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영화로 만나는 11월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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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화로 만나는 11월의 눈물
  • 충청리뷰
  • 승인 2018.11.2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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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제 아무리 팩트를 소재로 한 영화라도 거기엔 반드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픽션의 요소가 가미된다. 안 그러면 재미도 없고 구성 자체가 힘들다. 하지만 최근 극장가를 달구고 있는 두 영화는 오히려 영화만이 만들 수 있는 실제에 대한 ‘인식의 필연성’을 공감케 한다. 그리고 그 것을 일깨우는 건 관객들의 ‘눈물’이다. ‘보헤미안 랩소디’와 ‘국가부도의 날’이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본 사람들이 주변에도 이 영화를 강추하는 경우를 여러 번 봤다. 그러면서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하나같이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퀸’의 음악이나 한번 들어볼까 찾았다가 똑같은 증상(?)이 엄습하는 바람에 동반한 가족들한테 아주 민망했다는 지인들도 여럿이다. 나 역시 그랬다. 젊었을 때 혹은 학창시절, 프레디 머큐리의 격한 노래를 읊조렸던 세대들로선 모처럼, 아주 간만에 좋은 영화를 만난 것이다.

솔직히 이 영화를 보기전 까지는 그에 대해 깊이 알지 못했다. 그저, 어느 땐 폭발적이다가도 돌연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게 하는 그의 변화무쌍한 노래를 좋아했을 뿐인데 영화는 그 이면의 프레디 머큐리라는 ‘인간’에 방점을 두고 스토리를 끌어가고 있다. 공항에서 화물을 나르던 별볼일 없는 단순 노동자가 위대한 록커가 되기까지의 과정도 그렇고 영국의 식민지에서 태어난 약소국가 출신 이민자의 애환, 그리고 세계적 톱스타의 은밀한 동성애 등이 관람객들에게 예기치 않은 메시지를 전달하며 끝내는 ‘극장 떼창’이라는 새로운 현상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영화의 재미는 당연히 지난 것에 대한 사실 묘사의 긴장감과 그 것에 기초한 한 스타를 향한 추억의 되새김에 있다. 그러기에 관객들이 흘리는 눈물은 단순히 감상의 발로가 아닌 그의 노래만큼이나 격한 심정적 ‘공감’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극장 떼창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다. 프레디 머큐리는 1991년 11월 24일 동성애에 의한 에이즈 후유증으로 사망한다. 겨우 45세였다. 세모를 앞둔 그의 죽음 27주년 11월이 뜻하지 않게 많은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개봉도 하기 전에 미국 일본 등 세계 17개 국에 선판매되며 관심을 끌었다. 이 역시 21년 전의 이른바 ‘IMF 사태’로 불리는 외환위기를 경험한 사람들에겐 ‘보헤미안 랩소디’와 유사한 감흥과 이미지로 다가왔다. 당시의 ‘실체적 사실’에 대한 기억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국가부도의 날은 외환위기가 극도로 치닫던 딱 일주일 간, 위기를 막으려는 사람과 이를 악용해 베팅하는 사람 그리고 가족과 회사를 지키려는 보통의 사람들까지, 1997년 외환위기속에서 서로 다른 선택으로 발버둥을 쳤던 이들을 그렸다.

하루아침에 회사가 파산하고 가정이 해체되며 거리로 나앉을 수밖에 없었던 당시 가장들은,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다리에서 뛰어내리고 구치소에 갇혀 “내 새끼 어떡하냐”고 울부짖을 때마다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20%대로 치솟은 이자율로 신용카드 폭탄을 맞으면서 모든 가정생활이 한 순간에 무너졌던 기억을 참으로 오랫만에 떠올리게 한 것도 이 영화다.

시사회에서 주연배우 김혜수가 한 말, “제가 하든 하지 않든 이 영화는 반드시 만들어져야 했고, 정말 잘 만들어져야 했다”가 관람 내 내 머리 속을 맴돌았다. 이 말엔 그가 배역을 수행하며 느꼈을 분노가 서려 있다. 국민은 왜? 무엇 때문에 당했을까. 오로지 생업에만 정진하며 하나도 잘못한 게 없는데 인생이 망가지고 평생의 고통을 겪었다. 또 어떤 이는 아직도 그 상처가 진행형일텐데 국가부도의 원인은 과연 무엇이고 이를 일으킨 당사자들은 사후에 그만한 책임은 졌는지, 이 것들을 묻고 싶은 것이다. 이 영화가 끝내 관객들에게 남긴 질문은 나라의 지도자부터 농투성이에 이르기까지 국가 위기에서 “각자의 신념과 역할을 제대로 갖고 했느냐”는 것이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지만 지금까지도 이 나라의 중장년들은 1997년 12월 3일 오전 7시 35분 싱가포르항공 880편의 트랩을 내려오는 미셸 캉드쉬 IMF 총재의 거만한 모습을 결코 잊지 못한다. 그 이전인 11월 16일 그는 극비리에 방한해 협상을 마쳤고 닷새 후인 21일 우리나라는 IMF에 구제금융을 공식 신청하게 된다. 불과 며칠전만 해도 김영삼은 세계화!를 천명하며 ‘학(확)실히’를 그렇게 외쳐됐건만 졸지에 IMF의 경제식민지가 되어 캉드쉬라는 점령군을 이날 공식적으로 맞아들인 것이다.

’97년 외환위기의 근본원인은 정경유착에 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당시 정태수의 한보그룹을 지목하지만 이 게 전부는 아니다. 그 이전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적경유착 적폐가 그 때서야 비로소 본체를 드러낸 것 뿐이다. 물론 수 조원이 투입된 충남 당진 한보철강의 부실이 외환위기를 부른 단초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 때 당진에선 지게만 지고 한보 앞을 어슬렁거려도 한달 100만원을 벌고, 인근의 자그마한 면 동네에 다방이 10여개나 되었다는 야사(野史)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여기에 쓰인 돈은 정경유착의 전리품으로 한보에 마구 투입된, 다름아닌 국민세금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각종 경제지표의 악화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야당은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을 원인으로 꼽으며 압박하고 있지만 작금의 경제난은 ’97년 외환위기 때처럼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누적된 것의 후유증이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인 ‘각자의 신념과 역할’은 지금의 국가적 분위기와도 맞물려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맹점이라는, 대중은 투표로 리더를 뽑지만 그 리더가 대중을 배신할 수도 있다는 걸 너무 쉽게 잊는다. 박근혜 국정농단 세력들의 때이른 준동은 정신바짝 차리고 막아야 겠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엔딩곡 <Don't stop me now>의 가사는 이렇게 끝난다.-Don't stop me now(cause i'm having a good time) Don't stop me now(yes i'm havin' a good time) I don't want to stop at all-. 이렇게 삶을 구가하고 싶었던 그였지만 황망하게도 너무 일찍 갔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그의 노래처럼 ‘너무 즐거워서 절대 멈추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곳들이 너무 많다. 그들과 그 것들의 종언이 언제 들이닥칠 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청와대, 대통령, 국회, 국회의원, 사법부, 검찰, 사립유치원, 언론... 모두가 그렇다. 국민들의 운명을 또 이들에게 맡겨야 하는가.

오늘, 대한민국은 분명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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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박사 2019-03-16 17:52:07
공감의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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