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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요리와 나의 요리는 다르다언제나 한 가지 방식으로 요리하는 어머니

아버지의 콩을 수확했다. 내가 활동하는 공룡의 농사도 그렇고 아버지의 농사도 사실상 끝났다. 매년 짓는 농사지만 이렇게 가을걷이가 끝나고 나면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어차피 내년이면 다시 시작할 텐데도 무언가 마지막 수확을 한다는 것은 어느 시절, 어느 순간이 끝나간다는 씁쓸함으로 남는다.


평생을 농사지어온 부모님에게, 가을농사가 끝나더라도 쉬지 않고 더 열심히 일해야 내년 농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그렇게 티나지 않는 것들을 챙기며 사는 게 농부의 삶이라고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이런 단절감에 빠져드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나 스스로가 이런 일상이 지속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최근에 지난 6년동안 임대해서 사용하던 성화동 감자밭은 매각되어서 이제 복토를 하는 중이다. 물류창고를 짓는다고 한다. 평소에는 내 일상의 한 부분처럼 익숙해졌던 물리적 공간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그것이 당연한 현실처럼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도시라는 것이, 삶이라는 것이 고정된 어떤 디딤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자각을 강하게 하는 편이라서 변화에 둔감해 지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순간, 가령 아버지의 콩밭에서 공룡 활동가들과 콩을 턴 후 밭에 모여앉아 점심을 먹다가 우연찮게 눈에 박혀드는 속살 드러난 밭의 민낯을 볼 때처럼. 마음이 심하게 흔들리는 때가 있다는 거다. “아~! 이런 삶도 곧 끝나겠구나..!!” 하는...


변함없는 어머니의 닭도리탕
어머니는 언제나 공룡활동가들과 농사일을 할 때면 몇 년째 변함없이 닭도리탕을 내놓는다. 나는 보통 닭볶음이라고 불리는 게 더 맞는 방식으로 요리한다. 기름 두르고 달군 팬에 마늘과 감자, 양파를 볶다가 닭을 넣어 볶는다. 야채들이 제법 순이 죽으면 고춧가루를 넣어서 태우듯 볶는데, 그러면 닭고기와 야채들에 소위 불향을 입힐 수 있다.

닭도리탕


그렇게 볶다가 양념과 물을 아주 약간만 넣어서 끓여주면 볶음탕이 되는 거다. 어머니의 닭도리탕은 처음부터 탕으로 시작한다. 냄비에 물을 넣고 감자 양파등의 야채를 큼지막하게 썰어 닭과 함께 처음부터 넣은 후에 오래도록 끓여 내는 방식이랄까?


평생을 오직 한 가지 방식으로만 닭도리탕을 요리하시는 어머니는 일상의 반찬도 언제나 변함없으시다. 손님이 온다고 해서 유별나게 무언가를 더 첨가하기보다 언제나 변함없이 해오던 그대로 대접하신다. 새롭고 빛나 보이는 무엇인가를 찾기보다 언제나 자신의 일상을 지탱해주던 익숙한 것들을 내놓으신다. 그러니 이 가을이 지난다고 유별날 것도 없고, 내일을 바라보는 시선에 불안감도 없으시다. 어차피 돌아올 계절의 순환을 믿고 계시는 것처럼 자신의 일상도 변함없이 흘러갈 거라는 걸 믿으시는 것 같다.


아주 가끔 공룡 활동가들을 위해 갈치조림을 한다. 이번에도 공룡에 손님들이 놀러와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매번 무언가 요란한 것들을 찾는 내 모습이 조금은 식상해져서 그냥 냉동고에 얼려둔 갈치를 조렸다. 갈치조림은 워낙 별거 없어서 자주 하지는 않는다. 아니 나에게 갈치조림은 김치찌개나 된장국처럼 너무 티나지 않는 익숙한 요리라서 누군가를 초대했을 때 특별히 선택되지 않는 요리다.


큼직한 무를 넣고 요리하는 갈치조림
갈치조림은 큼지막하게 썬 무와 김치를 넣은 후에 만들어둔 양념장을 절반정도 넣고 쌀뜨물을 부어 조려주는 게 비법이다. 무가 다 익었을 때 대파와 양파 등의 야채와 갈치를 넣고 남은 양념을 위에 얹은 후 다시 조려주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에 양념이 충분히 배도록 오래 끓여줄 때 갈치를 너무 일찍 넣으면 갈치 살이 모두 다 바스러지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 갈치조림에서는 갈치만큼이나 무가 주인공이어서 이 둘을 적절하게 맛보려면 시간차이를 두어야 하는 것이다.

갈치조림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자신의 일상을 믿고 언제나 가장 익숙한 것들을 통해서 삶을 지탱해 가시는 반면에 나는 가급적 익숙한 것, 일상적인 것들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무언가 익숙함과 일상에 고립되어지는 순간 내가 가진 어떤 가치들이 훼손될지도 모른다는 경계심 때문에 차라리 일상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싶다. 활동가라는 것이 결국엔 일상을 소중히 해야 하지만 그 일상에 익숙해지지 않아야 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요리가 다 그렇듯 어머니의 삶도 내 삶도 무엇이 옳거나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그저 다를 뿐이라는 걸 안다. 평생을 농부로 살아오신 어머니나 회사생활과 단체활동가로 살아가는 나는 그만큼이나 다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닭도리탕이 내가 하는 갈치조림보다 더 맛있는 건 아마도 스스로를 믿는 강인함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옳든 그르든 자신을 믿고 가는 것, 어머니의 요리에서 맛보게 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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