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 16일은 기레기 참사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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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 16일은 기레기 참사의날
  • 충청리뷰
  • 승인 2019.04.18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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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세월호 참사는 언론에도 잊지 못할 상처를 남겼다. 그 때까지만 해도 아주 조심스럽게, 선별적(?)으로만 인용되던 기자들의 별칭, 이른바 ‘기레기’라는 단어를 전 국민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킨 계기가 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어느덧 기레기는 ‘기자’라는 말과 동급의 대우를 받게 됐다.

당시 언론은 사건 초기부터 가히 노벨상감 오보를 내는 것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어린 학생들이 대책없이 물에 잠기는 순간에도 ‘전원 구조’라는 보도를 냈고 생존자 구조나 피해최소화라는 언론의 1차적 의무는 아예 뒷전으로 밀린 채 속보라는 미명하에 선정적 보도가 남발됐다. 사고 원인과 구조지연의 문제점, 컨트롤타워 부재 등이 핵심 사안으로 떠오를 때도 언론들은 유병언의 사생활을 들추고 특정 종교를 헤집으며 사건을 흥미위주로 분칠했다.

한 종편은 유병언의 장남 유대균이 도피중에 뼈없는 치킨을 주문했다는 내용을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달아 특종보도하기도 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경험이 일천한 초짜기자가 단순한 정보보고로 올린 사항을 데스크가 “흥미거리가 된다” 며 특종으로 둔갑시켰다고 한다. 한술 더 떠 언론은 유대균을 보좌하던 박수경이라는 여인을 끄집어내 어린 학생 300여명이 사망한 국가적 참사를 3류 연애소설로 희석시켰다. 간신히 죽음을 피한 생존학생에게 “친구가 죽은 것을 알고 있느냐”고 물은 어느 기자의 질문과 사망자의 보험금 여부를 자세하게 안내하던 방송멘트는 지금 생각해도 머리카락이 솟구칠 정도다.

이처럼 세월호 참사는 망가진 저널리즘의 현실을 유감없이 보여준 실증의 단초가 됐다. 벌써 5년째, 그래서 이 날만 되면 여러 추모행사들의 뒷전에서 말못할 고민을 삭이는 언론인들이 있다. 그리고 그 고민은 올해에도 여지없이 불거졌다. 지난 16일 열린 광화문 추모행사에서 이젠 어엿한 대학생이 된 생존학생은 이렇게 외쳤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사건이 일어날 때부터 이를 촉구하고 감시해야할 언론이 책임을 방기하는 사이 참사의 진상규명은 바다속으로 침몰해 버렸고 책임자 처벌도 유병언이 변사체로 발견된 이후로는 유야무야됐다. 몇몇 피라미들만 법적 조처를 받은 게 고작이다.

공교롭게도 세월호 참사 5주년에 맞춰 강원도 산불과 세월호 참사가 서로 대립했다. 산불 발생 후 5시간 동안의 문재인 행적과 세월호 참사 발생 후 7시간 동안의 박근혜 행적을 따지는 공방 때문이다. 사건의 결과로만 보면 이번 강원도 산불의 경우 그 규모와 강도에 비해 인명피해를 최소화했다는 점 등에서 국가적 대처가 세월호 때와는 비교가 안 된다는 평가를 받는다. 쟁점은 대통령이 산불 발생 시점부터 국가위기관리센터를 방문할 때까지 5시간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것으로 이는 박근혜 사례와 비교돼 어쨌든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언론보도의 행태로, 이번에도 몇 몇 언론들은 사실확인도 안 된 흥미위주의 속보경쟁을 벌임으로써 사안자체를 변질시키고 있다. 청와대의 해명이 부족하다면 언론 스스로 자체 취재망을 가동해 진실에 접근하는 것이 우선일 텐데 빗나간 외신까지 들이대며 정황을 침소봉대하고 있다. 이 와중에 산불피해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사후조치, 예를 들어 복구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적 지원의 문제점이나 재발방지를 위한 항구적 장치 등은 어느덧 관심밖의 사안이 되고 있다.

이번 강원 산불에서 이해못할 잘못을 저지른 건 역시 언론이다. 다름아닌 KBS의 개념없는 행태다. 이미 공론화돼 많은 논란을 빚었지만 산불 초기 KBS는 ‘오늘밤 김제동’이라는 생방송을 한참이나 그냥 진행했다. 당시 강풍을 타고 화마가 거침없이 커지는 장면을 다른 채널로 목격하며 국가재난 주관방송사의 이해못할 처사를 염려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때 산불이 토해내던 엄청한 불길은 세월호의 침몰순간과 그 긴박감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과거 지상파 두 세 개만 있었던 시절이라면 현지 주민들조차 산불발생을 까맣게 모를 판이었다.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는 침몰하는 배 안에서 자기한테 어떤 일이 벌이질지 뻔히 알면서도 굳이 태연하게 보이려던 어린 학생들의 마지막 모습을 잊지 못한다. 앞으로 10년, 20년이 지나도 이 장면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수구들은 악착같이 하나의 ‘사고’라고 주장하지만 사고가 아니라 과거 민간인 학살처럼 ‘형편없는 국가’가 애먼 양민들을 대량으로 살상한 극악의 참사다.

언론은 이를 사실 그대로 기록할 책무가 있다. 세월호라는 참사의 핵심은, 국민의 생명보다 기업의 이익을 중시하는 자본의 탐욕, 이 것들과 부정하게 야합하는 권력과 공권력의 야만, 폭력성에 있다. 그리고 언론은 이 것을 견제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300여명의 죽음을 초래한 중대 범죄를 저질렀다. 그 후로도 언론은 참사의 근본 원인이나 정권의 구조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러기에 매년 4월 16일은 언론에게는 기레기의 참사날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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