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연극은 끝났다…그리고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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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연극은 끝났다…그리고 진실은?
  • 충청리뷰
  • 승인 2018.12.2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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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

이 재 룡워라벨Agency 동그라미 대표

1987년 1월 15일 서울대생 박종철군이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숨진 사실이 알려지자, 같은해 1월 19일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특별기자회견을 열어 그의 죽음에 대해 “탁 하고 치니 갑자기 ‘억’하고 소리를 지르며 쓰러져 중앙대 부속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께 사망했다”며 쇼크사로 발표했다.

30여년전 우리는 그런 줄 알았다.
어린아이들은 숨바꼭질할 때 꿩 머리박기처럼 방 한가운데서 머리를 치켜든 채 바닥에 엎드리거나 수건으로 자기 눈을 가려서 숨는다. 내가 안 보이면 술래도 내가 안 보일거라고 생각해서다. 문제는 어린아이 같은 일차원적 인식과 ‘새대가리’같은 행동이 어른이 되어서도 혹은 공적 영역에서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는 데 있다. 관계의 본질은 나도 있지만 너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꿩 머리박기는 상대는 없고 나만 있는 소통 방식이다. 특정 상황이나 말을 나만 그렇다고 믿으면 다른 사람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버린다. 철저하게 일방형이다. 상대방의 의사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한겨레신문 2013. 3. 18.자 이명수의 사람그물)
1980년 11월 8일 제4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받은 곡이 있다. 이름하야 ‘연극이 끝난 후’. 그들은 연세대(양인호,임태환), 숙명여대(김영란,조선희), 건국대(노기영), 성균관대(최명섭), 경기대(최성진) 학생들이 연합한 7인조 혼성밴드 ‘샤프’이다.
38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노랫말이 새삼 가슴에 와닿는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적이 있나요
음악 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셋트도 이젠 다 멈춘 채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배우는 무대 옷을 입고 노래하며 춤추고
불빛은 배우를 따라서 바삐 돌아가지만
끝나면 모두들 떠나 버리고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고독만이 흐르고 있죠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무대에 남아
아무도 없는 객석을 본적이 있나요
힘찬 박수도 뜨겁던 관객의 찬사도 이젠 다 사라져
객석에는 정적만이 남아있죠 침묵만이 흐르고 있죠
관객은 열띤 연길 보고 때론 울고 웃으며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 착각도 하지만
끝나면 모두들 떠나 버리고 객석에는
정적만이 남아있죠 고독만이 흐르고 있죠
정적만이 남아있죠 고독만이 흐르고 있죠

이제 연극은 끝났다. 허나 똑같은 연극이지만 ‘탁’ 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연기한 그 사람은 죽었지만 꿩 머리박기로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고 자위하고 있을 그 배우는 여전히 무대 위에 남겨졌다는 사실이다.

노래방엘 곧잘 간다. 그런데 어김없이 부르는 노래가 있다. 십 수년 전 잘 알고 지냈던 후배들과 마이크를 거꾸로 세우고 핏줄세우며 걸쭉하게 불러대던 그 때가 생각난다.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가수 조하문의 데뷔곡 ‘해야’를 목청껏 부른다.

어둠 속에 묻혀있는 고운 해야
아침을 기다리는 애띤 얼굴
어둠이 걷히고 햇볕이 번지면 깃을 치리라
마알간 해야 네가 웃음지면
홀로라도 나는 좋아라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은 별반 다를게 없다. 정권의 눈에 들으려 특별기자회견을 하는 자,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자, 연극이 끝나고 난뒤 남겨진 자, 홀로라도 좋다는 자.
다만, ‘새대가리’같은 행동이 어른이 되어서도 고쳐지지 않는 꿩처럼은 살지 말아야겠다. 그 놈은 수꿩이다.

수꿩은 어느 한 산에 한 마리밖에 살지 않는다. 일부다처이긴 하지만 자신이 행세하는 영역 밖에 사는 남의 각시 꿩들을 넘보거나 추파를 던지는 법이 없다. 이렇게 남녀유별하다 하여 시어(詩語)에서는 꿩을 덕조(德鳥)라 곧잘 읊었던 것이다.

만약 바람기 있는 암컷이 옆 산의 남의 서방 꿩에 추파를 던지는 일이 있으면 수놈끼리 피투성이의 결투를 벌인다. 어느 한쪽이 죽거나 두 마리 다 죽는 사생결단이지, 약세라 하여 도중에 도망치는 법이 없다.

옛날 무신들이 머리에 꿩 깃을 꽂고 다닌 이유는 바로 사생 결단하는 수꿩의 용기를 숭상하고 본뜨기 위한 것이라 한다. 또한 자신이 활동하고 지배하는 영역을 보호 사수하는 영역 감각이 대단한 속성도 무신이 꿩 깃을 꽂고 다니게 한 요인이라고도 한다. 옛 병법에 보면 수꿩이 지배하는 영역 그대로를 요새화하면 난공불락이라 하여 치성(雉城)들을 많이 쌓고 있기도 하다.
(출처, 김필라 著 가두리 꿩 사냥)

그리도 올곧고, 그리도 용기있고, 그리도 영역을 보호 사수하는 감각이 뛰어난 수꿩도 위기가 닥쳐 숨을라치면 어린아이들 숨바꼭질할 때처럼 숲 한가운데서 머리를 치켜든 채 바닥에 엎드리거나 나뭇잎으로 자기 눈을 가려서 숨는다. 내가 안 보이면 사냥꾼도 내가 안 보일거라고 생각해서다.

그깟 수꿩을 잡는 것은 식은죽 먹기나 다름없다. 2018년은 어리석은 수꿩들이 득세하며 나라와 지역사회를 혼돈스럽게 했다면 2019년은 그 수꿩들을 사냥하는 새해가 될 것이다. 조영래가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둘 수 없었던 것처럼 수꿩 또한 풀숲에 머리를 박는다고 해서 상대가 다 알고 있는 진실을 감추지는 못한다.

참으로 괴이하다. 받은 사람은 있는데 준 사람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진실은 조만간 드러난다. 바로 이 것이 2018년 묵은 해를 보내는 마지막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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