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학교를 만나니 세상이 달리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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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학교를 만나니 세상이 달리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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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0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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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에 한 번 할머니들에게 한글 가르치며 보람느껴
원 혜 진‘문화공간 그루’ 대표

처음 이사를 왔을 때 동갑내기 친구를 알게 되었는데 문해학교인 <두레학교> 사무국장이라고 했다. 나는 문해라는 말을 그때 처음 들었다. 문자 해득(文字 解得), 즉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당시에는 무식하게도 아직도 한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충북의 문해학교들이 모여 체육대회를 한다며 진행을 도와달라고 했다. 체육관으로 가서 조끼를 입고 일을 도왔는데, 모인 분들은 대부분 맑은 표정의 활달한 할머니들이었다. 나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2016년 봄학기부터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2014년 이사 후, 2015년부터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과 충북문화재단 일을 시작했고 2016년부터는 두레학교 수업도 하게 된 것이다.

기역, 니은부터 가르치던 수업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국어사전을 들고 다니며 보는 아이였다. 공부는 안하고 탈반에서 놀았지만 그래도 국문학을 전공했고, 대학 1학년 때부터 수능 과외에, 학원 강의를 했던 경력으로 국어 수업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남편은 아직 아이들도 어린데 일이 너무 많다고, 특히 자원봉사까지 하는 것이 불만이었다.

두레학교 목련반 어머니들 공부하는 모습

하지만 1주일에 단 2시간, 할머니들과 놀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나에게도 힘이 될 것이라고 남편을 설득했다. 실제로 아이가 아플 때 도와주시기도 하고, 먹을 것을 싸다주시기도 하고, 아는 사람 없는 괴산에서 두레학교 사람들은 나에게 많은 힘이 되었다.

처음 맡았던 반은 초급반 진달래반이었다. 첫 수업을 하고 당황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머님들은 정말 기역, 니은부터 가르쳐야 했고 앞부분 가르쳐드렸던 단어를 수업이 끝날 무렵에는 까맣게 잊으셨다. 가지, 나비, 이런 기본적인 단어를 가르치기 위해 수업 내내 내 목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70세가 훌쩍 넘은 할머니들은 자꾸 잊어버리는 본인들이 스스로도 안타까워 수업이 끝나면 내 두 손을 잡아주며 “선상님 고생하셨다”고, “애들도 어리고 바쁜데 여기 와서 할머니들 가르쳐주어서 고맙다”고 말씀하고 또 말씀하셨다. 아이가 넷이라고 말씀 드리니 젊은 사람이 아이를 많이 낳았다며 이쁘다고 하셨고, 매주 만날 때마다 어쩜 이렇게 예쁘냐고 하셨다. 나는 매주 매주 어머니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더 예뻐졌다.

두레학교는 2008년 최복순 선생님께서 괴산여성회관에 문을 연 <어머니 한글교실>에서 시작되었다. 2009년 문해교사 양성과정을 통해 괴산문해교사회(회장 목윤지영)를 구성했고 2010년 괴산읍 동부리에 두레학교를 열었다. 회원들이 회비를 내서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이웃들에게 봉사하는 학교이다. 평생 교육, 소풍, 바자회 등의 활동을 통해 나누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문화학교 숲 교사들도 함께 활동을 시작했고, 지금도 함께 하고 있다.

2017년 5월 두레학교에서 두런두런 모여 앉아 바느질하는 모습

한글교실뿐 아니라 영어교실, 면허시험취득교실, 컴퓨터교실 등 살아가며 필요한 여러 가지 공부를 하며 원하는 분들은 검정고시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배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나누는 봉사 활동도 활발히 한다.

다양한 활동하는 두레학교
또 마당극 수업을 한 후 요양원에 가서 공연을 하거나 바느질 수업을 통해 괴산의 아기들에게 배냇저고리를 만들어주고, 두부를 만들거나 어린이날이면 떡볶이와 어묵을 만들어 나누기도 한다. 홍범식 행사에도 종종 함께 하며 시낭송 발표를 하거나, 아이들을 위한 체험활동을 준비해주시기도 한다. 매년 학습발표회를 열어 가족들과 지인들을 초대한 가운데 1년 동안 공부한 내용을 발표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자리를 갖는다. 어머님들의 그림과 글을 넣어 그림책과 달력을 제작하기도 한다.

2016년 두레학교에는 전부터 강의하시던 분과 새로 강의를 맡은 분까지 10명의 자원봉사 선생님이 모였다. 한 달에 한번 모여 회의를 통해 학생들에 대한 정보를 주고 받고,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교장 선생님, 사무국장, 1주일에 한 번씩 수업을 하는 선생님들 모두 다정하고 우리는 즐거웠다. 2018년 막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일을 정리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길에서 만나면 반갑게 끌어안고, 한 번씩 전화통화도 하고 있다.

2019 두레학교 시화달력

청천 산골에서 6.25 전쟁이 난 것도 모르다가 친척들이 모여서 잔치인 줄 알았다는 분,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집안일을 하느라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는 분, 아버지가 딸자식이 공부는 해서 뭐하냐고 해서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는 분, 나는 그 분들에게 글자 몇 자를 가르쳐드리고 사랑과 지혜를 나누어 받았다.

거칠고 주름 깊은 손으로 꾹꾹 눌러 쓴 글자에 감동하고, 동화를 읽고 행복해하는 그 눈빛에 눈물 흘렸고, 글을 배우니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그 말씀 하나하나를 가슴에 새겼다. 괴산에 와서, 두레학교를 만나서, 나도 세상을 달리 보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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