈들만 즐거워
단체장 행사참석 줄이고 부단체장·실 국장과 나눠서 가라

충북의 축제 뒤집어보기
의전 간소화가 화두

축제나 행사 개·폐회식에 가보면 의전이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행사 주최측의 대회사, 내외빈들의 축사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대회사는 길고 내외빈들은 칭찬 일색으로 나간다. 더욱이 축사는 ‘000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등으로 서로 추켜 올려주는 말이 대부분이다.

행사 관계자나 내외빈들이 아니면 관심이 전혀 없는 이런 의전성 개·폐회식은 지금도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올해 축제 개회식에서 이런 장면들을 여전히 볼 수 있었다. 특히 역대 충북도의장이나 청주시의장들은 행사장에서 일일이 참석한 의원들을 호명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현 의장들도 마찬가지다.

행사 주최측은 일반 관객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의전에 가장 신경을 쓴다. 자치단체장, 국회의원, 지방의원, 기타 유관단체장들 대부분이 행사장에서 축사하고 이름 불리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공무원 모 씨는 “행사하면 의전이 가장 큰 일이다. 의전을 매끄럽게 진행하지 못하면 행사 망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행사 후일담을 들어보면 축사 기회 안 줬다고 난리 친 국회의원, 소개 안 해줬다고 불만을 토로한 지방의원들이 실제 많다. 올해 직지코리아국제페스티벌 개막식에 온 손님 중에 소개 안 해줬다고 주최측에 크게 화를 낸 사람도 있다는 후문이다.

이제 권위주의 시대가 퇴조하면서 의전 간소화가 화두다. 정해진 의전은 간략하게 마치고 본 행사로 가는 것이 참석자들에게 가장 환영을 받고 있다. 축사는 짧을수록 박수를 받는다. 수원시가 지난 9월 10일 의전 간소화 방침을 발표해 주목받고 있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불필요한 의전 때문에 정작 행사의 주인공인 시민이 상실감을 느끼고, 내빈소개와 축사 때문에 행사 시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본인부터 솔선수범하겠다고 밝혔다.

 

염태영 수원시장의 결단
 

염태영 수원시장은 9월 10일 거품을 뺀 의전간소화 방침을 발표했다. 사진=수원시청 홈페이지

수원시는 국경일과 국제행사를 제외한 모든 의식행사는 20분 내외, 실외행사는 10분 내외로 끝내고 대내행사에서 내빈석을 없애기로 했다. 또 사회자는 내빈을 한명씩 소개하지 않고 전광판 등을 활용해 일괄적으로 알릴 예정이다. 축사·환영사도 되도록 생략하고 필요하면 주관 단체장 1인만 한다는 것. 부득이할 때는 3명 이내로 한정하고 축전은 대독하지 않고 보낸 사람만 알리는 선에서 끝낸다.

주빈에 대한 과도한 의전도 대폭 생략하거나 줄인다고 한다. 예를 들어 차 문 열어주기, 우산 씌워주기, 의자 빼주기, 특별한 다과 준비하기, ‘주빈이 입장하고 계시다’고 안내하거나 박수를 유도하는 행위 등이다. 이런 의전들은 관행처럼 해오던 것들이다.

그런가하면 시장이 모든 행사에 가지 않고 부시장, 실·국장, 구청장 등이 나눠서 간다는 것. 시장은 전국·국제 행사 등 수원시를 대표하는 행사, 전국 단위 행사, 광역 기관·단체 개최 행사와 같은 대외 행사와 국경일·각종 기념일에 관한 규정에 의한 행사, 역점시책 관련 행사, 상징성이 큰 행사, 정책적 판단이 필요한 행사·회의 등 대내 행사에 참석한다.

이런 계획은 수원시·산하단체에서 주최·주관하는 행사, 수원시 지원·보조하는 행사에 해당된다. 대내 행사는 즉시 시행하고, 대외 행사는 사전 논의·합의를 거쳐 점진적으로 시행한다는 것이 수원시의 방침이다. 수원시가 이를 구두선에 그치지 않고 계획대로 밀고 나간다면 다른 지자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음성군 간소화 발표, 청주시 연구중
 

충북도내에서는 음성군이 가장 먼저 지난 1일 의전 간소화 지침을 만들어 발표했다. 음성군은 “민선7기 출범후 권위주의와 격식을 탈피하고 군민중심의 의전과 행사 간소화를 위해 명문화했다. 앞으로 군이 주최·주관하는 행사에서는 과도한 내빈소개와 축사를 최소화하고 필요할 때만 지정좌석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내빈들을 위한 단상 위 좌석을 없애고 일반인들과 같이 앉도록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내빈소개도 일괄소개 또는 소개를 생략하여 시간낭비를 최소화 하기로 했다.

현재 청주시도 의전 간소화 방침을 만들고 있다. 행사많은 부서, 읍·면·동 직원들의 의견을 들어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의전을 간소화할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 한범덕 시장은 민선5기 초반에 형식적인 축사 폐지를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축사 한마디 하러 오는 정치인들 때문에 원점으로 돌아갔다.

한편 의전 간소화와 함께 자치단체장이 행사에 매달리는 관행도 과감하게 없애야 한다는 여론이다. 민선시대가 된 후 단체장들은 행사가 너무 많다고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행사참석=선거운동’이라고 보고 열심히 참석하는 이중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이 단체장 면담을 신청해도 오래 기다리거나 시간조차 잡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에 대한 대안이 수원시처럼 단체장, 부단체장, 실·국장들이 나눠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명문화하고 반드시 지키는 것이다.

역대 청주시장 중에서는 남상우 전 시장과 이승훈·천혜숙 전 시장 부부가 특히 행사장을 많이 다닌 것으로 회자됐다. 남 전 시장은 시민들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가야 한다는 게 신조였고, 이 전 시장은 본인보다 부인이 행사장을 빠짐없이 다녀 입줄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이제는 지자체와 주민들이 함께 적절한 의전 간소화 계획을 마련하고 지켜야 할 때다. 단 계획은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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