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전사에 도전하는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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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전사에 도전하는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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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1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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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
염 정 애 문광초등학교 교사

교사들과 함께하는 독서모임에서 정혜신 박사가 쓴 『당신이 옳다』라는 책을 읽어보았냐고 묻는다. 정혜신 박사는 세월호 사건의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해 주시는 따뜻한 분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 분이 쓰신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다. 우리가 지금까지 막연하게 알고 있던 공감에 대해 새롭게 공부할 기회가 될 수 있는 책이라고 하며 자녀, 친구, 학생, 학부모와의 상담 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남편에게 사람들에게 책을 소개해주는 쪽을 맡게 되었다고 말하고 물었다. 유현준의 『어디서 살 것인가』와 『당신이 옳다』 중 어느 책이 좋을지 말이다. 남편이 말한다. “사람들은 의외로 심리, 감정, 정신 이야기에 불편해 해. 첫 책으로 유현준 책이 더 낫지 않을까?”

남편의 말이 적중했다. 책은 어려운 말이 하나도 없으니 술술 읽혔다. 그러나 불편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가 평소 상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도 않았을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같은 말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상상이 가니 부끄러워 읽다가 책을 몇 번을 내려놓고 자기반성 모드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 첫 책으로 선정한 이유는 이 책을 읽고 공감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가지면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당신이 옳다』라는 책 제목도 그렇고 책 표지에 쓰인 적정심리학이라는 말이 생소하게 다가온다. 적정심리학이라는 말이 원래부터 있었는데 나만 몰랐나 싶었다. 이 책은 프로이드, 아들러, 융같은 정신분석학 세계에서 유명한 학자들의 지식과 이론을 나열하지 않는다. 유명 요리사가 만든 음식보다는 우리에겐 삼시세끼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집밥이 필요하듯 적정심리학도 그러하다.

적정심리학은 지금 여기에 사는 우리들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심리학으로 나와 내 옆 사람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소박한 심리학을 뜻하는, 저자 스스로가 붙인 이름이다.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상담을 전공하면서 ‘사람’과 ‘마음’이라는 단어에 관심이 많이 가던 시절이 있었다. 졸업한지도 10여년이 넘었지만 그때 배운 내용 중 기억에 남는 두 가지가 있다.

‘사람은 이 세상에 내 편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과 ‘상담이 이루어지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상담자와 내담자간의 래포 형성이라는 것’이다. 래포(rapport)란 두 사람 사이의 공감적인 인간관계 즉 친밀도를 뜻하는 심리학적 용어다. 정서적인 내편이 되어줄 한 사람과의 공감만 있다면 우리나라는 금방이라도 행복한 나라로 등극할 수 있다.

당신이 옳다 정혜신 지음 해냄 펴냄

공감은 배워야 하는 것
이 책의 핵심단어는 공감이다. 정신분석학의 중요개념과 이론이 나열되지 않는다고 절대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다. 책상머리나 병원 진료에서 도출된 이론이 아닌 우리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상처들을 이야기하다보니 결국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지 성찰하게 된다.

‘전문가는 그래도 뭐가 달라도 다르지 않아?’ 라고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심리적 참전상태인 사회적 재난 현장에서 무수히 많은 사례를 보았다고 한다. 치유관련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들이 초기에는 현장에 몰려오지만 몇 달이 지나면 결국 전문가들은 거의 사라지고, 아무 자격증 없는 자원 활동가들의 ‘슬픔과 무기력의 거대한 연대’가 치유적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공감은 특별한 자격증이 필요 없다.

그렇다고 공감의 자세가 쉽고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저자도 공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기에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 직업이 교사인지라 학교현장에서 학생들, 학부모들과 상담을 자주하게 된다. 잘 들어주고 끄덕거리다 보면 어느새 탈진되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오는 나를 발견한다.

상담이라는 영역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고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이것을 공감 강박증이라고 한다. 이 책의 또 다른 핵심단어가 바로 ‘경계’이다. 내가 힘들 때는 내가 우선이다. 누군가의 고통에 함께하려면 동시에 자신에게도 무한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자만이 타인의 고통도 함께할 수 있다. 타인을 공감하는 일보다 어려운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공감하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는 이기적인 인간이 될 필요가 있다.

공감과 경계라는 말을 접목시키니 ‘다정한 전사’라는 은유적 표현이 생성된다. 온 체중을 다하여 다정하게 공감하면서도 공감을 방해하는 사람이나 상황을 마주했을 때는 전사처럼 싸워야 한단다. 우리 모두는 다정한 전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올해 자신이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요즘 마음은 어떠세요?’라는 질문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자기 자신을 훈련해보는 것도 즐거운 도전이 될 듯싶다. 온 체중을 실어 상대를 공감하는 단 한사람인 다정한 전사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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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릉 2019-01-17 20:57:17
리뷰 쓴 분의 팬이 될 것 같아요 책도 꼭 읽어볼게요!

2019-01-17 20:43:01
글이 마음에 와 닿아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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