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시인의 생가에 갔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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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의 생가에 갔다. 그런데?
  • 충청리뷰
  • 승인 2018.11.22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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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 노은면 출신, 시 ‘농무’는 교과서에도 실려 있어
엄 진 주 충주 국원고등학교 2학년

국원고는 2018년 현재 충북형 혁신학교인 행복씨앗학교 4년차를 맞이하고 있다. 지역마다 소위 ‘우수지역 인재 양성’이라는 이름으로 각 지자체에서 예산을 지원하고 있으나 성적이 우수한 상위권 학생들의 명문대학 진학에 중점을 둔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국원고에서는 ‘내 삶이 나고 자란 곳, 지역을 다시 보다’라는 모토로 충주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되돌아 보고 진정한 지역인재의 상을 성찰하기 위해 다양한 지역연계 교육과정을 실시하고 있다.

충주의 문화예술인 등 전문가를 초청하여 매월 개최하는 인문학 아카데미, 학교의 연꽃공원에서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한여름밤의 마을축제, 학교 인근 11개 경로당 정기적 봉사활동 및 어르신 자서전 쓰기, 학교주변 마을 꽃밭 가꾸기 및 벽화그리기 등의 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신경림 시인 생가 복원 활동’은 ‘청소년의 눈으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청소년사회참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학년 학생 20명이 지난 1,2학기 동안 방과후에 진행하고 해오고 있다.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는 다양한 지역문제를 함께 발굴하고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마을에 대한 자긍심을 키우고 진정한 지역인재의 상을 재정립할 것으로 기대된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이하 생략)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농무’라는 위의 시는 신경림 시인이 나고 자란 충주시 노은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시는 농악을 소재로 하는 농촌시로 농민들의 애환을 소박하고 여과없이 가장 한국적인 정서로 일궈낸 가장 한국적인 냄새가 나는 서정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의 생가는 현재 어떤 모습일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국원고 2학년 학생들은 올해 ‘내 삶이 나고 자란 곳, 마을을 다시 보다’라는 주제로 충주의 지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 활동을 전개해오고 있다. 그러던 중 ‘농무’의 배경이 되었던 노은면을 찾아서 1970년대 우리 농촌의 현실을 더듬어 보기로 하였다.

방치된 생가 모습

그런데 시인의 생가를 찾은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마을 입구에 있는 생가 표지판을 따라 몇 걸음 걸으니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지붕과 대청마루가 허물어져가는 폐가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생가 담벼락 앞에 세운 안내판이 아니었다면 거의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작년 충주시 무학시장 안에 있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옛집(반선재)을 수억 원을 들여 훌륭하게 복원하였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더욱 비교가 되었다. 세계적인 정치인과 한국적인 시인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 때문일까?

우리는 노은면장을 만나서 직접 확인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시인의 생가는 사유시설이기 때문에 노은면에서 생가복원을 추진할 사항이 아니며, 충주시에서 매입하여 복원하길 바란다.’는 짧은 문자만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생가 주변 마을주민들한테도 인터뷰를 시도했다. 노은면에 오래 살았거나 젊을 적에 신경림 시인을 알고 있는 몇몇 노인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무관심하거나 왜 이런 걸 물어보느냐는 식으로 경계하는 눈빛을 보였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 알고 있나 싶어서 생가를 방문한 다음날 우리는 충주시립도서관 구내에 있는 충주문학관을 방문하여 신경림 시인에 대한 전시실태를 조사하였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시실 안에는 신경림 시인의 아주 오래된 낡은 사진 1장과 먼지가 잔뜩 묻은 시집 2권만 달랑 놓여 있었다. 충주시립 도서관측에 누가 관리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과거에는 충주시 문학단체에서 자발적으로 관리했으나 기득권을 주장하는 일부 단체의 갈등 때문에 현재는 거의 방치되고 있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학교로 돌아와서 우리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왜 이렇게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 방치되고 있는지에 대해 토론하였다. 우리의 아픈 농촌현실을 정면으로 비판한 민중시인이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나왔고, 충주의 문화관광 마인드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두 가지 의견 모두 우리와 같은 청소년의 눈으로 보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경림 문학관 방문 모습

그래서 신경림 시인을 직접 만나보고 시인의 생각을 들어 보고 싶었다. 학생들이 일일이 손편지를 써서 시인께 보냈다. 팔순의 나이를 넘기신 시인은 요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아쉽지만 만남이 어렵다고 답변하셨다. 비록 신경림 시인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를 다시 찾아 읽으며 수 십년 동안 변함없이 시인의 고향집을 지키는 느티나무를 떠올렸다.

오랜 세월이 지나 고향엘 갔더니/ 고향집 앞 느티나무가 옛날처럼 커져 있다/
내가 늙고 병들었구나 이내 깨달았지만/ 내 눈이 이미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진 것을
나는 서러워하지 않았다/ 다시 느티나무 그 커진 눈에/ 세상이 너무 아름다웠다
(‘다시 느티나무가’ 중에서)

신경림 시인에게 보면 편지들

시인이 언제든 고향마을을 다시 찾았을 때, 아니 시인을 알고 있는 그 누구라도 언제든 충주시를 찾아 왔을 때 오랫동안 버티고 서 있는 저 느티나무처럼 반갑게 맞이할 수 있는 생가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본다. 우리는 신경림 시인의 생가 복원을 위해 오늘도 홍보지를 들고 충주시민들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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