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는다는 것
상태바
아이를 낳는다는 것
  • 충청리뷰
  • 승인 2019.03.21 09:33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리스 레싱의 장편소설 『다섯째 아이
김 미 향 출판평론가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편집장

블랙, 레드, 그린. 도리스 레싱의 장편소설 『다섯째 아이』, 린 램지 감독의 영화 <케빈에 대하여>,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로즈메리의 아기>를 컬러로 표현한다면 각각 이렇게 정의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흡사 고딕소설을 연상시키는 『다섯째 아이』의 초반부는 시종일관 어둡다.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정조는 영화 <케빈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다.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 색의 이미지를 토마토축제, 붉은 페인트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하여 놀랄 만큼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선사한다. 1968년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로즈메리의 아기>의 정조는 호러영화 같지 않게 밝다. 소름끼치는 스토리지만 감독이 관객에게 전하는 비주얼의 톤은 주인공 미아 패로의 사랑스러운 패션 스타일과 비슷하다.

이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서는 ‘타자로서의 아이’다. 흔히 “아이고, 내 새끼”라고 지칭되는, 나의 분신과도 같은 아이가 아니라 나와는 전혀 다른 타자로 느껴지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괴물로까지 여겨지는 내 아이에 대한 얘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다섯째 아이』의 벤은 전통적 가치를 고수하는 중산층 가정의 다섯째 아이로 태어난다. 가족으로서는 수용하기 힘든 야만성의 DNA를 몸에 품고 있는 벤은 ‘괴물’로 여겨지고 엄마인 해리엇은 벤을 문명화시키려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도리스 레싱은 초반부 다섯째 아이인 벤이 태어날 무렵까지 속도감 있게 독자를 끌고 간다. 이 작품은 이상과 현실, 문명과 야만성을 대립시키며 자신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날것 그대로 생생하게 그려낸다.

“아이를 갖는다는 것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었다. 그러다가 내 아이가 안 좋은 아이로 태어날지도 모른다는 근원적 두려움이 나의 내면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영화를 통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만든 린 램지 감독의 말이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두려움이 있지 않을까. 게다가 내가 낳은 아이가 전혀 사랑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어쩔 것인가.
모든 여성이 모성 유전자 있는 건 아니다.

<케빈에 대하여>의 에바는 자신의 아들 케빈이 도무지 자신의 아이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 그 자체가 자유로운 에바를 옭아매는 사슬과도 같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모성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을 거라고 여기는 사회의 판단은 착각이다. 어쩌면 사회가 강요하는 모성성에 여성들은 그저 익숙해지려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다섯째 아이』의 해리엇을 보라. 그녀는 끊임없이 모성성을 시험당하고 출산과 육아가 온전히 여성의 몫인 상황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고통을 앓지 않는가.

다섯째 아이 도리스 레싱 지음정덕애 옮김 민음사 펴냄

<로즈메리의 아기>의 주인공 로즈메리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녀는 간절히 아이를 원했지만 사회적 지위 획득을 우선시하는 남편 때문에 임신은 차일피일 미뤄진다. 남편과의 사랑의 결실로 아이를 원했던 로즈메리의 바람과는 달리 오히려 남편의 악마적인 욕망이 로즈메리를 임신시키고야 만다.

로즈메리의 남편이 그토록 원했던 사회적 지위와 로즈메리를 맞바꾼 것이다. 그녀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남편으로 인해 악마에게 겁탈당하고, 결국 악마의 씨를 밴다. 자신이 낳은 아기의 눈을 보고 놀라 뒷걸음질 치던 로즈메리는 그러나 어느새 자석처럼 끌려가 아이의 요람을 살며시 흔들어준다.

내 아이가 괴물인 것도 모자라 악마의 자식이라면 그때도 나는 내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과연 로즈메리는 평생 자신의 아이의 어미로 남았을까. 모성이란 대체 무엇일까. 세 작품은 우리에게 기어코 이런 질문을 던지고야 만다.

김 미 향 출판평론가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편집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너에게달력가고있어 2019-03-24 19:59:03
너무 좋은 글이네요,
편집장님 칼럼보고 [다섯번째 아이] 읽어보고싶어졌어요.
앞으로도 좋은 책 추천 기대하겠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