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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읽히고 단숨에 읽히는 시제1회 권태응문학상 수상작 〈쉬는 시간에 똥 싸기 싫
이 안 시인〈동시마중〉편집위원

가령 이런 동시를 읽으면 조금 얄밉다. “선생님이 얼굴에 있던 점, 점, 점,/ 점을 빼고부터// 나는 선생님 얼굴에서 점, 점, 점,/ 점을 찾는다.”(‘점’ 전문) 읽자마자 그렇다는 생각이 바로 든다. 쓰인 단어도 많지 않다. 선생님, 얼굴, 점, 빼다, 나, 찾다로, 주어+부사어+목적어+서술어의 대구 형식이다. 대구는 반복이기에 언어의 경제성이 높고, 어른은 물론이고 어린이도 한 번쯤 경험해 봄 직한 일이라서 공감의 폭이 넓다.


최근 나온 시 전문 계간지 〈시인수첩〉에도 이 시인의 ‘점 때문에’란 동시가 실렸다. “나는 가끔/ 몸에 있는 점을 다 세어 본다// 한 달 전에는 17개더니/ 오늘은 16개다// 1개가 어디로 갔을까?// 30분 동안 세어 봐도 없다/ 동생이 세어 봐도 없다// 아……/ 점 하나가 없어져서// 숙제도 못 한다/ 책가방도 못 싼다”(전문) 얼굴이나 목, 손등에 있는 점도 아니고 ‘몸에 있는 점을 다 세어 본다’는 이 아이는 대체 어떤 아이일까. 첫 문장에서 바로 작품의 캐릭터가 툭 튀어나온다. 단숨에 읽히면서도 독자를 그냥 지나쳐버리지 않는다. 그게 무어든, 독자 마음에 하나쯤 툭, 남기고 간다. 쉽고 짧고 허술한 듯 보이는데, 말과 말 사이, 행과 행 사이, 연과 연 사이, 제목과 본문 사이가 벌어지며 길게 읽힌다. 허술한 정교함이라 해야 할까.


다음 작품은 최근에 읽은 달팽이 동시 가운데 가장 좋다. “집에 들어갈 땐/ 뒷걸음질이 최고지// 이 세상을 좀 더 오래/ 지켜볼 수 있잖아.”(‘달팽이가 말했어’ 전문) 다들 모르지는 않지만 누구도 이렇게 이야기한 적은 없기에 공감이 증폭된다. ‘달팽이는 집에 들어갈 때 뒷걸음질로 들어간다’에서 시가 발생하고, ‘이 세상을 좀 더 오래 지켜볼 수 있기에 그렇게 한다’는 해석에서 시가 완성된다.


사실 대단한 얘기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참 그럴싸하게 와 닿는다. 시란 게 그렇다. 혼자서 고집스레 나가기보다 이렇게 대상과 상황에 쓱 묻어가고 무심한 듯 실려 갈 때 힘을 갖는다. 힘을 쓰지 않아서 힘을 갖게 된다니, 얼핏 모순되는 것 같지만 이런 모순이 시의 실상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쉬는 시간에 똥 싸기 싫어 김개미 지음 최미란 그림 토토북 펴냄


짧은 것은 길게, 오래 읽히게
“기껏 돌 밑에서 나와// 돌 밑으로 들어간다.”(‘가재’ 전문) 제목으로 쓰인 ‘가재’란 말이 절묘하다. 나에게 가자고 해 놓고, 나에게 가재 놓고, 이렇게 읽히기도 하니까. 가재야, 기껏 그럴 거면 왜 같이 가쟀니. 가재 얘긴데 가재 얘기가 아니다. 가재 껍데기를 쓰고 기껏 집에서 나와 집으로 들어가는 내 모습이 떠오르니 말이다. 짧은 것은 길게, 오래 읽히고, 긴 것은 짧게, 단숨에 읽히게 쓰라는 말이 있다.


다음 시의 제목을 맞혀 보자. “흰 털 거위야,/ 너 원래 이렇게 지저분했니?”(전문) 털이 희어서 늘 깨끗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떤 상황에 놓이자 그렇게 지저분하게 보일 수가 없다. 상황이 바뀌거나 보는 자리가 달라지면 실상이 그대로인데도 큰 것은 작아지고 작은 것은 커진다. 먼지가 보석처럼 반짝거린다고 그것을 보석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먼지의 보석 같은 순간이 반짝거린다고는 말할 수 있다. 먼지가 보석인 때처럼, 흰 털 거위의 하양이 지저분해 보일 때는 언제일까. 제목은 ‘눈 오네’다.


권태응 선생 탄생 100년을 맞아 충북 충주시(시장 조길형)에서 제정한 권태응문학상의 제1회 수상의 영예는 김개미 시인의 세 번째 동시집 〈쉬는 시간에 똥 싸기 싫어〉(토토북 2017)에 돌아갔다.


위에 소개한 작품 중 ‘점 때문에’를 뺀 나머지 작품은 모두 이 책에 실려 있다. 짧은 작품보다 긴 작품이 더 많다. 최미란 작가의 그림과 독특한 판형이 시와 잘 어울리는 동시집이다. 문제 하나 더 내며 이 글을 마친다. 제목도 한 줄, 본문도 한 줄인데, ①과 ② 가운데 어떤 게 제목일까. ①선생님이 덜 무서워졌다 ②선생님이 방귀 뀌는 걸 봤다. (힌트: 온점을 눈여겨보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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