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는 신동엽 시인의 詩를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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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는 신동엽 시인의 詩를 읽자
  • 충청리뷰
  • 승인 2019.04.1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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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 때면 생각나는 『신동엽전집
정 재 홍 수필가

산문시 < 1 >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을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鑛夫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莊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 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 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知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 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思索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大統領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대표시 ‘껍데기는 가라’
2019년 4월7일은 신동엽 시인의 50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의 대표시 ‘껍데기는 가라’는 4월을 대표하는 시로서 으뜸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신동엽 시인의 시 중에 『신동엽전집』에 수록된 ‘산문시 <1>’을 특히 더 좋아합니다. 앞부분에 그 시 전문을 싣고 글을 잇는 이유입니다. 평화 안에서 평등하기를 갈망하며 노래하는, 시인이 꿈꾸던 나라는 그날이 언제 올까 싶었더니 문득 우리가 지금 그 시절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혹여 시인의 예지력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1960년의 4월19일을 기억하는 시인들의 시는 이렇습니다. 조지훈은 1960년 4월27일 경향신문에 ‘마침내 여기 이르지 않곤 끝나지 않을 줄 이미 알았다’를 발표했습니다. 김춘수는 다음날인 1960년 4월28일 조선일보에 ‘이제야 들었다. 그대들 음성을’, 그리고 또 다른 시인들 김남조의 ‘기적의 탑을’, 황금찬의 ‘학도위령제에 부쳐’, 박희진의 ‘썩은 탐관오리들에게’, 박봉우의 ‘소묘 33’, 박두진의 ‘우리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 김수영의 ‘푸른 하늘을’은 모두 4.19를 주제어로 삼고 절규한 시편들입니다.

신동엽전집 신동엽 지음 창작과 비평사 펴냄

더불어 4.19혁명을 대표하는 신동문의 시 ‘아- 신화같이 다비데군’은 거침없는 풍자와 해학, 역설의 시 세계를 펼쳤던 청주시 문의마을 출신의 시인으로서 또한 마땅히 기록하여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를 낭송하면 따로 주석을 붙이는 설명이 필요 없는 것, 머리로 읽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곧 시詩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다시 신동엽 시인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지난 4월5일에는 신동엽학회 주관으로 학술회의 <따로, 다르게, 새로 읽는 신동엽문학>이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렸습니다. 13일에는 전국고교백일장을 가졌고, 신동엽문학관 전시실에서는 다채로운 주제를 엮어서 전시가 이어진다고 합니다. 봄날, 나들이삼기에 맞춤한 소식이지 싶습니다.

또 6월에는 시인의 등단 이후의 행적을 따라가 보는 문학기행이 서울의 성북구 종로구 광진구 일대에서 열린다고 하니 역시 걸기대입니다. 50주기를 기념하는 일 중에도 신동엽문학관 사무국장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김형수의 문학난장’에서는 올 한 해 동안 신동엽 시인의 삶과 시를 오롯이 되짚어보는 콘텐츠 100개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미 시작되었고 여러 차례 지켜보았는데요, 김형수 사무국장의 노력에 경외의 마음을 보내게 됩니다.

신동엽 시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漢拏에서 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오늘은 4월19일입니다. 4월의 시 한편을 크게 소리 내어 따라 읽는 일이 예의 아니겠는지요.

정재홍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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