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의 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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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의 허구
  • 충청리뷰
  • 승인 2018.10.25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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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영창청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있다. 이 사건의 불똥은 윗 선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도 분명 튈 수밖에 없다. 이들 둘에 관한 얘기가 대책없이(?) 만들어지는 가운데 SNS를 달군 또 하나의 인물이 있다. 신평(62) 변호사다.

얼마전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를 그만둔 그는 우리나라 사법부 역사에 ‘법관 재임명 탈락자 제1호’로 기록된 사람이다. 최근 그가 펴낸 책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가 언론보도를 타며 화제가 됐다. 이 책의 소제목은 ‘영원한 내부고발자의 고백’이다. 제목부터 자극적이어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사법부의 수난과 겹쳐 큰 반응을 일으켰다.

그는 1993년 3월, 당시를 기준해 10년차가 되는 법관 62명중 유일하게 재임용탈락의 불명예를 안게 된다. 문란한 사생활이 이유였다. 부인과 이혼하고 늦은 나이에 재혼해 자식을 얻은 사실이 재임용 심사과정에서 드러난 것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이 정도의 사안을 놓고 ‘문란하다’는 딱지를 붙인다는 건 꼭 사생활침해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무리수임에 분명하다. 신평이 탈락한 것은 조직내에서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다.

그는 모 주간지에 법원 내부의 비리를 고발하는 내용의 기고문을 투고했다가 법관으로서의 품위를 떨어뜨렸다는 조직 내 비판에 직면한다. 그가 폭로한 것은 판사실의 돈봉투 수수로 대표되는 법원 내 관행들로, 그의 말에 의하면 당시만 해도 변호사가 판사실로 찾아와 촌지를 주는 일이 일상적 이었고 판사가 인사발령이라도 받게 되면 모인 돈의 일부를 전별금으로 주는 일이 일종의 ‘법원 문화'였다고 한다.

또 자신이 판사로 일할 때만 해도 한 주에 한 번 씩은 방석집(요정)에 가야 했고 골프는 거의 반 의무적으로 쳤다고 한다. 물론 골프장 이용은 무료였다. 그 시절 골프장 이용의 특혜는 판사뿐만 아니라 권력기관 종사자들에게 공공연하게 주어진 것으로 유명언론인이나 고참언론인들 또한 오랫동안 이의 수혜자였다. 지금도 이런 관행의 잔재가 남아 국회의원이나 권력기관 소속원들이 골프장을 이용할 경우 골프장 책임자들이 직접 나와 영접하는 모습을 종 종 볼 수 있다.

신평은 문제의 기고문에서 “사법부에 가해지는 외부의 압력만이 문제가 아니다. 정작 개혁할 것은 관료화되고 계급화된 법관 조직 그 자체다”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재판부의 독립을 과도하게 주장하는 것이 곧 사법적폐의 핵심이라고까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법개혁 하면 통상 외부로부터의 힘, 즉 권력과 정치로부터의 독립만을 외쳐온 그동안의 상식을 깬 발언으로, 사법개혁의 더 궁극적인 것은 사법부라는 조직과 이를 구성하는 판사들의 대오각성임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법농단 관련자들에 대한 영장청구가 법원에 의해 줄줄이 기각돼 기각률이 무려 90%에 달하는 작금의 현실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던지고 있다. “영장전담판사들이 악인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기각 남발은 잘못된 판단이다. 그런데 보통의 사람도 거기에 들어가 조직 이기주의에 젖어 들면 자신이 하는 일이 잘못된 것인지 깨닫지 못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임종헌 전 차장도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다”고 말해 특정인 몇 명을 처벌하고 희생시킨다고 해서 사법부 개혁이 절대로 실현되지 않음을 애써 강조하기도 했다.

신평 변호사와 관련된 얘기를 들으면서 언뜻 떠오른 것은 7년 전 발간돼 법조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김용원 변호사의 <천당에 간 판검사가 있을까>이다. 이 책 역시 우리나라 법조계에 대한 내부고발서로 30여년간 군법무관과 검사로 재직한 본인의 경험을 근거로 믿기지 않는 조직 내 각종 비위를 적나라하게 나열해 놨다.

예를 들어 어느 부장판사가 친형과 친구를 자신이 맡고 있는 법정관리기업의 감사로 앉힌 것이 문제가 돼 수사기관이 그의 통화기록 압수수색을 신청했지만 법원이 갖은 이유를 대며 기각한 사건, 그리고 저작권법 위반혐의를 적발하고도 고소하지 않고 거액의 합의금을 뜯어낸 부장검사출신 변호사를 경찰이 수사를 통해 구속하려 했으나 검찰이 번번이 비토해 끝내 불구속 송치된 사건 등이 세세하게 기록돼 있다.

아울러 국가적으로 이슈화된 사건들이 결국엔 당대의 권력에 어떻게 휘둘리면서 고무줄 형량과 엿가락 판결로 이어졌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김용원 변호사 역시 사법개혁의 화두를 법원과 검찰의 독립 못지 않게 조직 내부의 쇄신에서 먼저 찾아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수사권과 기소권, 경찰수사지휘권, 영장청구권을 독점한 우리나라 검찰과, 일단 판결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견제도 받지 않는 판사들의 무소불위 권력을 경계한 것이다.

이들 두 변호사가 끝내 말하고 싶은 것은 국가의 제도적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판사와 검사들이 개인의 성향과 편견, 그리고 그릇된 신념으로 얼마나 많은 오류와 죄를 범하고 있느냐 하는, 마치 그동안 신성불가침의 영역처럼 여겨져 왔던 법조와 사법부라는 곳에서의 실체적인 위선과 일탈들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신문기사와 관련된 형사고소건에서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가도 유명로펌을 고용한 상대측의 검찰항고와 재기수사를 거쳐 모든 혐의가 고스란히 유죄로 둔갑하는 황당한 경우를 경험한 나로서도 두 사람이 책까지 내면서까지 많은 이들에게 일깨우치고자 했던 의도는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는다.

‘내가 겪고 있는 고초는 판사로 재직하며 적지않게 저질렀을 오판 또는 매너리즘에 빠져 사건에 숨어있는 수많은 사연들을 외면하고 소송관계인들을 나와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았던 오만의 업보인 것같다’는 고해(告解)를 남긴 신평 변호사는 책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썼다.

“이 비참한 경험의 기록이 전해져 내부고발행위로 온갖 어려움을 겪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 내부고발자가 겪는 고통과 고뇌는 우리 사회 전체가 갖는 치부다. 또 검찰이나 사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모든 재산을 잃고 건강마저 해친 채 피맺힌 절규를 하는 전국에 존재하는 사법피해자들한테도 동병상련의 공감과 함께 잔잔한 위로의 글로 작용했으면 한다.”

이 말에 판검사들이 공감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사법개혁은 또 물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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