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에게 ‘진정한 양심’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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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에게 ‘진정한 양심’을 묻는다
  • 충청리뷰
  • 승인 2018.11.0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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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자칫하면 우리나라 국어사전에 ‘진정한 양심’과 ‘거짓 양심’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등장할 판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판결은 당연히 이해 당사자들의 찬반을 피할 수가 없겠지만 최근 빚어지는 논란은 3, 40년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개인의 신념 혹은 종교적 양심에 따라 집총 거부, 즉 군대를 안 가겠다는 것에 대해 “그렇다면 진정한 양심을 어떻게 구분하느냐”고 어깃장을 놓는 이들이 하나같이 제기하는 우국충정(?)은 군입대를 기피하는 청년들이 도처에 넘칠거라는 예단이다. 요즘 자신의 정치적 변절을 과거 한솥밥을 먹던 동지들에 대한 독설로 희석시키고 있는 이언주 의원도 이번 판결을 놓고 “(북한에 맞서)목숨을 걸어야 하는 우리 공동체의 운명 속에서 누구는 헌신적으로 그 책임을 다하고 누구는 양심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회피하는 위험의 불공정 문제”라고 일갈했다. 세기적인 호전국가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너도 나도 군대가기를 꺼린다면 그의 우려대로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언젠간 북한에 먹힌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 후 수구언론들이 일관되게 견지하는 논지다. 그러면서 설령 병역거부를 인정하더라도 진정한 양심과 거짓 양심을 어떻게 가려내어 적용하느냐며 여론을 전파시키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주로 ‘여호와의 증인’과 관련된다. 이 종교에 대해서는 혼전순결이나 수혈금지, 정치참여금지 등 종교적 순혈주의를 지향한다는 피상적인 것 외엔 특별히 아는 것이 없지만 요즘도 잊을만 하면 주로 여성 두 세명이 사무실로 불쑥 찾아와 악착같이 포교하는 모습을 보면 참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은 절로 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들 여호와 증인 신자들과 아주 가깝게 지낸 적이 있다. 입대 후 논산훈련소에서 단기 하사관후보로 차출돼 경기도 가평에서 6개월 훈련을 마치고 배치된 서울 근교의 신병훈련 부대에서다. 이 곳서 3년 복무후 81년 제대할 때까지 훈련병으로 새로 들어오는 대체복무 보충역 즉 방위병 자원중에는 종종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끼어 있었던 것이다.

한데 이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입영 첫날부터 장교나 기간병으로부터 마구잡이로 얻어맞으며 대략 3~4일을 지내다가 당시 영창으로 불리던 육군교도소로 이첩되는 것이다. 이 때만해도 문제의 영창이 남한산성 바로 아래쪽(85년 경기도 장호원으로 이전)에 위치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훈련병 번호도 없이 ‘남한산성 행’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이들이 훈련소에 들어오자마자 각자 소속된 내무반에서 대책없이 두들겨맞는 이유는 단 한가지, “네가 뭔데 군대를 거부해!” 였다.

이를 지켜보다가 내가 맡고 있던 내무반에 그들을 고정 대기시키겠다고 상부에 건의해 제대할 때까지 이들을 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안 돼 보여서 보살피고 싶었던 것이다. 며칠 후면 어차피 감옥행인데 잠시라도 편히 지내게 했으면 하는 생각에서였다. 이 때 본의아니게 그들과 종교얘기를 나눴고 한 가지는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이 집총을 거부하는 이유는 살생하지 말라는 여호와의 뜻을 따르기 위함이라는 것, 하여 나 나름대로는 모든 상식을 동원해 설득했지만 그들은 끝내 영내에서의 그 살벌한 폭력에도 결코 뜻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자료에 의하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동안 입영이나 집총을 거부한 군입대 대상자는 총 2699명으로 이중 2684명이 여호와 증인 신자들이다. 일반인은 열 다섯 명밖에 안 된다. 결과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매년 5백명을 조금 넘는 정도로 우리나라 전체 군인 수 60만과 비교해 극소수에 불과하다. 지금도 정규 군대를 안 가고 사회복무요원이나 산업기능요원, 전문연구요원, 공중보건의 등으로 대체하는 보충역이 매년 8만 3000여명인 것을 보면 병역거부자 500여명 때문에 나라의 안보가 당장 거덜난다는 식으로 호들갑을 떠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병역기피나 병역거부와 관련해 정작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대를 이어가며 군대에 가지 않는 권력과 재산을 누리는 가진자들의 국가기망행위다. 멀리 볼 것도 없이 현재 잘 나가는 정치인들, 개중에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좌편향이라며 색깔론까지 부추기는 인사들의 병역관계를 들여다 보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들의 병역기피엔 하나같이 별 희한한 병명(病名)들이 동원됐다. 충북도내 전현직 국회의원과 정치인들의 병역면제 사유를 보더라도 고도근시, 두드러기, 수핵탈출증 등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것들 뿐이다. 실제 이런 병을 앓았더라도 요즘 의술로는 한 방에 고칠 수 있는 것들이다. 일반 국민들이 분개하는 것은 이같은 저질들의 악행이지 종교적 신념으로 온갖 험한 대체복무도 감수하겠다는 사람들이 아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숫자보다도 훨씬 많은 가진자들의 병역기피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체복무제는 현재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부분 선진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다. 때문에 유엔 인권위와 로마 교황청 등에서도 이 제도를 권장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선 쉽지 않은 것은 과거 군사문화와 레드컴플렉스의 잔재 그리고 보수 종교단체의 견제등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공교롭게도 유명정치인들의 병역기피를 보면 지금의 자유한국당 계보를 잇는 사람들의 사례가 유독 월등하다. 이명박은 기관지 확장증이라는 병명으로 군대를 면했고 그 휘하 인물이었던 김황식, 정운찬, 원세훈 등도 군대에 안 갔다. 그러면서 이들은 툭하면 청와대 벙커에 모여 전쟁불사!를 외치며 국민들을 긴장시켰다. 박근혜 정부의 이완구는 평발이라는 이유로 보충역이 됐고 황교안은 예의 두드러기를 내세워 군대를 기피했다.

지금은 찾는 이들이 덜하지만 지난 7,80년대 대학가에서 버틀란트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가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기독교 비평서인 이 책에 그는 이렇게 썼다. “생각건대, 종교는 인간의 두려움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종교는 부분적으로는 잘 모르는 것에 대한 무서움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의 곤경과 분쟁에 있어 내 편을 들어줄 든든한 형의 존재를 바라는 소망입니다. 좋은 세계는 지식, 온정, 용기가 필요하지, 과거에 대한 애석한 동경이나 아주 오래전 무지한 사람들에 의한 자유로운 지성의 구속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병역거부자가 주로 여호와의 증인과 관련돼 있고 또 이 제도를 보수세력들이 반대하는 현실에 비춰보면 ‘대한민국을 위한 좋은 세계’는 단순히 긴 역사를 관통해온 종교라는 신념만으로는 보장되지 않을 뿐더러 그렇다고 국민을 속이는 가진자들의 위선이 지켜주지도 않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니 나로선 ‘진정한 양심’은 과연 무엇이냐고 물을 수밖에 없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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