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병풍에 둘러싸인 청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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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병풍에 둘러싸인 청주시
  • 박소영 기자
  • 승인 2018.12.1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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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부터 동 단위 개발 시작…용암지구부터 ‘시계방향’으로 외곽에 대규모 건설
용암지구-분평지구-산남지구-가경지구-복대지구-율량지구-테크노폴리스지구…

자고나면 떨어지는 아파트값
무너진 한계선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이 쓴 인문지리서 <택리지>를 보면 ‘청주 고을은 서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살기가 있다’라고 기록돼 있다. 무심천 물이 북쪽으로 흐르는 모양이 꼭 ‘화살’같고 미호천 물은 남쪽으로 흘러 ‘활’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고도 했다. 따라서 살기를 없애고 고을의 기운을 살리기 위해 조상들은 인위적으로 인공숲인 북수와 남수를 조성했다. 북수는 봉림수라고도 불렸는데 지금의 봉명동 지역을 말한다. 지금도 흔적이 남아있다.

또 예로부터 미호천 주변은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했다. 지금은 ‘미호천 조망’을 마케팅으로 삼아 옥산지구 분양이 이뤄지고 있다. 옥산지구는 오창지구와 도로로 연결이 된다.

 

청주시내에 동 단위 개발이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용암지구부터다. 이후 분평지구가 건설됐고, 2000년 들어서 산남지구와 가경지구가 연이어 개발됐다. 그 뒤로 복대지구, 율량지구에 이어 최근 테크노폴리스 지구까지 구도심을 놓고 한바퀴를 ‘삥’둘러 아파트가 생겼다.

 

조상들은 인공림을 조성해 아늑한 환경을 만들었지만 후손들은 청주시내 일대에 이른바 ‘아파트 병풍’을 쳤다. 한 역사학자는 “무심천 라인만 겨우 살아남았다. 우암산도 주상복합아파트 건설로 스카이라인이 훼손했다. 사실 무심천 일대를 제외하곤 전체가 아파트로 둘러 싸여있으니 조상들이 보면 뭐라 할지 모르겠다. 환경적으로도 보울(bowl)현상이 일어나 좋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람이 동물로 살아가는 조건에 대해 후손들은 생각하지 않았다. 역사와 생태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개발이익만을 따졌다. 오로지 돈의 논리만이 통용됐다”라고 덧붙였다.

 

산을 뭉개고 새로운 동네 건설

 

청주시내에 동 단위 개발이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용암지구부터다. 이후 분평지구가 건설됐고, 2000년 들어서 산남지구와 가경지구가 연이어 개발됐다. 이어 복대지구, 율량지구에 이어 최근 테크노폴리스 지구까지 구도심을 놓고 한바퀴를 ‘삥’둘러 아파트가 생겼다.

청주시내 지도(사진)를 보면 아파트가 한 바퀴를 돈 것도 모자라 다시 한 번 더 감싸 안는 형식으로 개발이 일부 진행됐다. 방서지구와 동남지구가 같은 시기에 개발이 시작됐지만 현재 단지수가 적은 방서지구는 완료됐고, 동남지구는 진행 중이다.

2000년대 이후 아파트 건설은 산업단지와 지구단위 개발이 동시에 이뤄졌다. 오창지구, 오송지구, 옥산지구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테크노폴리스 지구 또한 마찬가지 방식으로 산업단지와 상업용지, 아파트 개발이 이뤄졌다.

우연인지 몰라도 시간의 흐름을 따라 용암지구부터 시계방향으로 정확히 청주시내 아파트 건설의 시계가 움직였다. 살던 낡은 아파트를 팔고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가는 것이 하나의 공식이었다. 그런데 이 공식이 최근 깨지고 있다. 헌 아파트를 내놓아도 팔리지 않는 것이다.

청주에서 부동산업을 하고 있는 박윤희 씨는 “한계점이 무너졌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청주시내 30평대 아파트가 1억 4000~5000만원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용암, 금천, 분평동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하락했다. 방서지구로 옮겨간 인구도 있겠지만 많이 떨어진 것은 그만큼 거품이 많았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오히려 구도심의 오래된 아파트들은 덜 오르고 덜 떨어졌다”라고 설명했다.

청주시내에서 부동산업을 하다 세종으로 터를 옮긴 한복일 씨는 “청주시내에서 부동산업을 하다 아예 접은 사람들이 많다. 거래 물량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분위기는 기존 아파트를 급매로 내놓고 신규아파트로 가는 추세다. 아파트 가격은 공급과 수요로 예측하는 데 청주시는 사실 5년 전에도 공급이 더 많았다. 물량 조절을 지자체가 나서서 했어야 했는데 실패했다”라고 설명했다.

인근 대전시만 해도 아파트 가격이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 유성지구와 노은지구 등은 정부가 투기 과열지구 지정을 검토 중이다. 세종시 또한 미분양 아파트가 거의 없다. 세종시는 투기 과열지구, 투기지구로 이미 지정이 돼 있다.

한 씨는 “청주시내 아파트는 호재가 보이지 않는다. 세종시 또한 서민입장에선 분양 받기가 쉽지 않다. 은행대출을 전체 아파트 대금의 40%로 제한하기 때문에 만약 3억 분양가 아파트라면 2억 현금을 갖고 도전해야 한다. 역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동산 정책이 바뀌었고 경기가 요동을 쳤다. 지금은 노무현 정권 때와 분위기가 비슷한데 대출 규제가 있다 보니 서민들이 집 사기는 더 어려워진 것 같다. 인구가 줄고 있고, 경기도 안 좋으니 미래를 예측하긴 더더욱 어렵다”라고 말했다.

 

대출 이자 높고, 받기도 까다로워

 

청주시내 대형평수 아파트의 경우 ‘탈출’이 더 어렵다. 최근 건영아파트에 살고 있는 모 씨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려고 45평 아파트를 급매로 1억 5000만원에 내놓았다. 실거래가는 2억원선이다. 1년 전부터 내놓았지만 거래가 안 됐기 때문이다.

또 신규아파트를 분양받고도 기존아파트가 팔리지 않아 2주택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현재 신규아파트를 분양받고 입주할 시기부터 2년 동안 기존 아파트를 매매하지 못하면 2주택자로 중과세를 내야 한다. 시민 모 씨는 “기존 아파트가 팔리지 않아 결국 입주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2주택자가 된다는 심리적 부담감도 크다”라고 심경을 전했다. 또 분양권을 대행사에 되파는 경우도 있다. 부동산 업자들은 “일부 시민들은 분양권을 대행사에 손해를 보고 파는 경우도 있다. 2000만원 정도 손해를 보고 분양권을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라고 귀띔했다.

청주시내에서 부동산업을 크게 하는 모 씨는 “평수가 큰 아파트는 무조건 처분해야 한다.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자기가 살집 하나만 남기고 부동산은 모두 정리하라고 몇 년 전부터 지인들에게 말했다. 청주는 동남지구가 받쳐주지 못하면 버블이 올 것이다. 인구유입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전망은 어둡다”라고 설명했다.

건설업계 종사자 모 씨는 “청주시내 대형건설사들은 이미 과잉 공급사태를 예견하고 몇 년 전부터 다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지자체가 아파트 분양 공급 관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청주시민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 지금은 아파트 가격이 동반하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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