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삶 생활문화동아리 활동으로 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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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삶 생활문화동아리 활동으로 풀다
  • 충청리뷰
  • 승인 2019.03.2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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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남편 직장따라 아이 네 명과 괴산으로 내려와
원 혜 진 ‘문화공간 그루’ 대표

사실 나는 문화예술기획가와는 거리가 멀다. 괴산으로 이사오기 전에는 도서관과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간간히 글도 썼고, 노인회에서 사물놀이 강습을 했다. 2011년 막내가 생후 6개월이 됐을 때 남편이 지방으로 발령이 나 2014년 합치기 전까지 혼자서 아이 넷을 키우느라 정신없는 삶을 사는 평범한 주부였다.

마침 괴산에 귀촌한 친구집에 놀러갔다가는 괴산에 터를 잡기로 했다. 아빠가 필요한 아들 셋은 점점 커가고, 우리는 결단이 필요했다. 시골에 가서 사는 것이 꿈이라 농업직 공무원이 된 남편과 아이들을 집에서 키우고 싶어 넷은 낳아야겠다 했던 우리 부부는 좀 이르지만 귀촌하기로 결심했다. 집주인은 일단 살아보라며 매매로 나와있던 집을 전세로 돌려주고, 우리 가족을 위해 창고와 방을 더 만들어주었다. 앞에는 너른 논이 있고, 집뒤로 얕은 산이 있는 작고 아담한 2층집에서 우리 가족은 살아보기로 했다.

춤과 풍물 좋아하는 사람들 모여
아이들 둘은 초등학교로, 둘은 어린이집으로 보냈다. 집을 보러왔던 날부터 빈논에 뛰어 들어가고, 뒷산을 기어오르던 아이들은 전래놀이를 가르치는 문화학교 숲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선배에게 장구를 배우기 시작했고, 아이들을 모아 어린이사물놀이단을 만들었다. 모두를 출근시킨 후, 데크에 빨래를 널어놓고 해먹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때가 기억난다. 문화학교 숲에서 타로를 배웠고, 친구와 한 번씩 커피를 마셨다. 아이들을 데리고 증평까지 월수금 수영장에 다녔다.

아이들은 맨날 흙투성이로 귀가했고, 바닷가도 아닌데 집안에 모래는 왜이리 많은지, 정말 빨래만으로도 눈물날 것 같던 때도 있었다. 아파트에 살다 텃밭이 있는 주택에 사니 할 일이 엄청나게 많았지만,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공허했다. 그 때 시작했던 풍물패 ‘벼리 모임’은 나에게 친구이자 친정이 되어주었다.

‘문화공간 그루’는 2017년 4월 ‘홍범식 고택과 함께 떠나는 신나는 이야기여행’에서 공연을 펼쳤다.

그리고 증평에서 선배들과 했던 춤모임을 괴산에서 동아리로 만들어 ‘마실 춤모임’ 활동을 시작했다. 자연스레 춤과 풍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고, 지금은 언제라도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친정이 되었다. 나에게 동아리 활동이 주는 기쁨과 안정감이 어떤지 알기에 문화코디네이터로서 다른 동아리를 만나는 일도 즐거웠다.

2016~2017년에는 문해학교 두레학교 교사로 자원봉사를 했다. 학교 문턱에도 가지 못한 어머니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한글공부를 했다. 평균 연세 70이 넘는 어머니들께서는 돌아서면 잊어버려서 미안하다고, 애들 키우느라 바쁜데 봉사해주어 고맙다고, 무조건 사랑으로 나를 품어주셨다. 지금도 길에서 만나면 일단 안아주시는 어머니들께 내가 도리어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문화공간 그루’가 탄생하기까지
2015년 방과후학교 논술강사, 사물놀이 강습을 시작으로 문화학교 숲의 교사 양성과정을 듣고 전래놀이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두레학교 어머니들을 모시고 문화가 있는 날 문예지기 활동도 하고,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은행정스테이션 단체를 만들어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사업도 했다.

충북문화재단 문화코디네이터 활동을 하며 괴산의 동아리들을 만났고, 문화모니터 활동을 하며 공연 관람 후 보고서 작성을 했다. 충북문화재단에서 하는 기획자양성과정을 들었고 지역문화진흥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의 기관에서 지원금을 받아 활동을 했다.

그 중에서도 ‘문화공간 그루’의 공연을 만드는 것이 가장 신나고 재미있었다. 2016년부터 매달 문화학교 숲에서 주관하는 홍범식 행사에서 공연을 하다가 단체 등록을 하고, 2017년에 첫 정기공연을 올렸다. 2016~2018년 3년 동안 매달 홍범식 고택 행사에서 공연한 경험이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그동안 문화모니터로서 보았던 여러 공연들, 솔직히 말하면 실망스러웠던 많은 공연들도 도움이 되었다.

2014년 괴산으로 막 이사왔을 때 4남매의 모습.

요즘 시골이라 해도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열망이나 공연을 보는 안목은 도시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변변한 야외공연장 하나 없고, 공연단체 하나 없는 상황이니 내가, 그리고 ‘문화공간 그루’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만약 서울 경기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나서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길을 나선 셈이다.

나는 네 아이의 엄마이다. 첫 아이를 조산하며 대치동 논술학원을 그만두면서 둘째를 임신하고, 안동대 강사를 그만두면서 셋째, 넷째를 낳고 큰 애가 중3이 된 지금까지 나의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이다.

그리고 괴산으로 이사를 온 이후 두 번째 일을 찾았다. 괴산 사람들과 함께 웃고 즐기는 신나는 공연을 만드는 일. 마침 좋아하는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것과 노는 것은 내가 참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다. 문화예술 기획이 별 건가, 재미있게 놀자고 모이는 거 아닌가.

원 혜 진
‘문화공간 그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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