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도는 저도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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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는 저도 할 수 있어요”
  • 충청리뷰
  • 승인 2019.04.2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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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답게, 여자답게 라며 개인의 자유 억압

아래 글은 충북의 모 대학교 교양강좌인 ‘젠더 & 섹슈얼리티’ 시간에 작성한 것이다. 글쓴이들의 요청에 따라 학교와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이름은 가명이다. 대학생들의 글을 통해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나는 대학입학하기 전 두 달 동안 편의점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했다. 원룸 골목에 있는 작은 편의점이어서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기 때문에 일하는 동안 육체적으로 힘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편의점 점장님이 하는 말들에 스트레스를 적지 않게 받았다.

점장님은 50대의 여성이었는데, 면접 때 내 외모를 보며 ‘얼굴을 보니 예쁘장해서 일을 잘할 것 같다’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그럼 예쁘지 않은 사람은 일을 못 한다는 것인가?’라는 의문이었다. 아르바이트 첫날부터 그냥 내가 날이 서 있던 것이겠지, 하고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나중에 다른 남자 직원이 들어왔을 때는 ‘대화를 하면 할수록 성실해 보여서 뽑았다’라는 말을 하였다. 어째서 내가 들어왔을 때는 외모를 평가했으면서 그 사람한테는 그러지 않은 것인지 궁금했다.

이후 출근을 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점장님은 여러 가지로 나를 포함한 직원들을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유독 나와 다른 여자 직원에게는 옷차림과 외모에 관한 지적이 많았는데, ‘여자애가 그런 신발을 신고 오면 어떡하냐’는 등 신는 신발까지도 간섭을 했다. ‘여자’가 신을 수 있는 신발이 있고, 신을 수 없는 신발이 따로 있는 것인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점장님의 편견은 외모와 관련된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일하던 편의점 계산대 옆에는 원두커피를 뽑을 수 있는 기계가 하나 있었는데, 주기적으로 안에 쌓여있던 찌꺼기를 청소해 주어야 했다. 그런데 혼자서는 닦을 수 없는 구조라서 한 명이 기계의 상단 부분을 들고 있어야 했는데, 점장님은 줄곧 남성인 직원에게만 그 역할을 시켰다.

나중에 점장에게 물어보니, ‘여자한테 어떻게 이런 걸 시키냐, 이런 건 남자가 해야 한다’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그 기계는 나도 충분히 들 수 있는 무게였다. 그것 말고도 소주가 든 상자들을 옮길 때도 내가 해야 할 일인데도 다음 시간에 교체하는 남성 직원에게 시키라고 하였다.

솔직히 말하면, 할 일이 줄어드는 것이기에 나는 더 편하고, 시간을 줄일 수 있기에 이득이 되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근무하는 시간에 해야 하는 일들을 어떻게 남에게 시킨단 말인가.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일을 하게 되는 남자 직원은 무슨 죄란 말인가.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데 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나로서는 썩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정정당당하게 일하고 나서 그만큼의 대가를 받고 싶었던 것이지 누군가에게 일을 떠넘기고 싶지 않았다.

그 밖에도 남자 직원의 험담을 하면서 남자답지 못하게 화장을 한다든지, 쿨하지 못하고 따박따박 말대꾸를 한다는 등의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요즘 시대에도 그렇게 남자답게, 여자답게 같은 말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람이 있구나 라는 생각과 동시에 앞으로 살면서 그런 사람을 더 많이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 이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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