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몽톨리유 잇는 험난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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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몽톨리유 잇는 험난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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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3.0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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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공모 제안한 게 시작

지난해 6월 어느 날 처음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공모를 보았을 때가 생각난다. ‘문화공간 그루’는 이제 3년차 된 작은 단체지만, 신나는 공연을 한번 만들어보자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오가던 차였다. 공모를 보니 지자체의 해외 자매·우호도시 대상 사업, 혹은 수교계기 문화행사 개최국 대상 사업, 그리고 지역 문화콘텐츠 활성화 및 국제문화교류에 기여하는 사업 세 가지 중 하나.

괴산의 사람들과 괴산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우리는 괴산 지역 고유의 문화콘텐츠를 활용한 국제문화교류 사업에 대해 생각하다가 연풍 한지를 떠올렸다. 괴산의 이야기를 한지와 공연에 함께 담는다면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겠다 싶었다.

실은 8개 내외로 뽑아 항공료, 대관료, 현지체재비를 최대 1억원까지 지원한다는 사실에 가장 큰 흥미가 일었다. 첫 공모이고, 공모대상이 서울 및 광역시 산하를 제외한 기초지자체라고 하니 잘하면 승산이 있겠다 싶었다. 총 사업비 10% 이상의 지방비를 확보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있었는데, 그동안 군 지원금을 받아본 적이 없어 그것이 숙제처럼 느껴지긴 했다. 뭐 어쨌든 괴산군의 문화콘텐츠 개발이니 군청에서도 마다하지 않겠지, 한번 해볼만하다 생각했다.

프랑스 맑은 산골짜기  종이방앗간에서 찍은 단체사진.

한 달 넘게 준비한 끝에 선정
일을 도모하기 위해 우리는 공모신청서를 들고 김현숙 선생님께 찾아갔다. 스페인은 어떨까, 괴산의 매운맛 고추를 엮어볼까, 기타와 플라멩코는 어떨까. 화창한 햇살 아래 앉아 맛있는 음식과 와인 한 잔, 그리고 일어나 울창한 나무 아래를 거닐며 깔깔깔 이야기를 나누었다.

며칠 후 김현숙 선생님은 숲속작은책방 백창화 김병록 선생님의 책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에 소개된 책마을 몽톨리유를 대상지로 선정하셨다. (Montolieu. 책 표기에는 몽톨리외라고 되어 있으나, 실제 발음이 몽톨리유에 가까워 몽톨리유로 통일해서 표기한다) 한지박물관과 프랑스 종이방앗간, 그리고 책마을. 흥미로운 문화교류가 되겠다 싶었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국제문화교류로 가닥을 잡고 공연과 행사 진행, 정산 등 실무는 문화공간 그루가 맡기로 했다. 총괄 기획은 김현숙 선생님이 맡아 기획서를 쓰고 프리젠테이션 발표 자료를 만드셨다.

한지를 어떻게 엮을 것인지,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인지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한 달 넘게 준비하고 드디어 8월 3일 괴산군을 통해 기획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30개 지자체 중 15개 지자체를 뽑은 1차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2차를 위한 작업에 미리 들어갔다. 2차 발표 전날에는 모두 모여 연습 발표를 하고, 의견을 모아 동영상을 좀 더 역동적인 느낌으로 수정했다.

왼쪽부터 안치용 괴산한지체험박물관장, 시그리드

8월 16일, 발표는 내가 하고 질문에 대한 답은 김현숙 선생님이 하셨다. 그리고 최종 통과된 8개 지자체를 발표하던 8월 20일, 준비했던 사람들이 모두 모여 축하의 건배를 나누었다. 그저 재미나고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안산문화재단, 영월문화재단, 원주영상미디어센터, 이천시청(이천도자기협동조합), 전주문화재단, 청주공예비엔날레, 화순문화원, 그리고 괴산 문화공간 그루, 이렇게 8개 지자체였다.

이후 한 달 동안 예산 조정이 있었다. 항공권 가격은 점점 올라가는데, 예산 확정은 안 나고, 설상가상 수화물비를 지방비 혹은 자부담으로 돌리라는 통보를 받았다. 군청에서는 1000만원을 지원해주고, 그 이상은 힘들다고 했다. 최종 결정된 국비 예산은 7,900만원. 문체부 방침으로 최종 심사 성적에 따라 일괄적인 삭감이 있었고, 그루는 5% 삭감된 금액이었다. 8개 지자체 중 5위나 6위 정도 되었나보다.

그러나 예산 문제는 시작에 불과했다. 지자체, 문화원, 문화재단이 아닌 민간예술단체로 국비 지방비 자부담을 합쳐 1억원 정도 되는 사업을 진행하자니 어려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왼쪽부터 이장석 몽펠리에 한인회장, 버나드 몽톨리유 시장, 김현숙 씨

“우리는 재미난 일을 도모한다” 는 기쁨도 잠시, 이후에는 몽톨리유와 연락이 원활하지 않아 또 가슴 졸이는 나날이 이어졌다. 남프랑스에 기습적인 폭우가 쏟아졌고, 몽톨리유 시청 또한 수해 복구를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문광과 과장님 사인을 넣어 공식적으로 보낸 이메일에는 답이 없고, 2안으로 추진했던 다른 장소에서의 공연은 준비 기간이 너무 촉박해 극장 확보가 어려웠다.

연락이 안 돼 가슴 졸이던 시간
10월 27일 사전출장을 잡아 김현숙 선생님과 나는 남프랑스로 날아갔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우리를 도와줄 김민중씨와 손탁 신부님을 만났고, 몽펠리에에서 이장석 선생님과 남영호 선생님을 만났다. 그리고 드디어 10월 29일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고, 몽톨리유에 도착했다. 맑은 가을날이었다. 맑고 차가운 하늘, 산바람이 매서웠다.

시그리드(Sigrid Weinrich)를 만나는 순간, 모든 일은 거짓말같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메일을 받아놓고 긴 휴가를 다녀왔다며 미안하다고, 시그리드는 이후 공연과 전시, 체험에 관련된 모든 사항, 숙박과 식당 예약까지 일사천리로 도와주었다.

우리는 정식으로 몽톨리유 시장님을 만나고, 협업을 위해 현지 예술가와 인사하고 극장을 확인하고 종이박물관도 다녀왔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환영했고, 행사 날을 기대한다고 말해주었다. 고된 일정의 연속이었지만, 그렇게 행사의 가닥이 잡혀갔다. 12월 17일 괴산에서 공연을 먼저 선보인 후, 12월 27일 프랑스로 날아갔다.

모자라는 예산은 후원으로 충당했다. 인건비도 작품비도 예산에는 없었지만 열 여덟 명 우리 모두 열심히 했다. 총괄 기획을 맡아 처음부터 끝까지 고생하신 김현숙 선생님부터 마지막에 합류해 음향을 맡아준 김현호까지. 연풍 한지와 그루의 공연을 엮어 공연+전시로 이루어진 괴산의 문화콘텐츠를 선보인 것은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원 혜 진
‘문화공간 그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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