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처럼 날아가다가 사라져도 좋을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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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처럼 날아가다가 사라져도 좋을만큼…
  • 충청리뷰
  • 승인 2018.12.2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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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 해의 끝에선 늘 그렇듯 만감이 교차한다. 보람도 있고 아쉬움도 따른다. 더러는 왜 그랬을까? 왜 안 했을까?를 되뇌이며 후회도 한다. 거듭되는 세모의 안타까운 사고들은 참으로 우리에게 많은 생채기를 남겼다. 졸지에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은 그들의 고통을 헤아리는 것조차 겁이난다.

그래서일까. 무슨 송년회니 망년회니 하는 자리를 가면 꼭 등장하는 말이 하나 있었다. 올해 잘 버텼으니 새해에도 그렇게 살자는 것이다. 나이탓이겠지만 건네는 말들이 거의 대동소이하다. 건강이라는 말은 필수이고 별 탈없이 지금 이대로만 살아가자는 무색무취한 덕담만이 넘쳐난다. 당연히 식사자리에선 술에 대한 애착(?)이 예전같지 않다. 대신 또 한 해, 내년의 삶을 걱정하는 한 숨 소리가 더 커졌을 뿐이다.

근자에 동년배들에게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듣는 게 ‘3의 법칙’이다. 아무 때나 연락하고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친구 3명, 예금통장에 현금 3억원 이상, 적어도 3가지 이상 취미, 집에서 세끼를 다먹는 3식이는 절대금물 등 등이 이에 해당된다.

간혹 여기에 3명의 이성친구를 집어넣으려는 욕심많은 녀석의 의도 때문에 논란을 빚지만 대체로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다. 이들 조건만 다 갖춘다면 아닌게 아니라 후반기 내 인생에 꽃바람이 날릴 만도 하지만, 다른 건 다 자신있어도 현금 3억원은 죽을 때까지 불가능할 것같아 걱정된다.

요즘들어 특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친구 둘이 있다. 두 사람 모두에게서 삶의 방식이 바뀌는 것같은, 이른바 신상의 변화를 느끼기 때문이다. 친구를 묘사한다는 게 부담스럽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타지에서 살기에 우리 신문을 볼 리가 없고 그 정도의 금도는 충분히 있는 이들이다.

한 명은 대학 친구인데 학생때부터 철저하게 현실주의자로 언제나 ‘실제’를 추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상아탑의 이상과 개념을 얘기하면 그 친구는 한가한 소리 한다며 늘 면박을 줬다. 간혹 나이트클럽이라도 가게 되면 친구는 여지없이 즉석에서 파트너를 구할 정도로 수완이 좋았고 당연히 사회생활을 하며 돈도 많이 벌어 씀씀이가 컸다.

하지만 해외 진출 등 막 사업을 넓혀가던 지난해, 연이어 급성 심근경색과 암치료를 겪은 이후로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가장 큰 고통은 음주, 운동 등 하고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 그리하여 삶에 있어서도 자꾸 자신감과 힘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종종 전화를 걸어와 예전처럼 큰 소리를 치다가도 돌연 사는 것의 어려움을 호소해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또, 한 친구는 시골 중학교 동기로 친구중에서도 가장 승승장구한 케이스다. 4년 전액 장학금 혜택을 받고 대학 고시반에 들어가 사시 합격 후 한 때 잘 나가는 검사를 거쳐 현재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 친구는 워낙 성품이 올곧은지라 평생 교류를 하면서도 단 한번 욕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술을 못하는 체질이어서 학생 때 친구들이 억지로 권하기라도 하면 슬그머니 화장실로 가 토한 후 다시 자리에 앉을 정도로 순수했다. 법없이도 살 놈이 법으로 먹고 사느냐는 핀잔을 수도없이 들었다.

부인 역시 당 대의 최고 수재로 가는 곳마다 수석합격과 수석졸업을 달고 다녔고 지금도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자식이 없다는 것, 30대 중반쯤 집에 쳐들어가 작심하고 입양을 권고한 것이 친구의 가정사에 개입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 입양했는지 아니면 지금도 무자식 상팔자로 사는지는 알 수가 없다. 쉽게 물어볼 사안이 못되기 때문이다. 평소 애들 얘기가 없으니 안 했을 것이라고 그저 추측만 할 뿐이다.

그런 친구가 요즘엔 치매를 앓는 부친 간병으로 고생이 이만저만아니다. 형제 둘이 끝까지 집에서 보살피겠다고 교대로 밤을 새우며 악전고투하는 중이란다. “사는 게 왜 이리 힘드냐”며 그로부터 평생 듣지 못하던 푸념을 전해들은 것도 최근 일이다. 날 잡아서 운동 한번 하자는 약속을 1년째 못 지키고 있다. 어느 땐 낮에 전화를 걸어도 안 된다. 전날 밤 부친 수발로 진을 다 뺐다가 낮 시간에 깜빡 졸거나 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활의 주기가 깨졌으니 당연히 변호사 일이 요즘처럼 힘든 때가 없다고 한다. 간혹 통화라도 하게 되면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답이냐”며 서로 묻곤한다.

사람들은 후반기 인생을 잘 준비하라고 하지만 남자 50대만 되면 누릴 권리보다 의무감이 한없이 늘어난다. 부모와 자식부양에서부터 부부관계까지 모든 것들이 어느날 돌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부담으로 다가온다. 해가 바뀌는 지금, 이같은 감상(感傷)은 더 치열해진다.
이럴 때, 먼저 살다 간 사람들이 남긴 말은 언제 들어도 울림이 크다. 이런 것들이다.

- 당신이 죽을 거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당신이 잃을게 있다는 생각의 함정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내가 아는 최선의 방법이다. 당신은 이미 헐벗었다. 당신의 마음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

(스티브 잡스)
- 산다는 것은 서서히 태어나는 것이다 -
(생떽쥐베리)

- 말(馬)로 갈 수도 차(車)로 갈 수도, 둘이서 갈 수도 셋이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맨 마지막 한 걸음은 자기 혼자서 걷지 않으면 안 된다 - (헤세)

- 강물의 흐름에 따라 부드럽게 즐겁게 배를 저어라. 이 것이 곧 삶이다 - (공자)

-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으로 가서/ 농담 한 송이 따서 가져오고 싶다/ 그 아린 한 송이처럼 비리다가/ 끝끝내 서럽고 싶다/ 나비처럼 날아가다가 사라져도 좋을 만큼/ 살고 싶다 - (허수경, 농담 한 송이)

그렇다면 답은 무엇인가? 내가 친구에게 묻는다. 2018년을 보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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