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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변증법에서 찾은 멋진 신세계슬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오정란 해피마인드 심리상담소장

책 <성의 변증법>은 슬라미스 파이어스톤이 불과 25살에 쓴 페미니스트 이론서이다. 이 책은 1970년에 출간되자마자 단숨에 그녀를 페미니즘의 급진적 이론가로 부상시킨다. 당시에 여성 운동은 법적 평등을 우선시하는 자유주의 여성운동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에 성의 변증법은 가히 혁명적인 책이었다. 파이어스톤은 책의 첫 장에 ‘견뎌내었던 시몬 드 보부아르를 위하여’라고 썼다.


제2의 성을 쓴 보부아르는 여성 억압의 지난한 역사를 썼다면 파이어스톤은 여성 해방의 대안적 방법을 고민한 책이라 할 수 있다. 파이어스톤은 생물학적 가족의 억압을 이야기 하며 인공생식으로 태어난 아기와 아기들을 공동체 가구에서 양육하는 멋진 신세계를 그렸다. 슬라미스 파이스톤의 이러한 생각은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을 읽으며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세계를 만날 수 있었다.


<멋진 신세계>는 이십 세기 문명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묻는 소설이다. 공상과학소설로 읽어도 무리가 없지만 당시에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상상의 세계를 묘사하는 것으로 읽혀졌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에 소름 돋게 맞아떨어지는 지점이 있다. 작가의 통찰력은 참으로 놀랍다. 올더스 헉슬리는 영국이 낳은 셰익스피어를 열렬히 애정하는 작가이다. 셰익스피어 희곡 대사들은 끔찍한 당대의 현실을 비극적으로 노래했었다. 이 소설의 표제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5막 1장)에 쓰인 것이다.

성의 변증법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지음 김민예숙, 유숙열 옮김 꾸리에 펴냄


산업혁명으로 급격하게 발달한 문명은 인류에게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며 유토피아를 꿈꾸게 했지만, 그 기대는 얼마 가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며 꿈은 사라지고 전쟁의 폐허 위에서 ‘우리는 무엇인가’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게 했다. 인간의 실존에 대한 물음은 각각의 현재 존재하는 양식에 대해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책무(?)를 안게 됐다.


나는 누구이고 당신은 누구인가

인간은 무엇이든 대가 없이 얻을 수 없었다. 편리성과 접근성은 곧 획일적인 인간을 만들어내고 다양한 의견들을 사장시킨다. 한 사람의 고유한 존재로 있기보다는 역할 수행으로 가치를 평가한다. 얼마나 그 역할을 잘 해내는가에 있다. 결국 문명의 발달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을 노예화하며, 인간으로서의 가치 생명에 대한 가치를 우습게 만들어버리는 (숨도 안 쉬고 폐기해 버리는) 참상을 이 소설에서는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병에서 태어난 아이는 정해진 계급에 할당된다. 곧 자기 계급에 기계적으로 적응될 수 있는 소질을 갖춰서 태어나는 것이다. 그들의 계급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심리학적 기술을 이용해 교육을 받으며, 주어진 환경에 절대로 반항하지 않고 24시간 내내 명랑할 수 있는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가 세워진다. 이러한 사회를 유토피아라고 한다.


소마라는 묘약은 술과 종교의 효과를 낸다. 소마 덕분에 인간은 항상 무릉도원의 생활을 향유할 수 있다. 인간은 병에서 제조되었기 때문에 부모 자식 관계가 없으며, 가족관계도 부부관계도 없다. 곧 관계가 없다. 만인은 만인의 것이다. 극단적인 자유연애, 완전한 잡혼이 장려된다.
고독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 우울을 인간이 갖는 고유한 정서임을 인정하기보다는 병리적으로 접근하는 사회를 보며 우리가 예찬해 맞이하는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인터넷 제국 스마트 폰은 결국 하나 된 세계에 우리를 가두며, 같은 지점에서 웃고 울게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안락함과 편리함 추구의 끝은 어디일까? 진정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며 내가 산 것인지 나와 유사한 그 무엇이 나를 대리해 산 것인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슬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사람들이 가면 뒤에 그들의 진짜 얼굴을 숨기고 있다는 신념으로 고통 받았다고 한다. 맨얼굴로 살 수 없게 하는 사회적 일상에서 나는 누구인지, 당신은 누구인지, 우리가 사는 세계는 과거의 누군가가 열렬히 투쟁해서 얻은 신세계인지를 치열하게 물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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