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살아야 광장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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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살아야 광장이 만들어진다
  • 권영석 기자
  • 승인 2019.04.2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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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은 민의가 모이는 곳이다. 사람들은 ‘신문고’를 두드려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광장으로 들고 나온다. 3년 전,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으로 모였고 손에 든 촛불은 전국으로 번졌다.

<열린 공간이 세상을 바꾼다>(천의영, 공간서가)라는 책에서는 광장을 열린 공간 소통의 시발점이라고 해석했다. 작가는 “과거 살롱은 초대된 사람들만 가는 곳이지만 커피하우스는 일정한 금액만 지불하면 불특정 다수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계층과 계급에 상관없이 적정한 금액만 지불하면 누구나 소통과 학습에 참여할 수 있는 셈이다”며 광장을 비유적으로 소개했다. 그렇다면 이런 광장이 청주에도 존재할까?

 

우선 함께 논의할 광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마이클 최, 후마니타스)에서는 사람과 집단의 상호작용이 발생해야 사람들이 광장으로 모인다고 분석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집단의 일부라고 생각할 때 광장에 모인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문제라고 인식하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역할은 언론의 몫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언론이 힘을 잃었다. 오히려 주민들의 단합이 사안을 광장으로 이끄는 경우가 많았다.

지역의 한 학자는 “먹고 사는 현실적 장애로 언론이 문제를 알리는 역할에 소홀했다. 민감한 사안들은 피해갔고, 문제를 들춰낸 사람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도태됐다”고 비판했다. 결국 그 후폭풍은 부메랑처럼 언론에게 돌아갔다.

기사와 뉴스에서 사람들 눈이 떠나자 뒤늦게 대형 언론사들은 탐사보도 팀을 만들어 굵직한 보도들을 이끌어 내고 있다. 최근 한겨레는 탐사기획 ‘여의도 농부님, 사라진 농부들’을 통해 <토지 강제수용 법안만 110개... 80대 촌로 “내 땅 4번 뺏겨” 울분>이라는 시리즈 기사를 냈다. 보상금 문제로만 치부되던 토지수용에서의 문제를 파헤쳤다.

기자는 말미에 “개발로 인해 농민들이 땅을 어떻게 강제수용 당하는지 법률의 문제점을 짚었다. 취재하는 과정에서 취재원, 조력자 없이 노트북 한 대 들고 전국을 헤맸다”며 “누가 어떤 법을 입법하고 이로 인한 이득을 취하는지 감시의 눈길을 거둘 수 없게 됐다”고 소회를 털어놨다.

감시의 눈길을 보내던 주민들은 속된말로 나가떨어졌다. 법에 근거해 사업을 추진하는 이들과 주민들은 치열한 사투를 벌이며 지쳤다. 청주를 비롯해 수많은 곳에서도 이런 문제들이 터져 나왔다.

 

우리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주민들의 땅값 더 받기 위한 집단행동 정도로만 비춰지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청주테크노폴리스의 주민들은 불법적인 행정절차에 반기를 들며 반대의사를 펴는 등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그들의 뒤에는 그 어떤 언론사도 시민단체도 서 있지 않았다. 주민들은 걸음을 멈췄고 뒤늦게 취재를 간 기자들에게 ‘왜 이제 왔냐’고 토로했다.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시민들은 이게 문제라는 것을 인지했다. 그리고 이를 광장에서 다루려고 논의한다. 이같은 상황을 주민들은 내심 반기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상처가 컸다. 이제는 이런 일들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중앙 언론들은 탐사보도를 강화하며 자성한다. 지역에서도 이 과정이 필요하다. 언론이 살아야 광장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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