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예술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해가 내려와 누운 바다를 아십니까해가 내려와 누운 바다를 아십니까
 
 
정재홍 수필가

해는 / 이곳에 와서 쉰다” 곽재구 시인은 그의 시 ‘와온 바다’에서 처음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해가 내려와서 누웠으니 그 바다는 얼마나 따뜻했겠는지요. 와온의 한자어는 누울 와臥, 따뜻할 온溫으로 씁니다. 와온 바다는 행정구역으로는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상내리 와온 마을에 속하지만 순천시와 여수시 경계쯤의 순천만에 있는 바다입니다.


시집 『와온 바다』 안에는 와온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와온 마을에 있는 바다입니다. 헌책방 여럿이 모여서 촌락을 이루면 좋겠다고 떠올렸던 곳, 거기가 여기 와온 마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더랬습니다.


1995년 11월18일의 일입니다. 서울의 어느 책방에서 곽재구 시인의 시집 사인회가 있었겠지요? 책꽂이에 가지런히 모셔두었던 시집을 추려 뽑아서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말씀들을 전해 받았던 적 있었습니다. 시집 『전장포 아리랑』에는 “늘 아름다운 詩, 아름다운 생각, 삶 속에서 함께 하시길 95.11.18” 이렇게 글을 남겨 주셨습니다. 세월이 조금 지나서 1999년 10월23일에는 “늘 깊은 지혜와 사랑의 시간들 속에 소요하시길 99.10.23 곽재구”라는 말씀으로 시집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에도 따뜻한 마음을 내어주셨습니다.


그 뒤로는 뵐 일이 없었습니다. 많이 아쉬운 일이었지요. 그러다가 강산도 바뀐다는 십년도 더 지난 아주 오랜 시간을 건너서 시집 『와온 바다』를 읽게 되었는데요, ‘아~ 바다 가고 싶다’ 하다가 ‘아~ 마을 살고 싶다’ 하면서 종국에는 헌책방 마을을 하나 짓기로 하면 여기가 좋겠다 하는 각오까지 해내게 된 사연은, 오롯이 시집 『와온 바다』를 읽으면서 가진 속다짐이었던겁니다. 그렇지만 마음만 굳게 다진다고 쉽게 이루어 낼 수는 없는 일일테지요.


시집 『와온 바다』의 뒤 표지인 표4면을 보면 민영 시인의 글이 담겨 있습니다. “지난 해 초가을 ‘사평역’의 시인으로부터 ‘와온으로 오세요. 달빛으로 시를 읽을 수 있습니다’란 매혹적인 초대를 받은 바 있지만 짬이 없어 가지 못했다. 와온은 어떤 곳인가, 또 어디에 있는가? ‘와온으로 가는 길’을 읽고 언덕에 한 뙈기의 홍화밭이 있는 바닷가 마을이란 사실을 알았지만, ‘등이 하얀 거북 두 마리가 불빛과 불빛 사이로 난 길을 / 리어카를 밀며 느릿느릿 올라간다’는 구절과 ‘새벽이면 / 아홉 마리의 순금빛 용이 / 인간의 마을과 바다를 껴안고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는(『와온바다』) 서사를 읽고는 그곳이 범상치 않은 신화적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와온은 어디 있는가, 지금 그곳에는 누가 살고 있는가?”하고 자꾸 묻고 계셨습니다.


혹여 저와도 더 깊은 연이 닿아서, “와온으로 오세요. 달빛으로 시를 읽을 수 있습니다”란 매혹적인 초대의 글을 받았었더면, 설레는 가슴을 안고 한달음에 맨발로 뛰어 내달렸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와온은 어디에 있는가
곽재구 시인을 처음 알게 된 건 물론 시집 『사평역에서』를 읽었을 적입니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지요,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 흰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기도 하고요, 그런데 ‘내면 깊숙이 할 말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더라구요.
‘자정 넘으면 /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고 할 적에는 저도 따라서 눈물 한줌 불빛 속에 던져주던, 시절 공감을 느끼던 오롯한 사연이 남아 있으니 제겐 더욱 애틋합니다.

와온 바다 곽재구 지음 창비 펴냄


어두웠던 시대는 이제 모두 지나간 일이 되었습니다. 다시 겪지 않아야 좋을 일입니다. 곽재구 시인의 시 안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저 ‘물, 꽃, 날개, 바람, 파랗고, 향기 속, 웃는 모습’의 시어가 있습니다. 아름답고 수줍고 순정한 참 맑은 언어들만을 만날 수 있어서 그의 시 읽는 일은 늘 즐겁습니다. 그 즐거움이란 곧, 곽재구 시인의 시편에는 사람을 보듬어 안고 사랑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와온으로 가는 836번 지방도로를 터벅터벅 걸어 내려가 마을의 풍광을 살펴보고 싶습니다. 해가 내려와 누운 바다, 달마저 내려와서 치마폭을 풀어 몸을 적시는 그 바다는 따뜻함을 얼마나 더 더했을까요. 와온 마을에 살게 되면서 바다의 그 따뜻한 온기를 받아내는 날을 만날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정재홍 수필가


충청리뷰   webmaster@ccreview.co.kr

<저작권자 © 충청리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충청리뷰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