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가 부러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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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가 부러운 이유
  • 충청리뷰
  • 승인 2018.11.1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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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지난 주말 충북언론인클럽(회장 김동우 YTN충북본부장)의 경주 워크숍에 동행했다. 학창시절 수학여행 등으로 서너번 방문했던 곳이기에 별다른 기대감없이 출발했다. 종 종 주변인들이 그 곳에 여행간다고 할 때도 “그렇게 갈 데가 없냐”고 핀잔을 줬던 입장이다.

한데 당일치기 주마간산 식으로 둘러본 경주이지만 내 내 뒷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대릉원이라 불리는 고분(古墳) 공원과 첨성대, 안압지 등을 둘러보는 기본적인 일정이었는데 가는 곳마다 묘하게도 번번이 ‘청주의 현재’와 비교돼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나 뿐만이 아니라 일행 대부분이 그랬다고 한다. 어린 학생시절에 보던 것과 지금 성인의 눈으로 보는 것의 차이는 너무 컸음을 우선 고백한다.

경주가 자랑하는 유물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이지만 주변환경은 많이 달라졌고 바로 이 것이 부럽다면 부러웠다. 우선 유적지의 공간개념이 넓다는 게 그렇다. 특히 첨성대 주변의 드넓은 공간을 보면서 과거 별볼일 없게 방치되던 모습을 기억하는 나로선 그저 그 곳을 걷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들판 한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첨성대가 지금은 끝없이 넓은 사적공원의 중심으로 자리잡아 마치 광채를 내는 것같았다.

근무하는 회사가 직지특구인 청주시 운천동에 위치하기 때문에 틈만나면 주변을 돌아보게 되는데 그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너무 조악하다는 것이다. 과연 외국인이 이 곳에 와서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를 만든 인쇄술의 성지임을 체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고인쇄박물관과 복원된 흥덕사의 왜소함만을 탓하는 게 아니다. 경주 첨성대도 그 것만 놓고 보면 손바닥만하기는 마찬가지다.

문제는 그 역사성의 이미지를 키워주는 주변 공간과 환경으로, 직지특구는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도무지 사적지로서의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기껏 사유지와 개인 주택을 확보하고도 여기에 건물 짓는 것에만 올인하다 보니 오밀조밀 동선만 더 부추겼다는 지적을 받는다. 물론 직지를 체험하고 배우며 홍보할 수 있는 건물도 중요하지만 더 가치있는 것은 사적지로서의 원형보존과 이를 뒷받침하는 넉넉한 공간 배치인 것이다.

요즘 한국인들에게 가장 핫한 여행지로 각광받는 베트남 다낭의 호이안이라는 지역에 ‘올드타운’으로 불리는 관광명소가 있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세계에서 모여든 거리의 인파에 놀란다. 이 곳의 최고 관광자원은 이름 그대로 ‘오래된 도시’ 그 자체다. 베트남이 각 나라의 식민통치를 받던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들을 그대로 보존함으로써 세계적 관광지가 됐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까지 등재된 것이다.

과거 1000년 동안 베트남을 지배한 중국의 건축물로부터 100년을 식민통치한 프랑스, 그리고 일본 미국의 건축물까지 당시의 양식대로 원형이 보존되어 그 곳에 입주한 수많은 기념품과 먹거리 가게들이 볼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내 경험상으로도 외국여행에서 아시아, 유럽, 북미, 남미, 아프리카 사람들을 골고루(?) 한 곳에서 그렇게 많이 만나본 적이 없는 것같다. 그야말로 올드타운은 세계 건축박물관이자 세계 인종 박물관이라 말할 수 있다.

만약 청주 운천동의 직지특구가 처음부터 좀 더 넓게 설정되고 옛 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보존하는 쪽으로 관리됐다면 어땠을까. 물론 택지를 개발하다가 엉겁결에 발견된데 따른 공간확보의 한계는 불가피했다 하더라도 확인된 유물만이라도 상호 연계를 통한 확장성을 미리 담보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큰 것이다. 눈에 보일까 말까한 박물관 하나 달랑 지어놓고 여기가 직지를 만든 인쇄술의 성지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인근 신봉동 땅 속에 썰렁하게 백제유물전시관을 만들고선 여기가 백제를 상징하는 고분군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그렇다.

특히 신봉동 백제고분군은 토광묘를 비롯해 수혈식석곽분, 횡혈식석실분등 백제시대의 다양한 묘제를 알 수 있는 수십기의 분묘가 발견된 점에 비춰볼 때 발굴 당시부터 규모화된 오픈 마인드로 접근해 원형보존과 함께 주변 산성과 연계한 환경조성에 힘썼다면 아마도 세계적인 사적지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비약인지는 몰라도 청주시의 이같은 ‘쫌생이 DNA’는 지금도 살아움직이고 있다. 부산 감천, 통영 동피랑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피란지라는 확실한 메리트를 가지고 있던 ‘수암골’이라는 명소를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 채 줄곧 주물럭거리다가 끝내 의미없는 카페촌으로 변질시켰고, 누가 봐도 부지가 협소할 게 뻔한데도 현 시청 자리에 건물을 새로 짓느니 마느니 하며 십수년째 말싸움만 벌이고 있다. 도시재생 사업과 관련해서도 건축물을 새로 짓는 문제만 크게 여론화될 뿐 도무지 책임자의 소신이나 결단이 없다.

경주를 하루 둘러보고 갖게 된 생각은 시간을 충분히 내서 한 번 더 찾고 싶다는 것이다. 제대로 관광해보고자 하는 욕구에서다. 이 곳에서 만난 몇몇 외지 젊은이들도 똑같은 생각으로 다시 찾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경주는 역사와 재미가 다 있어 좋다”고 맞장구쳤다. 어쨌든 경주는 지금 사람들이 꼭 가고싶은 ‘곳’이 되어 있다.

물론 경주에도 고민은 있다고 한다. 경주시민들은 “평일에는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관광지”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주말에만 관광객이 몰리는 현상을 놓고 아직 세계적 관광지가 못 됨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화려한 밤문화가 없어 오후 9시만 되면 썰렁해지는 것과, 관광객들을 유혹할만한 밀집된 먹거리촌이 없다는 것도 고민거리라고 한다.

하지만 이 곳의 대표 ‘걷기길’로 자리잡고 있는 황리단길을 걸어본 결과 청주와는 분명 다른 점이 있었다. 전국의 똑같은 현상으로 이 곳 또한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들이 우후죽순늘어나는 추세이지만 건물 신축은 거의 없고 기존 한옥 등의 리모델링으로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높은 건물이 없어 드넓게 하늘을 조망할 수 있을 정도로 아스라하고 정겨워 보였다. 여기에서도, 좁은 공간에 보란 듯이 신축 건물들로 우뚝 솟은 청주 수암골의 카페들이 어지러운 모습으로 오버랩됐다.

충청리뷰가 이번 호에 공공건축물에 대한 기획기사를 냈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공직자들의 마인드가 얼마나,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비록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차려야 할 것같다.

경주시를 다녀온 총체적 소감이 바로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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