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온도를 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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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온도를 재는 시간
  • 충청리뷰
  • 승인 2019.03.06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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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김 은 숙 시인

마음을 울리는 좋은 책을 만나면 그 감동을 나누고 싶어서 다른 사람에게 책 선물을 잘 하는 편이다. 시를 쓰는 내가 가장 많이 선물한 건 물론 내 시집이지만, 마음에 남은 여운이 물결쳐서 여러 사람에게 권하고 선물한 책 중 하나가 포리스트 카터의『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다.

아름다운 보호자들
다섯 살에 부모를 잃은 인디언 소년‘작은 나무’는 체로키족인 할아버지, 할머니와 산속 오두막집에서 살게 된다. 표현을 절제하는 과묵한 할아버지는 ‘작은 나무’가 경험을 통해 스스로 깨닫고 실행하는 기회를 주어 지혜를 키워주고, 다정다감하고 현명한 할머니는 따뜻한 사랑으로 작은 나무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어 자연 속에서 영혼을 풍요롭게 성장시킨다.

매에게 잡혀 먹는 메추라기를 보고 슬퍼하는 작은 나무에게 할아버지는“작고 느린 놈으로만, 그리고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는 자연의 이치”를 일깨워준다.“쓸 것보다 더 많이 저장해둘수록 남의 것을 빼앗고 싶게 되고, 자기 몫을 늘리려고 전쟁을 일으키기까지 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방울뱀에게 물려서 위독한 할아버지를 보고 자신의 잘못이라고 힘들어하는 작은 나무에게 할머니는“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며 심지어 방울뱀의 탓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은 서늘하고 선명하게 내 안에 들어선 부분이다. 타고난 본성대로 사는 것이 자연의 순리라는 가르침이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거나 좋은 것을 손에 놓으면 무엇보다 먼저 이웃과 함께 나누도록 해야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말로는 갈 수 없는 곳까지도 그 좋은 것이 퍼지게 된다.”“사람들은 누구나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다. 하나는 몸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꾸려가는 마음, 또 하나는 영혼의 마음이다.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꿀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한 가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 더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영혼의 마음도 더 커진다.”마음에 특별히 새기고 싶은 할머니의 말이다.

할머니는 작은 나무에게‘사랑과 이해는 같은 것’이라고 한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랑할 수 없고, 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더더욱 없으며, 이해와 사랑은 당연히 같은 것”이라며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았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사랑한다고 해온 것은 아닌가? 깊이 이해해야 아름답고 평화롭게 오래 사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존감 키워주는 할아버지의 방식
“네 덕분에 이렇게 멋지게 해결했다, 너는 내가 보아온 아이 중 가장 뛰어나다. 앞으로 네가 가장 잘할 거야.”할아버지는 이렇게 작은 나무가 최고라는 칭찬을 자주 한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배려와 듬뿍 뿌려주는 칭찬의 손길 속에 작은 나무의 자존감은 커지고 스스로 자랑스러운 나무로 성장하게 된다. 심지어 작은 나무가 잘못된 상황이 전개될 게 뻔한 결정을 할 때에도 할아버지는 그 결정에 개입하지 않고, 직접 경험한 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나라면 어땠을까?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터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펴냄

부모로서의 나를 돌아본다. 예견되는 상황을 먼저 말하며 얼마나 어리석은 결정인지 말로 다 풀어내고 결정의 과정에 쉽게 개입할 게 뻔하다. 아이를 존중하고 인정하며 나름대로 엄마로서 균형감을 갖고 아이를 키워왔다고 생각했건만, 그야말로 모든 것을 말로만 한 함량미달의 부끄러운 엄마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지식의 축적보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혜를 키워야함을, 배려와 동행의 아름다움을, 수직적 사고보다는 수평적 사고의 확장이 필요함을 수없이 말해왔지만, 정작 30년 넘게 교육현장에 있었던 내 사고의 저변에 뿌리 깊게 자리한 인식은 무엇인가 자문하게 된다.

“이미 일어난 일을 놓고 잘잘못을 따져서는 안 된다”는 할머니의 말은 잘잘못을 따지는 습성이 배어있는 내게 하는 말 같아서 얼마나 얼굴 화끈거리게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그 인식과 실천 사이에서 내 걸음은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여러 차례 눈시울 붉어지게 하는 삶의 철학이 담긴 책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의 자전적소설로 평가되는 이 소설은 저자가 백인우월주의단체의 리더로 활동한‘아서 카터’와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져서, 작품에 감동하고 찬사를 보냈던 독자들에게 그만큼 큰 혼란과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믿고 싶지 않은 씁쓸한 이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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