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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컵과 인간의 존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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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컵과 인간의 존엄성
  • 충청리뷰
  • 승인 2019.04.1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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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근 변호사

지난 4월 1일부터 전국의 대형마트와 165㎡ 이상의 슈퍼마켓에서 일회용 비닐봉투를 사용하면 횟수에 따라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동안 일회용품 사용을 막기 위한 여러 제도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일회용품 사용으로 인한 폐해는 너무나도 크다. 일회용품을 만들기 위한 산림파괴, 자원낭비는 물론 고래의 뱃속에서 다량의 비닐이 나오는 등 생태계의 파괴는 인류의 미래에 암울한 먹구름을 던져주고 있다. 인류의 생존 여부에도 영향을 미치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임에도 일회용품 사용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먼저 그 이유를 자본의 탐욕에서 찾는다. 물이나 바람이 틈이 있는 곳은 어디든 스며들 듯 자본은 이익이 발생하는 곳은 어떻게든 파고든다. 동네 슈퍼나 빵집, 커피숍, 음식점 등을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가 장악한 지 오래다. 가맹점들은 본부에 종속되어 미리 준비된 매뉴얼대로 영업할 뿐 창의적인 노력을 기울일 여지가 없다.

일회용품 사용이 개선되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사람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전보다 편하면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여긴다. 장례식장 식당에 가보면 그릇에서 수저까지 온통 일회용품이다.

음식 이야기를 더해 보면 방송의 온갖 요리 프로그램에서는 거의 100% 일회용 투명 비닐장갑을 끼고 요리를 한다. 이제는 일반 가정에서도 다 그렇게 한다. 위생적으로 나은 측면이 있을지 몰라도 거기서 나오는 쓰레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처리에 대한 대책 없이 그렇게 버리기만 하면, 어느 순간 지구는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못된 짓을 한 인류에게 멸망이라는 철퇴를 가할 것이다.

편하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불편함 속에서 더 많은 것을 깨닫고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다. 오늘날 편해졌다고 해서 옛날보다 더 행복한가? 우리를 단 한 순간도 고요하게 놔두지 못하는, 편리함의 대명사 핸드폰에, 우리는 노예가 되지 않았는가? 노예가 행복한가? 핸드폰은 사람들에게서 자기 자신을 살펴보는 시간을 빼앗아갔다.

일회용품 사용의 일반화는 종국적으로 인간의 존엄성과도 연결된다. 일회용품을 사용하다보면 소비가 천박해지고 획일화된다. 일회용품 용기 안에 든 음식을 플라스틱으로 된 수저로 떠먹는 상황에서 식사의 품위는 조금도 찾을 수 없다. 획일화된 일회용 기저귀, 컵 등을 사용하니 소비의 개성은 없다. 다른 사람과 다른 나의 영역은 그만큼 좁아진다. 나는 그저 그런 사람들 중 하나에 불과하게 된다. 나의 한 생명으로서의 존엄성은 사라져 간다.

일회용품 사용이 일상화되다보면 사물에 대한 존중과 애착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어차피 한 번 쓰고 버릴 것이므로... 이렇게 가벼워진 가치관은 사람을 대하는 마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상대방을 고귀한 인격자로 대우하기보다는 그저 일회적인 만남으로 치부할 가능성이 있다. 일회용품의 대량 사용은 자연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심성마저도 일회적이고 소모적인 것으로 만든다. [오원근, <검사그만뒀습니다>(2011) 200쪽]

필자가 지금 일하는 법무법인에 들어온 후 산악회를 만들고 산행을 가 보니 일회용품 천지였다. 회원들에게 등산 컵과 수저 집을 사 돌리고, 앞으로는 자연과 함께 하는 산행인 만큼 일회용품을 쓰지 말자 했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렇게 하자고 했다.

10년 가까이 된 지금도 산행에서는 일회용품이 거의 없다. 그러나 그런 산악회 회원들도 사무실에서는 종이컵을 쓰는 예가 허다하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문제가 인간의 존엄성에까지도 연결된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으면 한다. 내가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나의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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