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이슈·기획 박영길의 요리로 만나는 세상
자극적이지 않고 따뜻한 12월의 밥상가지를 볶고 간장 넣은 뒤 쌀 위에 얹어 뜸들이면 가지밥

가을이 절정을 지나면서부터 공룡들은 매우 바빠졌다. 지난 7년 이상의 기간 동안 촬영하고, 본격적인 제작기간만 2년이 넘게 걸린 다큐멘터리 ‘사수’를 상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에 열린 DMZ 국제 다큐멘터리 상영을 시작으로 다양한 지역의 인권/노동영화제에서 상영중이고, 서울독립영화제에서도 상영중이다.


이 영화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지금까지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현대자동차그룹의 사주에 의해서 벌어진 노조파괴에 맞써 싸우고 있는 현실을 다른다. 그동안 공룡이 유성기업의 투쟁에 연대하며 촬영해 왔던 기록들을 중심으로, 그 안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삶을 다큐를 제작하였다. 공룡들이 사수라는 다큐영화를 통해서 다시 한 번 한국사회 노동자들의 삶이 어떤 현실에 처해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만들려고 노력중이다.


냄비밥으로 만든 가지밥
어쩌면 깊어가는 계절처럼 지난 8년의 시간을 정리하면서 다가올 2019년을 조용히 준비하는 시간이 쌓여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지금 견뎌내고 엮어가며 살아가는 시간은 단순히 2019년 계획서라는 정리된 문서가 아니라 각자의 삶속에 켜켜이 쌓여가는 묵직한 마음들이 아닐까 싶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기나긴 투쟁의 시간 속에서 함께 살아가며 새겼던 마음들이 하나의 영화로 만들어지듯이, 우리는 어느 순간 견뎌내야 할 현재와 만들어가야 할 미래가 공존하는 시간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가지밥


가령 지난 주말에 공룡 마을까페 ‘이따’에서 따뜻한 저녁식사를 함께한 이형주 씨도 그렇다. 독립뮤지션으로 다양한 투쟁현장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음색과 잔잔한 기타연주를 들려주던 형주 씨는 어느 순간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삶을 담아서 첫 음반을 준비 중이다. 공룡들과도 이런 저런 인연들로 함께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형주 씨의 첫 음반을 공룡이 함께 하기로 했다. 내년에 공룡이 프로듀싱과 음반제작을 하기로 했다는 거다. 무언가 거창한 기획에 의해서 이뤄졌다기 보단 함께 살아가며 엮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금의 활동과 내년에 만들어가고 싶었던 것들이 연결되며 이루어진 흐름이랄까?

도루묵조림
홍가리비찜


그렇게 며칠 남지 않은 올해. 함께 할 공연들을 잡고 음반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저녁을 준비했다. 이런 날은 무언가 거창한 요리보다는 좀 따뜻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요리가 하고 싶어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먹을거리를 마련했다.


첫 번째로 준비한 메뉴는 가지밥이다. 원래 냄비밥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인데 가지밥을 냄비에 했다. 가지밥은 우선 프라이팬에 기름과 대파 썬 것을 넣어서 파기름을 낸 후에 깍뚝썰기한 가지를 넣어서 볶는 게 우선이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파기름에 볶은 후에 간장과 액젓 등으로 맛을 들이고 씻은 쌀 위에 얹어서 밥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 풍미를 더하고 싶을 때는 돼지고기나 소고기 다진 것을 파기름에 넣어서 같이 볶은 후에 요리하면 훨씬 더 감칠맛이 돈다. 전기밥솥에 하면 무척 간단하지만, 밥솥에 향이 배일까봐 냄비밥으로 했다.


도루묵은 조리고, 홍가리비는 찐다
도루묵조림은 일반적인 생선조림과 똑 같다. 양파와 무를 큼지막하게 썰어서 냄비 밑에 깔고 그 위에 도루묵을 얹은 후에 만들어 놓은 양념장을 끼얹어주고 쌀뜨물을 자작하게 넣어서 조려주면 된다. 예전에는 무와 양파만 넣어서 조렸는데, 최근에는 감자나 고구마를 넣어서 같이 조려서 먹는다. 조림양념이 배인 감자, 고구마 맛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때 요령은 양념이 배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무는 좀 얇게 썰고, 감자 고구마는 두껍게 썰어야 좋다. 안그러면 무가 익을 때 쯤 감자, 고구마가 뭉개져버리기 때문이다.


홍가리비는 그냥 쪄냈다. 요즘 홍가리비가 제철이라서 가격이 싼 편이다. 하지만 다른 조개에 비하여 요리법이 많지는 않다, 가리비는 맛 자체가 매우 달달해서 누구나 좋아하지만 그만큼 많은 요리에 이용되지는 않는 것 같다. 쪄서 먹는 게 대부분인데, 홍가리비 구이같은 다른 요리들도 대개는 1차로 쪄낸 후에 요리한다.


가령 일반적으로 많이 요리해먹는 방법은 녹인 버터에 다진 마늘을 조금 넣은 후 잘 섞어서 쪄낸 가리비위에 얹어 오븐에 살짝 구워내는 식이다. 가리비치즈구이도 마찬가지로 쪄낸 가리비 위에 버터와 치즈를 얹은 후에 오븐에 구워내면 된다. 공룡에는 오븐이 없어서 보통 오븐구이는 하지 않는 편이다.


함께 저녁을 먹던 따뜻했던 시간을 생각해보며 나는 내년엔 무엇을 하고 어떤 사건들을 겪어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여전히 아프게 싸우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유성 노동자들과 여러 투쟁현장들 속에서 연대하며 자신의 음악으로 삶의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있는 형주 씨의 사이 어느 쯤에서 나는 과연 무엇으로 이 시간들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관계맺고 나갈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정말 따뜻한 가지밥처럼, 아니면 제철에만 즐길 수 있는 도루묵처럼, 그것도 아니면 지속되는 무언가와 특별한 순간이 섞이는 그런 요리로 기억해 낼 수 있을까?


충청리뷰   webmaster@ccreview.co.kr

<저작권자 © 충청리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충청리뷰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