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정체불명’ 지정폐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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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정체불명’ 지정폐기물
  • 김천수 기자
  • 승인 2019.02.01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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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가 불명확한 1100여 톤의 불법 지정폐기물이 25톤 화물트럭 수십 대에 실려 음성으로 옮겨지다 발각돼 길거리에 발이 묶이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환경폐기물은 지난 21일 음성군 금왕읍 소재 오선산업단지 내 창고 부지에서 하역을 하던 중 냄새가 난다는 주민 등의 신고로 제지당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 19일 화물주 S씨의 주문에 따라 화물차 기사들이 인천 남동공단 등에서 해당 화물을 싣고 내려와 이날 음성 오선산단 내의 한 창고에 하역을 하면서 발단이 됐다. 하역 작업으로 악취가 번지자 지역 주민과 해당 토지주는 물론 폐기물을 싣고 온 화물차 기사들도 전혀 몰랐다는 반응과 함께 신고에 동참했다.

기사 A씨는 “폐기물이면 누가 이렇게 싣고 왔겠냐”고 반문하고 “공장 이삿짐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다른 기사들도 역시 “운행품목에 파렛트로 돼 있어서 공장이 이사하는 것으로 알았다”며 “화주에게 속았다”고 하소연했다.

이후 지정폐기물이란 사실이 즉각 알려지면서 원주환경청의 이동중단 조치가 내려졌다. 이후 운송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화물차 기사들의 불안감과 불만이 고조됐다. 화물차 기사들의 이같은 하소연은 운반업 특성상 시간이 돈이기 때문이다.

이날 신고로 하역 작업은 중단됐고, 이에 화물주는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둔둔리 소재 모처로 옮겨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일부 차량이 그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폐기물이라는 점 등을 들어 민주노총 화물연대 충북지부와 원주시지부가 합동으로 하역을 제지했다.

원주환경청 중재로 협상
이틀만인 24일 오전 30여 대의 화물차가 음성군 감곡면 소재 모 업체에서 반출됐다는 근거가 부족한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중부고속도로 감곡IC 인근 국도변에 모여들었다. 이곳에 급파된 화물연대 임종운 충북지부장과 이 단체에 속하지 않은 기사들도 금왕에 대기 중인 쪽과 감곡에 있는 쪽의 대표자를 각각 선임해 협상 대표를 꾸렸다. 현장에 달려온 박연재 원주환경청장과 대화에 나서기 위해서였다.

환경청장까지 나선 것은 만약의 사태로 차량에 실린 지정폐기물이 유출될 경우 주로 액상인 상태에서 환경에 급속히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긴급히 안전지대로의 이동 하역이 요구됐기 때문이다.

반면 기사들은 S씨라고만 알려진 화물주와 연락이 제대로 닿지 않는데다 원주환경청이 속히 전북 군산시 소재 처리시설로의 이동을 거듭 요구하자 운송비 지급보증을 서라는 등 목청을 높였다. 조속한 운반을 주장하는 환경청과 운송비 선지불 및 지급보증을 요구하는 화물차 기사들의 주장이 맞서면서 난항을 겪은 것이다.

현장 도로변에서의 대화 진행이 어려워지자 감곡면사무소로 자리를 옮겨 해결점을 모색했다. 이 자리에는 당국의 설득으로 화물주 S씨도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환경청 등의 중재에 의한 협상은 우선 운송료 일부 지급과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오는 3월말까지 지급을 완료하는 내용으로 2억원의 보증보험증권을 발급하면서 마무리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오후 감곡에서 군산까지 운송한 차량에 대해서는 즉각 75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기사의 말에 따르면 인천에서 운송을 시작한 차량의 운송비는 대당 320만원으로 책정됐다. 이 기사는 하루 55만원 꼴이라고 설명했다.

28일 원주환경청에 따르면 해당 폐기물은 액상이거나 슬러지 상태이며 44대 분량이 전북 군산 소재 지정폐기물 처리시설로 옮겨졌다. 이동된 폐기물 중량은 약 753톤으로 알려지면서, 이를 토대로 오선산단 부지에 이미 야적된 20대 분량은 약 340톤 가량인 것으로 풀이된다.

군산지역 반입 소식에 반발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전북 군산의 시민단체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군산지역 언론에 따르면 해당 지정폐기물이 지난 24일 밤부터 25일 오전까지 군산 소룡동에 위치한 환경부 지정폐기물소각장으로 반입됐다. 그러자 25일 전북안전사회환경모임, 참여자치군산시민연대, 군산생태환경시민연대회의 등 6개 시민단체는 공동논평을 내고 지정폐기물을 군산에서 신속히 반출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시민단체는 환경부에 대해 이들 불법폐기물이 군산 처리장에 임시 야적된 이유, 폐기물 종류, 관리계획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공개와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아울러 폐기물 업자에 대한 신속한 수사도 촉구했다. 환경부 산하 지정폐기물 처리시설은 군산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화물 운송을 연결(중계)해주는 스마트폰 어플 관리 등의 시스템에 대한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기사들이 공개한 화물맨이라는 어플 화면을 확인한 결과 운행품목에 ‘빠렛트’라고 기재돼 있을 뿐 실제 내용물에 대한 것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와 관련해 환경청 관계자는 “국토부가 관리하는 것”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책이 마련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위험물 운송을 맡길 경우 내용물을 적시하는 의무 법조항 마련이 가능할 전망이다.

한편, 원주환경청은 해당 지정폐기물에 대한 시료를 채취해 분석에 들어간 상태이며 그 결과는 다음주 초에 나올 것임을 밝혔다. 아울러 화물이 발주된 인천광역시 관할인 한강유역환경청과 하역지 소속 음성경찰서 등은 화물주 등을 상대로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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