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예술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평등은 어디에서 오는가곽미경 장편소설 『허공에 기대선 여자 憑虛閣』
김 은 숙 시인

시대의 통념을 넘어서 남다른 삶의 행적을 남긴 사람은 대체로 본인만의 철학과 식견이 뚜렷하고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는 주체적 의지가 선명하다. 하지만 그 어떤 것이라도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낼 수 있을까? 아무리 뛰어난 역량과 뚜렷한 의지를 가진 개척자라 하더라도 주변에는 그를 알아보고 믿고 기대하고 지지해주는 조력자가 있기 마련이다. 『허공에 기대선 여자 憑虛閣』은 누구도 혼자 이룰 수도, 홀로 빛날 수도 없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 책이다.


빙허각 이씨는 한·중·일 3국 실학자 99인 중 유일한 여성 실학자라 일컬어지는 여성이다. 그런데‘허공에 기대선 여자’라니.‘허공’이라는 것처럼 텅 비어있어 의지할 데 없고 쓸쓸한 느낌의 말이 있을까? 생활에 실제적 도움이 되는 알찬 느낌의 학문인 실학을 몸소 실천하고 다양한 저서를 집필한 실학자가 스스로의 이름을‘허공에 기대선 여자’라고 지은 것이 아이러니하여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조선 영조 때 수어사를 지낸 이창수의 딸로 태어난 이선정은‘누구에게도 의지 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어 살겠다는 각오’를 담아 스스로의 이름을 빙허각(憑虛閣)이라 짓고, 당시 여느 여성들과는 다르게 자주적 삶을 선언하고 스스로 개척하며 주체적 삶을 살았다. 평생 쌓은 남다른 지식과 견문과 생활의 경험을 모아『규합총서』및『청규박물지』등의 저서를 집필하였고, 문학적 성취를 확인할 수 있는『빙허각시선집』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그의 대표적 저서로 거론되는『규합총서』는 당시 여성들이 감당해야 했던 의식주 생활과 농사, 태교, 육아 등 여성의 생활 전반을 다뤄 실생활에 도움을 주었다. 한문을 모르는 여성이 많은 점을 고려하여 한글로 쓴 최초의 여성백과사전이다. 자동약탕기도 발명하고, 조선 최초의 대규모 차밭을 경작한 농장주라는 빙허각 이씨는 당시로서는 참 경이로운 삶을 산 경이로운 인물이다.


물론 빙허각 이씨의 삶에 이렇게 뛰어난 업적과 성취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빛나는 업적 이면에는 당대 여성에 대한 통념과 편견을 힘겹게 이겨내는 과정과 노력이 있었고, 특히 자녀의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여덟 차례나 겪으며 피눈물을 흘리는 시간은 형언할 수 없이 뼈에 사무치는 절절한 아픔으로 감당하기조차 힘겨웠다.


빙허각 이씨를 지지해준 사람들
『허공에 기대선 여자 憑虛閣』은 믿음과 지지의 힘에 대한 여운이 오래 남는 책이다.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봉건사회에서 여성으로서의 삶의 질곡을 극복하고 남다른 업적을 남긴 한 여성에 대한 감탄에 앞서 그를 알아보고 지지해준 수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게 되었다.


남다른 업적으로 삶의 성취를 일군 빙허각 이씨 곁에는 영민한 딸을 알아보고 제대로 성장할 수 있게 돌봐준 아버지 이창수가 있었고, 연경 사신일행에 동행하며 빙허각의 남다른 면모를 알아본 시부 서호수가 있었다. 생애 전반을 빙허각을 지지하고 성원해준 최고의 동반자 남편 서유본이 있었고, 빙허각을 스승으로 모시고 겸허히 배움을 청한 시동생 서유구가 있었다. 또 세계 최초의 태교 책 『태교신기』를 저술한 외숙모 사주당 이씨의 든든한 지지와 성원이 있었다. 특히 남편 서유본과 훗날 『임원경제지』등의 저술을 남긴 풍석 서유구는 생애 전반에서 지향하고 실천한 바 그 철학적 맥락이 닿아있는 평생의 도반이었다.

허공에 기대선 여자 憑虛閣 곽미경 지음 자연경실 펴냄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특히 너무 잘난 며느리를 못마땅해 하고 봉건적 여성의 역할만을 요구하는 집으로 출가하여 여느 여성들과 같은 삶을 살아가야 했다면 빙허각 이씨의 삶은 얼마나 고달프고 답답했을까? 시부모가, 남편이, 시동생의 성원이 빙허각 이씨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크고 깊은 토대가 되어주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준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한 사람의 업적과 성취의 저변에 흐르는 수많은 믿음과 지지와 성원의 멋진 힘을 확인한 『허공에 기대선 여자 憑虛閣』. 한 사람의 업적과 성취가 부지런한 나눔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더 큰 힘을 생각한다. 더불어 내게 힘이 되어준 존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절로 일어나며, 아울러 나의 성원과 지지가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면 또한 감사하겠다는 생각이 일렁인다.


평등은 어디에서 오는가? 남녀, 신분, 인종, 사상, 시대적 통념 등 어느 사회에나 수많은 구분과 경계가 있고 그 경계를 넘어서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구분과 경계를 지우고 지속적으로 상대를 믿고 존중할 때 평등은 우리 곁에 올 수 있는 게 아닐까? 편견의 색안경을 쓰고 있다는 인식조차 못하고 여전히 수많은 경계를 짓고 있는 나여 우리여! 평등을 이뤄내는 힘, 상대를 편견 없이 대하고 지지하며 성원하는 위대한 힘을 다시 생각한다.

김 은 숙 시인

충청리뷰   webmaster@ccreview.co.kr

<저작권자 © 충청리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충청리뷰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많이 본 뉴스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