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지역 독립운동 연구에 몰두하는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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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지역 독립운동 연구에 몰두하는 학자
  • 김천수 기자
  • 승인 2019.03.07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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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우 진천향토사연구회 회장

충북 진천군 읍내리 진천교육지원청 옆에 위치한 오래된 건물은 진천문화의집이다.

이곳 1층은 사단법인 진천향토사연구회 사무실인데 책꽂이에 여러 연구서들이 즐비하다. 여기선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드나들며 진천지역 역사와 유적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누는 게 일상이다.

하지만 그런 대화가 다는 아니다. 요즘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알려지지 않은 진천지역 독립운동에 대한 얘기가 넘쳐난다.

대화의 중심에는 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정제우(81) 박사가 있다. 그는 “진천이 충북에서 가장 먼저 3.1만세운동을 벌였다”면서 “당시 이곳에 동학교도가 많아 의병 활동의 영향이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골의 학자적 풍모에 웃음을 짓는 그는 진천의 향토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최근 진천군 만승면(현재 광혜원면) 만세독립운동 때 총살을 당한 박도철 모자(母子)의 유족이 찾아와 함께 고증 및 조사를 통해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토록 도움을 준 것을 특히 기뻐하고 있다. 그는 또 진천 출신으로 러시아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중 ‘일본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총살 당한 ‘고려인 문학’의 태두 조명희 선생이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는 소식도 전했다.

이런 내용을 담아 다음 달 진천에서 개최되는 3.1운동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것에 마음이 들떠 있다.

그는 1992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진천군에 도산 안창호 선생이 주도해 미국에서 만든 ‘국민회’ 창립 이사회의 여러 사진을 기증했다. 비록 복제본이지만 도산 선생의 딸이 독립기념관에 원본을 기증하면서 얻게 됐다고 한다.

20년 전부터 진천에 거주하게 된 그는 이상설 선생의 생가가 있기에 사진을 진천군에 전달했다고 한다. 국민회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였던 이상설이 미국에 있는 여러 한인동포단체들의 통합을 요청해 1909년에 발족됐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이상설 생가에 전시돼 있다. 사진을 전달한 뒤부터 그는 진천지역 독립운동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1998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을 지낸 그는 현재도 연구소 운영위원이며 이상설선생 기념사업회 및 조명희선생 기념사업회 자문위원이기도 하다.

그는 독립기념관에서 퇴임하면서 많은 서적을 진천군립도서관에 기증하고 연구서적은 진천향토연구회 사무실에 넘겼다. 이후에도 진천의 근현대사를 연구해 <향토문화전자대전> 진천군 편에 싣기도 했다.

그는 지역민들의 독립운동역사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에 아쉬움을 나타내면서 “3.1만세운동은 모든 국민이 나서서 이념을 뛰어넘어 일으킨 국민운동이었다”면서 “진천에 사람, 유적이 많지만 기념물 하나 제대로 없다”고 토로했다.

정제우 회장의 이런 열정을 볼 때 진천향토사연구회와 그의 인연은 필연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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