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18년 최고의 책 『김종삼 정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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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18년 최고의 책 『김종삼 정집』
  • 충청리뷰
  • 승인 2019.01.03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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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사에서 가장 평가절하된 시인 김종삼을 생각하며
김 성 신 출판평론가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겸임교수

개인 서재 보관용으로 적절한 책의 권수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3000 권이 최대치라고 한다. 학술적인 이론은 아니지만, 장서가들이 대체로 인정하는 권수다. 물론 3000 권 이상도 보유할 수는 있고 그런 사람들이 꽤 많다. 하지만 개인 서재에 쌓이는 책이 그 이상이 되면, 필요할 때 즉각 그 책을 찾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즉 서재로서의 기능을 잃고 일종의 창고가 된다는 것인데, 양적 축적이 그것을 담는 공간의 본질까지 변화시키는 흥미로운 예다.

너무 많은 책을 보관한 서재처럼, 너무 많아지다가, 결국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지지만, 사람들이 필름카메라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당시 24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필름 한 통의 가격은 그 시절의 설렁탕 한 그릇과 비슷한 가격이었다. 여기에 현상료와 인화비까지 합하면 사진 24장을 얻는데 무려 1만 5000 원정도의 비용이 들어갔다. 당시로선 적은 비용이 아니었다. 대신 그만큼의 귀중함이 있었다.

인화된 사진은 선별되어 앨범 속에 고이 모셔졌다. 그 사진들은 사진 속에 기록된 사람들보다도 훨씬 오래 살아남았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사진은 어떤가? 대부분은 스마트폰 교체와 함께 수명을 다한다. 사진 파일이 PC나 외장 하드로 옮겨진다 해도 인화가 되고 보존까지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너무 쉽고, 싸고, 많아지다 보니 오히려 가치가 사라졌다.

인터넷 서점도 비슷하다. 책에 대한 정보가 엄청나게 축적되면서 오히려 책의 발견성은 떨어졌다. 쉽게 말해서 책을 선택한 이후에 인터넷 서점을 이용한다면 그 책을 찾아 구입하는 것은 쉽다. 책의 제목을 검색만 하면 된다. 하지만 ‘책 좀 읽어볼까’하고 인터넷 서점에 들어서면 곧장 길을 잃는다. 우여곡절 끝에 어떤 책을 선택해 구매한다고 해도 그 책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진다. 거의 무한대처럼 느껴질 만한 책 정보들 속에서 자신의 선택이 최선이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구매를 통한 만족도가 높으려면 선택에 확신이 있어야만 한다. 최근 들어 이른바 미디어셀러, 북 큐레이션 등의 용어가 등장한 배경이다. 이것은 모두 나 대신 

김종삼 정집홍 승진, 김재현, 홍승희, 이민호 엮음. 북치는소년 펴냄

선택을 해주는 장치인 것이다.

현대의 독자들은 ‘사고 싶은 책’이라기 보다는 ‘사야지만 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책’을 구매하고 있다. 사실 독서는 책장을 펼쳐 읽는 것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책을 읽을지를 고민하며 고르는 행위부터가 독서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옳다. 그리고 이 과정은 실제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소비행위가 아니다. 진정한 독서란 생각을 정리하거나 새로 바꾸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읽을 책을 선택하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은 마음을 열고 생각을 정렬해 놓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 과정이 생략되면 독서는 정보의 단순 소비행위가 되고 만다. 독서가 생산성 없는 킬링타임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살아생전 최고의 성과 남긴 시인
책 선택은 쉬운 일 같지만, 이처럼 의외로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어려운 것이 곧 나쁜 것은 아니다. 때론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라서 가치가 있는 일들이 있다. 퍼즐처럼 말이다. 복잡하고 어려울수록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과 결과에서 만족이 커진다. 책을 고르는 일이나 독서도 이와 비슷하다. 복잡한 사유의 과정을 거쳐서 발견해낸 한 권의 양서! 바로 그런 책이 우리의 삶을 바꾸고 개선한다.

한 해가 저물고 2019년 새해가 왔다. 책의 세상에서는 이 시점에서 뒤를 돌아보는 것도 좋다. 지난 일 년 동안 쏟아져 나온 수많은 책 중에 단연 ‘최고의 책’이라고 할만한 것이 있었는지 찾아보는 것이다. 언론이나 서점이 대신 골라놓은 리스트는 일단 덮어두고, 오로지 나만의 관점으로 고른 최고의 책 리스트를 한번 작성해 보자.

나의 2018년 최고의 책은 『김종삼 정집』이다. 살아생전 최고의 문학적 성과를 남겼지만, 김수영의 명성에 가려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평가절하되었던 시인이 바로 김종삼이다. 『김종삼 정집』은 그의 아름다운 부활을 보여주는 책이다. 후배 시인이자 국문학자인 이민호교수는 이 책을 위해 사재를 털어 출판사까지 설립했다.

한 시인이 세상에 뿌린 모든 것과 평생을 바쳐 그것을 모두 거둬들이고 있는 또 한 사람의 시인. 『김종삼 정집』은 한 편의 시가 어떻게 위대한 정신으로서 영원성을 얻게 되는지, 그 과정을 벅찬 감동으로 지켜보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나는 이렇게 『김종삼 정집』 에 대한 짧은 독서록을 적으며 새로운 한 해를 시작했다. 이 책을 찾아서 기분이 좋다. 나의 새해에는 바로 이런 즐거움이 가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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