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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 대한민국
한덕현 발행인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정부 여당의 힘만으로는 검찰개혁이 힘들다면서 국민들에게 도움을 호소했다. 정권의 실세라는 인물이 이런 화법을 쓴 것이 참 이채롭다. 당연히 국민들로선 지난 번 윤창호 법과 김용균 법이 국민청원과 국민행동으로 비로소 입법화된 것을 의식한 처신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정권 핵심인사의 이런 발언은 당연히 문제의 소지가 크다. 가뜩이나 국민여론이나 정서가 양분되는 상황에서 조 수석의 대국민 읍소(?)는 네편 내편을 가르는 또 다른 대립구도를 부추기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럴 때일수록 더욱 소중하게 집착해야할 국가운영의 공적개념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앞으로는 국회도 필요없고 검찰도 필요없고 법원도 필요없는, 좋게 표현하면 집단지성의 국가경영, 나쁘게 말하면 집단이해관계의 국가운영이 판을 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차제에 다시 한번 말하고 싶은 것은 청와대 참모로서 조국 수석의 역할론적 한계다. 그는 정책을 기획하고 입안하는 데는 출중할지 몰라도 이를 실제로 결행하고 성과를 내는 당사자로선 부적격하다는 것이다. 야당의 거센 퇴진 압력에도 대통령이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의 적임자로 재신임 했으면 SNS로 국민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나약한 모습이 아니라 적진으로 뛰어들어가 그들과 맞짱이라도 뜨며 설득하려는 용기와 신념을 보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일련의 청와대 구설과 관련해서도 현 정권에 대한 우군세력조차 조국의 용퇴를 요구한 것은 그의 뛰어난 머리를 탓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 머리를 뒷받침할만한 조직관리 능력과 통찰력의 부족함을 질타한 것이다.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고 계속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자유한국당의 저주처럼 ‘무능하다’는 딱지를 달고 무대에서 내려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조국 수석이 국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국회통과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는 공수처법(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은 이미 23년 째 정쟁만을 양산하는, 말 그대로 국회의 해묵은 숙제이다. 1996년, 당시 참여연대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를 골간으로 하는 부패방지법 입법청원을 한 게 논란의 시작이다. 이 법이 아직까지 성사되지 못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지금의 자유한국당 계보를 잇는 정치세력들이 결정적일 때마다 입장을 번복해서다. 선거에서는 표를 의식해 여당 야당 모두가 이 법의 제정을 공약으로 제시했다가도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 식으로 백지화 한 것도 여러 차례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와 여당이 어쨌든 한 목소리로 공수처법 제정을 합창한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분명 다르다. 그러기에 문재인 정권에서조차 실패한다면 이 법은 지나간 23년이 아니라 앞으로 230년을 공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냉정하게 바라보면 공수처가 신설된다고 해서 고위공직자들의 부정부패가 사라지고 우리나라가 당장 정의롭게 재편되는 것도 아니다. 이 법이 옥상옥일 뿐더러 정권의 충견도 모자라 맹견을 만드는, 마치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보가 될 것이라고 거품을 무는 홍준표와 김진태의 주장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제 아무리 좋은 제도나 법률도 이것을 운용하는 측이 궤도를 이탈해 악용하면 되레 패악이 된다. 우리나라 부정부패의 근본 원인이 법과 제도의 부재보다는 국가적 문화, 국민적 정서에 더 근거하는 이치와 똑같다.


간혹 외국의 언론이나 석학들은 우리나라를 ‘이상한 나라’로 표현해 국민들을 상심케 한다. 이들이 가장 의식하는 것은 정의를 외치면서 정의를 왜곡하고 정상(正常)을 외치면서도 막상 가진자들은 편법과 특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나라의 차별적 가식(假飾)문화이다. 이런 상황에서 빚어지는 극도의 집단적 갈등을 그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지금 자유한국당이 양심적 병역기피자에 대한 무죄를 놓고 남북간 적대관계에서는 나라의 망조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작 군대를 기피하거나 면제받은 국회의원들은 자한당에 가장 많다. 각 각이 면제받은 사유는 거론하기조차 추잡하고 역겨울 정도다. 얼마전에는 바로 전날까지 행정부에 대해 “똑바로 하세요!”를 외치던 국회의원들이 슬그머니 외유성 해외연수를 떠났다가 국민여론으로부터 개망신을 당하고 조기 귀국했다.


정부 요인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보면 그들이 왜 한국에 대해 머리를 갸우뚱하는 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종종 외신을 통해 중계되는 미국 등 선진국의 인사청문회와 우리의 청문회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저들은 당사자의 정책능력과 비전, 안목에 중점을 두고 꼬치꼬치 물으며 검증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간혹 불거지는 사적, 도덕적 문제에 대해선 깨끗하게 사과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한데 우리는 인사 청문회가 아니라 인격 살인의 장으로 변질되기 일쑤다. 옛날 고리짝 시절의 약점 들추기, 말꼬리 잡기, 아주 사적인 가족사 헤집기 등 하나같이 몰가치한 것들에 대한 감정적인 어깃장과 화풀이만 넘쳐난다. 위장전입이니 부동산 투기니 하는 것들은 그래도 들어줄만 하지만 과거 사석의 발언까지 들춰내 한 개인을 매질하고 진단하는 관행은 이젠 없어졌으면 한다. 우리나라의 인사청문회를 따른다면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바람없는 온실속에서 자라며 그저 시키는 일만 하는 꽁생원들만 후한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이 과연 각료로서, 특정 조직의 책임자로서 국가발전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믿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얼마전 한 국가기관에 종사하는 후배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지난 정권보다도 오히려 구성원들이 더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정무직 성격인 조직의 책임자급은 그렇다 하더라도 실무자급인 사무관 자리까지 정치적 성향을 가려 눈치를 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며 우려를 표하는 부분에선 나로서도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사람 두 명만 모여도 거기엔 반드시 갈등이 생기고 이해충돌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하물며 나라를 운용하는 과정에선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것을 조율하고 다스리며 화합을 유도해 내는 게 정치이고 통치일텐데 작금의 분위기는 ‘나’ 아니면 ‘너’라는 오로지 흑백논리의 정서가 나라 전체에 판을 치는 것같아 걱정스럽다.


청와대 참모진도 바뀌고 일부 장관자리도 교체된다고 하니 앞으로는 이런 데서부터 많은 변화가 따랐으면 한다.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자기표현에 정직하며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들과도 잘 어울릴 줄 아는 통합과 소통의 상생, 이런 것들이 그리워지는 시기다. 촛불혁명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력 때문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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