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속에 묻힌 1100년 전 다리, 다시 건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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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속에 묻힌 1100년 전 다리, 다시 건널까
  • 박소영 기자
  • 승인 2018.11.22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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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85m의 긴 다리, 내년에 남석교 2000만원 예산으로 구조진단
육거리 시장 안에 존재, 최근 남석교 모형 및 3D영상 전시회도

묻힌 보물, 세상에 나올까
남석교와 관아공원, 역사벨트

길이 80.85m의 고려 말 만든 것으로, 읍성 남문을 나와 무심천을 건너던 돌다리 남석교는 우리에게 ‘이름’이 오롯이 남아있다. 물길 이름조차 대교천(大橋川)이라 하였으니, 이 다리 이름에서 비롯됐다. 대교천은 18세기 후반 이후 무심천(無心川)으로 불리기 시작해 따로 쓰이다가, 남석교가 묻히면서 무심천으로 통일되어 불렸다. 남석교는 1936년 땅에 완전히 묻혔다.

옛 기록에 청주의 큰 다리(大橋)는 달리 남석교라 했는데, 옛 정진원(情盡院-원 나라에서 운영하던 공공여관이었으나 조선후기에 없어짐) 앞 다리라고 불렸다. 현재 청주신협 본점에서 꽃다리 방향으로 옛 석교파출소 자리에 다리가 놓여있다.

 

1924년 일본이 발행했던 엽서에 나타난 남석교의 옛모습이다.
현재 남석교는 육거리 시장 내에 묻혀져 있다. 입구에 대형간판으로 표시만 돼있다. 사진/육성준 기자

남석교 이름 지금도 남아있다

 

고려가 건국한 지 1100년. 청주를 대표하던 고려의 보물, 남석교는 지금 육거리시장 밑에 잠들어 있다. 남석교를 기억하는 전시회가 청주백제유물전시관에서 10월 25일부터 12월 16일까지 열리고 있다.

남석교 모형을 70%로 축소해 보여주기도 하고, 남석교의 축조과정을 ‘3D영상’으로 재현했다. 남석교와 관련한 사진 자료 및 고지도, 사료 등도 전시해 땅 속에 있는 다리를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다.

강민식 백제유물전시관 학예사는 “남석교는 2004년 일부만 발굴해 전체 길이를 확인하게 됐다. 고려시대의 다리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지금은 땅 속에 묻혀 있어 따로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못했다. 고려 건국 1100년을 맞아 남석교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널다리 형태의 남석교는 1906년 무심천 대홍수가 나서 물길의 지형이 바뀌게 되고, 1910년 퇴적된 모래에 묻히게 된다. 1932년 일제강점기 때 무심천 자리에 제방을 세우는 바람에 남석교는 완전히 매립되게 된다. 당시 30cm두께의 시멘트가 다리 위에 부어졌고, 이후 육거리 시장이 형성되면서 20cm두께의 아스콘이 더 덮여졌다. 현재 남석교의 몸체위에 육거리 시장 난전이 펼쳐져있다. 전통시장 활성화사업으로 현재의 남석교 위치는 대형간판으로만 표기돼 있다.

백제유물전시관에서는 남석교 관련 전시를 한다. 남석교의 실제모습을 축소해 모형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진/육성준 기자

청주시는 남석교에 대한 구조진단을 내년에 2000만원을 들여서 할 예정이다. 청주시 관계자는 “2004년엔 길이만 확인했다면 이번에는 구조물에 대한 안전진단을 하는 것이다. 일단 안전진단을 해봐야 그 다음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현재 이곳에 육거리 시장 상인들이 장사를 하고 있어 시가 이 일대를 매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다리의 시작과 끝이라도 알 수 있도록 일부 구간에 한해 유리로 내부를 보여주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시 관계자는 “이 또한 안전진단을 해봐야 아는 문제다”라고 설명했다.

남석교가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다면 이는 국보로까지 지정될 수 있는 가치를 갖고 있다. 학계 관계자 모 씨는 “만약 문화재로 지정된다면 현장보존을 해야 한다. 육거리 시장 상인들이 떠나야 하는 데 반발이 상당할 것이다. 2004년에 조사만 한다고 해도 난리가 났었다. 복원된다면 청주의 가장 가치있는 보물이 되겠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많아서 단체장들도 쉽게 나서지 못할 것이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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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 7기, 역사벨트 조성한다

남석교, 중앙공원, 연초제조창, 정북토성, 신봉동 고분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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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 7기 청주시의 보물들은 한 발짝 시민들에게 다가올 수 있을까. 한범덕 청주시장은 조선시대 청주목사가 근무했던 관아건물인 청주동헌 청녕각과 KT건물 일부 공간을 매입해 중앙공원까지 연결짓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이 일대를 ‘관아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이다. 청주동헌을 둘러싼 옛 청원군청 자리가 이전하면 ‘그림’을 그리기가 쉬워진다. 시는 청주청원통합으로 이곳을 제2청사로 쓰고 있다.

통합시청사가 완성되면 옛 청원군청 자리는 허물면 된다. 하지만 철거는 통합시청사가 건설돼야 가능한 일이라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역사벨트도 구상중이다. 시는 남석교, 중앙공원, 연초제조창, 정북토성, 신봉동 고분을 잇는 벨트를 조성해, 걸으면서 문화재를 보고 문화공간을 만끽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짜고 있다. 그렇게 되면 구도심을 걸으면서 문화재를 일상에서 만날 수 있게 된다.

청주테크노폴리스 내에 지어지는 유물전시관의 경우 청주시가 직영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학계 관계자는 “전문인력을 파견하지 않고 청원경찰이 문만 따주는 형태가 돼서는 의미가 없다. 시가 지금이라도 개입해 유물전시관의 성격을 규정하고 제대로 지어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전시관 짓는 것을 건설사에게만 맡겨두면 이익 우선으로 최소한의 조건만 맞추게 된다”며 “초기백제 시대의 청주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마지막 장소다. 그동안 택지개발로 많은 유적과 유물이 땅에 묻혔다. 앞으로 더 이상의 대단위 개발사업은 당분간 없는 만큼 이곳을 잘 활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록상 청주의 존재는 685년 삼국사기에 처음 서원소경으로 나온다. 686년에 세워진 운천동 사적비도 발견됐다. 600년 이전의 청주의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 유물은 현재 대단위 개발 중인 테크노폴리스 사업에서 나왔다. 초기백제 시대의 집단 거주지가 나온 것이다. 학계 전문가는 “6세기 이전 3~5세기 청주의 모습을 이야기할 수 있는 유적이 나왔지만 다시 묻히게 됐다. 쇠와 구슬을 만들던 제련시설, 무덤 등 마을 터가 나왔다”며 “지금이라도 미래세대를 위해 단체장은 역사유물 보존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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