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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마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헌책방마을 처음 만든 리처드 부스의 자서전 『헌책방마을 헤이온와이』
정재홍 수필가

‘헌책’과 ‘오래된 책’은 서로 뜻이 다릅니다. ‘낡은 책’과 ‘깊이 있는 책’이라고 구별하면 느낌이 와 닿을까요? 오래된 책 안에는 잘 익은 언어들이 들어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써오던 말 ‘헌책방’에도 정감은 가지만‘오래된 책’을 담고 있는 장소로서의 책방에 더 마음을 주게 됩니다. 그래도 지금껏 입에 붙은 말이라서 『헌책방마을 헤이온와이』라고 이름붙인 책 제목은 제가 달리 어찌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저는 2003년도 2월에 출판사를 시작했었습니다. 훨씬 오래전인 1990년부터 출판 편집 일을 시작해서 다섯 해를 지내고 영업부서로 이직해서 서점 현장을 읽고 유통의 흐름을 체험한 14년쯤 뒤의 일이었습니다.


2012년은 그 출판사의 폐업신고를 마친 해입니다. 그리고 몇 해 뒤에는 서점에 취직해서 책방 일을 시작했습니다.‘책 만드는 일’을 마치고‘책을 파는 일’을 하게 된 겁니다. 그렇게 또 다섯 해를 지나오면서 저는 제 집안에 쌓고 살던 5,000여 권의 책들을 손길 닿는 대로 조심스럽게 집어 들고 새로 보고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SNS 그룹계정을 새로 만들어서 제가 가진 책들을 내어놓고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오래된 책들이라서 출판사에서도 더 이상 쇄를 거듭하지 않고 판을 바꾸지 않는‘절판본’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그런 책들은 필경 눈 밝은 이들에게 낙점을 받아서 금세 우편으로 보내지곤 했습니다.


SNS 그룹계정에 올려놓은 상호는 [당신들의천국in책방]입니다. 소설가 이청준 전작주의자라고 자칭하며 지내온 제가 지어낼 수 있는 가장 합당한 이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청주의 옆 도시에서 지내던 시절에는 목계나루가 가까이 있어서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리버마켓에 셀러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곳에 펼쳐놓은 좌판의 책방 이름은 [책방 남편취미]였습니다. 이는 아내의 작명 솜씨입니다. 입간판 부제로는 ‘새책 사서 헌책 만들어 팔기’라고 설명글을 달아 두었습니다. 느낌이 확 와 닿지요?

헌책방마을 헤이온 와이리처드 부스 지음 이은선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들 펴냄


저는 그 오래된 책들 중 한 권에 반가운 손길을 내어주었습니다. 영국 웨일스의 시골마을 헤이온와이에 세상 최초의 헌책방을 설립하면서‘정신 나간 놈’이란 욕을 듣던 이를 알게 되었습니다. 작가 리처드 부스가 지은 책 『헌책방마을 헤이온와이』를 운명처럼 만나게 된 겁니다. 이 책은 그의 자서전입니다.


영국 시골에서 시작한 헌책방마을
자유주의자이고 뿌리 깊은 반골 기질을 갖고 있었던 리처드 부스는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웨일스의 시골마을 헤이온와이에 최초의 헌책방을 세우게 됩니다. 시골마을에 책을 읽을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을 것 같은 곳에 말이지요. 영국은 물론 미국, 아일랜드 영어권 나라에서 수많은 옛날 고서와 헌책들을 모았으며, 가장 큰 규모의 헌책방인 영화관 서점을 만들면서 큰 성공을 하게 됩니다. 1970년대 말에 헤이온와이는 수백만 권의 책과 수십 개의 책방을 보유한 세계 최초의 책 마을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장난삼아 시작한 일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면서, 리처드 부스는 영국의 지방 행정과 관료주의의 잘못을 비판하는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는 경영 악화로 파산을 하면서 세간의 비웃음을 사게 됩니다. 1990년대에는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에서 헤이온와이를 표본으로 하는 책마을이 조성되면서 리처드 부스는 또다시 관심의 중심에 서고 명실공히 튼실한 자리매김을 하게 됩니다. 1998년에는 헤이온와이 독립 선포 21주년 기념일에 전 세계의‘책 마을’을 총괄하는‘헌책방 제국의 황제’로 추대되기도 합니다.


처음 이 책을 읽었던 꽤 오래전에는 ‘괴짜가 하나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었지만, 어쩌면 제가 할 수만 있다면 꼭 해내고 싶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다시 읽게 되면서 어느 순간 ‘내가 그렇게 우리나라의 리처드 부스가 되고 싶다’는 속다짐을 하게 됩니다.‘책방골목’‘리버마켓’ 이런 곳 말고, 헌책방마을 하나 우리나라 어느 마을에 아름답게 버젓이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런 책마을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헌책방마을 헤이온와이』를 보면서 익혀둘 것들에는 밑줄을 긋고, 따로 떼어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한번 더 읽습니다.‘정신 나간 놈’이 쓴 글을 읽으면서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저는 또한 이 얼마나 맹랑한 위인이랍니까.


헌책방마을을 하나 만들면 좋겠는데 그럴만한 곳은 어디쯤이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 남도땅에 ‘순천’마을이 있습니다. 다음엔 곽재구 시인의 시집 『와온 바다』를 만나볼까 싶습니다. 헌책방마을이 들어선 노을빛 물든 해변으로 ‘오래된 책’들이 제법 잘 어울리기로는 더없이 멋진 마을이겠다 싶은 상상을 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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