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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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 충청리뷰
  • 승인 2018.11.0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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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효진 소설가

발칙하게도 나는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담배를 입에 댔다. 방학이 되면서 강변에 소를 몰고 나가 풀을 뜯기는 날이 많았다. 그때 내 조무래기 동무들이 풍년초라는 잎담배를 신문지 조각에 말아주며 피어보라고 했다. 다들 뻐끔뻐끔 잘도 피웠다. 제법 어른처럼 보였다. 부럽기도 했다. 나도 눈물 콧물을 흘리며 어른 흉내를 냈다.

드디어 고1때 사건이 터졌다. 조회시간에 담임선생님이 느닷없이 소지품검사를 했다. 내 가방에서 ‘사슴’이란 열 개비들이 작은 담뱃갑이 나왔다. 선생님은 퍽 냉정했다.“너 같은 놈은 퇴학이야. 때릴 것도 없어.”

냉정한 선생님은 나를 데리고 교장실로 갔다. 내 성적표까지 들고 교장 선생님께 가서 나를 인계했다. 교장 선생님도 냉정했다. “공부도 잘하는 놈이 담배는 왜 피워. 퇴학이야. 아버지 모시고 와.”

온기라곤 없는 세상 같았다. 모두가 싸늘했다. 나도 울지 않고 집으로 갔다. 공부할 시간에 가방을 들고 집으로 오는 나를 보고 놀란 아버지께 나도 냉정하게 말했다. “교장 선생님이 아버지 오시래요.” 아버지가 몇 번 까닭을 물으셨지만 나는 입을 꼭 다물고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두루마기를 입고 학교로 가셨다. 아버지는 소학교 교사로 계시다가 해방 후 교직을 내놓고 고향을 지키고 계셨다. 그래서 학교 돌아가는 일을 대개는 알고 계셨다. 저녁 늦게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나는 내 운명이 어떻게 됐을까 걱정이 됐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버지 눈치를 살폈다. 아버지도 냉정했다.“걱정 말고 내일부터 학교에 가거라. 교장 선생님이 용서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아버지!’ 하는 말이 튀어 나올 뻔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울지도 않았다. 아버지와 한 상에 앉아 저녁을 먹는데 밥을 씹는지 풀을 씹는지 맛을 알 수 없었다. 이튿날은 학교 작은운동장에서 조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교장 선생님 훈화시간이었다.

“내가 교직에 35년을 있었는데, 당신 아들을 퇴학시켜 달라는 학부모는 처음 만났다. 1학년 학생 하나가 담배를 피워서 퇴학을 시키겠다고 했더니 그 아버지가, 학생이 퇴학당할 잘못을 저질렀으면 퇴학처분을 내리시는 게 당연하니 그렇게 해 주십시오, 하셨다. 

그러면서 나는 자식을 입학시킬 때 사람을 만들어달라고 서약서를 썼으니 어떻게든 제 자식놈을, 사람을 만들어서 이 나라에 유용한 인재로 만들어 주셔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사람을 만들어주시지 않고 내치시면 어떻게 합니까, 정 그러시면 내년에 다시 입학시험을 쳐서 입학시키겠으니 그때라도 나라에 꼭 필요한 사람을 만들어 주세요, 이러더라 이놈들아! 내가 이런 분을 처음 만났다!”

박관수 교장 선생님은 대구사범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가르친 은사로 경북대 교수로 계시다가 우리학교 교장으로 와 계셨던 분이다. 우리학교에 계실 때도 세계도덕재무장기구 총재를 맡고 계셨다. 후에 서울의 한 대학교 교수로 가셨다.

지금부터 60여년 전 얘기다. 내가 그때 퇴학을 당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내가 나라에 유용한 사람으로 살았다는 자신은 없지만 기회는 앞으로도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을 버리는 결정을 내릴 때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신중해야 할 것 같다. 나는 그 후 담배를 끊었지만 그때 담배를 피우지 않던 많은 사람들 중엔 지금 골초가 돼서 개인은 물론 국가적 부담이 되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툭하면 남을 세상 밖 죽음으로 내모는 힘 있는 사람들을 보며 그때 그 교장 선생님을 생각한다.

교장 선생님한테 못난 자식을 퇴학시켜도 좋으니 사람을 만들어 달라고 하신 아버지를 생각하니, 이제야 눈물이 주르르 나온다. 아버지는 하늘나라에서도 지금 내 걱정을 하고 계실 것이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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